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이야기4.jpg

 

3.1절을 하루 앞두고 두 딸과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보러갔다.

이룸이가 보고 싶다고 해서 나선 길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지고 감정이 넘쳐서 (물론 나는 일생 이 상태로 살아왔다만..)

이런 영화를 보는 것이 너무 (마음이) 힘들까봐 망설여졌지만 조금씩 역사에 눈을 뜨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역사를 자꾸 거꾸로 돌리고 싶어하는 세력들보다 강해지기 위해서도

이런 영화는 꼭 봐야만 했다.

너무나 오랫동안 '상징'으로만 알아온 위인을 따스한 피 흐르는 인간으로 마주할 기회는 많지 않다.

유관순도 그렇다. 초등학교 교정에 동상으로 만난 인물, 그토록 긴 세월이 흘렀건만 여전히

내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도 동상으로 서 있는 인물을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는 일이 어디 쉬운가.

박제처럼, 화석처럼 굳어진 사물로 서 있는 인물에게도 여린 살과, 뜨거운 피와, 가슴 아픈 사연과

절절한 애통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느끼게 되면 달라진다. 그는 더 이상 '상징'이 아니다.

어디서건 마주칠 때마다 그의 얘기를 듣게 된다. 여전히 내게 살아있는 목소리가 된다.

영화 '항거'는 3.1 만세 운동의 과정과 전개, 혹은 만세 운동을 준비하던 사람들의 긴박한 준비와

활동을 보여주지 않는다. 만세운동이 지나가고 만세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들이던

암물한 시절, 고향 마을에서 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잡혀온 유관순이 서대문 형무소에 끌려오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흘러내린 머리, 고초를 당한 얼굴, 그리고 헐벗은 맨발로 끌려온 유관순이 형무소 담장에 서서

일본인 사진사 앞에 얼굴을 들고 사진을 찍히는 순간 카매라를 똑바로 응시하는 그 당당한 눈빛.

100년이 흐른 지금 봐도 소름이 돋을 만큼 형형한 그 눈빛을 배우 고아성은 유관순이 되어

우리에게 보여준다.

누울 공간조차 없는 좁은 공간에 수십명씩 몰아 넣은 감옥안에는 만삭의 임산부와 어린 소녀,

기생, 나이 든 여인들, 학생들이 함께 있었다. 사연은 다르지만 목청껏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끌려 온 사람들이다. 가만히 서 있으면 다리가 퉁퉁 부어서 좁은 감옥안을 하염없이 돌며 걷고

긴긴 밤 교대로 쪽잠을 자면서 하루에 한 번식 나오는 보리밥 한덩이도 툭 하면 끊기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서로 기대고 연대하며 고통의 시간들을 견디어 간다.

여자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교까지 세운 부친 아래에서 일찍부터 교육을 받아

이화학당까지 가게 된 유관순으로서는 처음으로 자신과 신분과 처지가 너무나 다른 수많은

여자들이 보여주는 용기와 연대에 눈을 뜨게 된다.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서 당연한 의무로서

독립을 외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과 달리 나라가 있던 시절에도 여자로서 살기는 고단하고

힘겨웠던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에게 만세를 외치는 일은 삶을 억누르는 모든 불의와

고통에 대항해서 제 목소리를 내는 일이기도 했다. 그들 속에서 유관순은 한없이 겸손해지고 한없이

강해 진다.

일본 헌병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은 죄수가 아니니 반성할 일이 없다며 끝내 끔찍한

고문을 견디어내면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난 1주년이 되는 날 감옥안에서 목청껏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여자 감옥에서 시작된 만세는 이윽고 서대문 형무소 전체에 퍼져나가고 감옥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자 서울 시내는 다시 한 번 뜨거운 만세 소리로 가득 찬다.

그러나 형무소 안에서 가장 악날한 반동으로 찍혀 지독한 구타와 고문을 당한 유관순은 출소를 하루

앞두고 차디찬 감옥에서 끝내 숨을 거둔다.

흑백의 화면으로도 유관순이 당했던 고통과 아픔이 너무나 생생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딸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비참하기 그지 없는 상황속에서도 같은 감옥안에서 지내는 그녀들의

연대와 의지가 너무나 뜨겁고 강해서 마음이 한없이 숙여지곤 했다.

고문과 폭력과 위협과 허기에도 지지 않는 그 마음이, 육체가 바스러져 갈망정 정신과 의지는

오롯하게 일본에 항거하는 유관순의 모습은 100년전 이 땅에 울려 퍼졌던 만세의 의미와

지금 내 삶의 자세를 진심으로 다시 돌아보게 했다.

영화가 끝난 후에 쉽게 일어날 수 가 없었다. 내가 고문을 당한 것 처럼 온 몸이 다 아팠다.

100년 전의 유관순을 우리에게 느끼게 해주고 보여준, 배우 고아성의 혼이 담긴 연기가

정말 고마왔다.

영화 보는 내내 내 옆에서 많이 울었던 이룸이는 영화가 끝났을때 붉어진 눈으로 나를 안았다.

"엄마.. 일본 경찰이 유관순 손톱을 대꼬챙이로 찌르는 장면은 너무 참혹해서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어요.."

"엄마도 그랬어. 만세를 불렀을때 유관순의 나이가 열일곱, 필규 오빠랑 같았어.

우리가 100년 전에 살았다면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같이 독립 만세를 외쳤을까?

무서워서 숨었을까?"

"나는 만세를 불렀을꺼예요"

"그래... 그래야지. 엄마도 그랬을꺼야. 그러니까 우리가 정말 잘 살아야겠어.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희생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될것 같애"

 
유관순 이야기3.jpg
 

3월 1일자 한겨레 신문에는 유관순의 사진이 한 면에 걸쳐 실려 있었다.

100년 전, 낡은 사진속에서도 유관순의 눈빛은 너무나 생생하게 곧고 의연해서 마음이 절로 여며졌다.

소중하게 잘라서 벽에 붙였다.

'태극기', '애국', '나라', '조국'... 이런 말들 모두 정치판에서 너무 오염되고 닳고 닳아서 그 의미들을 제대로 새겨볼 마음이 나지도 않았는데 100년 전으로 거슬러가면 이 하나 하나가 얼마나 백성들의 마음 속에 애달프고, 그립고, 사무친 말들이었을지 알겠다. 소중한 말들을 그 의미 그대로 다시

우리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오늘을 사는 이 나라 사람으로서 내가 할 일을 잘 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100년 전 유관순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와서 이룸이는 하루 종일 몇 번이나 우렁찬 목소리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 크고 힘찬 만세 소리를 들으면서 깨달았다. 나는 반 백년을 사