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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온 가족이 코엑스에 있는 메가박스 영화관으로 출동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제작 25주년 특별 기념 공연 실황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오페라의 유령'은 내게 특별한 작품이다.
남편과 짧은 연애를 할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보았던 뮤지컬이었기 때문이다.
결혼한 후에 바로 첫 아이를 임신했고 4년, 3년 터울로 세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
제대로 된 뮤지컬을 볼 여유가 없었다. 엄마랑 절때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에 홈 씨어터를 설치해 놓고 좋아하거나 보고 싶은 작품들은 DVD로 구해서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아이들도 엄마랑 같이 어려서부터 뮤지컬 DVD를 함께 보면서 뮤지컬을
좋아하게 되었다.
'오페라의 유령'도 DVD로 함께 봤는데 마지막 장면에선 필규 윤정이랑 나, 셋은 펑펑 함께 울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팬텀의 사랑이 너무 가슴아팠기 때문이다.
윤정이는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하루 종일 틀고 산다. 이룸이도 덩달아 이 음악
들을 좋아한다. 필규는 제 방에서 레고를 조립하면서 팬텀이 부른 노래 멜로디를 흥얼거릴 정도다.
아이들이 모두 이렇게 좋아하니 25주년 특별 공연 실황을 같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권하니 대찬성이었다. 세시간이나 하는 긴 공연이라고 해도 좋단다.
자막을 읽을 수 없는 윤정이에겐 집에서 DVD를 함께 보며 모든 장면들을 충분히 설명해 두었다.
똑같은 내용으로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이해하는데는 문제가 없을거라고 여겼다.
남편에겐 미안했지만 세시간동안 이룸이를 봐 달라고 부탁을 해 놓고 나와 두 아이 관람료로
5만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예약한 후 주말의 메가박스를 찾았을때는 가슴이 다 설레었다.
이제 드디어 나도 아이들과 제대로된 문화생활을 즐기겠구나... 역시 어려서부터 뮤지컬을 보여주며
키웠더니 어린 녀석들이 벌써 이렇게 수준 높은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내가 잘 키웠다고 스스로 뿌듯하고 기쁘기까지 했다.
이룸이를 남편에게 슬쩍 맡기고 두 아이만 챙겨 숨바꼭질 하듯 극장으로 들어갔을 땐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그러나...

주차하는데 시간이 늦어 공연 실황이 시작된 직후에 들어간 우리는 어두운 극장 안에서 자리를 찾느라
헤매야 했다. 윤정이 손을 잡고 간신이 자리를 찾아서, 이미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 앉았더니 필규가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 거려 보았더니 계단 끝까지 저 혼자 올라가
나를 찾고 있다. 엄마를 잘 보며 따라오라고 일렀건만 내 말을 건성으로 듣고 제 맘대로 가다가
나를 놓친 것이다. 윤정이에게 앉아 있으라 하고 오빠를 데려 오겠다고 했더니 무섭다며
자기도 같이 가잔다. 다시 옆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윤정이까지 데리고 계단을 올라가
헤매고 있는 필규를 잡아 왔다. 이리하여 자리에 앉기도 전에 등에서 땀이 다 나 버렸다.
이제 제대로 앉았으니 작품만 느긋하게 관람하면 되겠거니... 했는데 두 아이는 허겁지겁 두꺼운
겉옷을 벗어 내게 안긴다. 실내는 무척이나 더웠고 날이 추워서 옷을 두껍게 입혀 왔는데 아이들은
이내 덥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좀 하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아랑곳 않고 이젠 두 아이가 번갈아 양말을 벗는게 아닌가.
늘 추운 집에서 사는 아이들이라서 더운 실내에 들어가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양말부터 벗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극장 안에서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두꺼운 겨울 신발을 신었던 발에선
발 냄새가 훅 끼쳤다. 어둠 속에서 내 얼굴은 귀까지 달아 올랐다.
어떻게든 작품에 몰입을 하려고 하는데
'엄마, 뭐라고 써 있어요?' '엄마, 저 여자는 누구예요?' 하는 윤정이의 질문이 이어진다.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옆 사람들에게 방해 받지 않도록 신경쓰며 대사를 작은 목소리로
읽어 주었다. 허리와 목을 숙여 윤정이 귀에 대는 자제를 몇 번 하고 났더니 당장 온 몸이
쑤셔온다. 게다가 나까지 제대로 볼 수 가 없다.
그 와중에 필규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엄마, 언제 끝나요? 너무 더워요' 야단이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다고 했어도 너무 더워서 참을 수 가 없다고 잠깐만 밖에 나갔다 오게
해달라고 난리다. 어둠속에서 눈을 부라리며 쉬는 시간까지 참으라고 중간에 움직이면 여러사람
에게 피해를 준다고 목소리를 낮추어 얘기를 했지만 필규는 한숨을 쉬고 몸부림을 치며 야단이었다.
30분쯤 지나가자 윤정이도 지루해 하며 몸을 틀어대기 시작했다. 일어섰다가 앉고, 뒷 사람을
돌아보고 그러다가 아예 뒤로 돌아 앉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나는 윤정이를 잡아서 반듯하게 앉혔지만
얼마가지 못했다.
양쪽에서 두 아이가 가만히 있지 않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눈치도 보여 속이 끓었다.
그러는 사이에 필규인지 윤정인지 방구를 뀌었다. 퍼지는 독한 냄새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머리에선 김이 펄펄 나고 얼굴을 빨개 지고, 화가 나고 답답한 것을 억지로 참느라 온 몸에 힘을
주고 있었더니 이러다가 내가 오페라의 유령이 아니라 극장안의 귀신이 될 지경이었다.
내가 왜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까... 세시간이나 되는 긴 공연을 함께 보기에 아직 무리구나..
그냥 참았다가 DVD나 나오면 그걸로 볼껄..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마침내 폭발 직전인 필규는 누군가 중간에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더니 저도 나가겠다고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  윤정이도 오빠 따라 나가고 싶다는 것을 억지로 쉬는 시간까지 데리고 있었다.

1부 공연이 끝났을때 윤정이를 데리고 나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데려가라고 부탁했다.
윤정이도 순순히 아빠에게 달려갔다. 나이에 비해 의젓하고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라서
이 정도 공연은 충분히 함께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다. 글도 읽지 못하는 다섯살
아이에게 자막으로 나오는 세시간짜리 공연 실황을 함께 보려고 했던 자체가 욕심이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만 팔천원짜리 표가 아깝긴 했지만 서둘러 윤정이를 보내고 필규는 시원한
음료수를 먹였더니 끝까지 보겠단다.

1부 보는 사이에 10년은 늙은 기분으로 다시 힘을 내어 2부를 보았다.
마지막 대목에선 역시나 필규와 나는 서로 머리를 맡대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4시 40분에 시작한 공연은 7시 40분에 끝났다. 남편과 두 아이를 만났더니 영문을 모르고
엄마랑 긴 시간을 떨어져 있던 이룸이가 운 모양이었다. 미안했다.
배고픈 아이들을 데리고 원하는 식당으로 데려갔지만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영화 한 편 보고 밥 먹고 나왔더니 한밤중이었다. 차 안에서 골아떨어진 세 아이와 떡이 되어
집까지 왔다.
어찌나 힘들던지 당분간은 이런 문화생활은 절대 하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했다.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와 떨어져 지낼 수 있게 될 때 까지 참기로 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집에서 같이 뮤지컬을 보며 좋아하는 것과 공공장소에서의  관람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좀 더 아이들 수준을 고려했어야 했다.
생 난리를 떨어가며 메가박스에 다녀왔더니 윤정이는 다시 온 종일 오페라의 유령 음악을 틀어 놓고
필규는 똥을 쌀 때도 펜텀의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아이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덕분에 내게 '오페라의 유령'은 또 한번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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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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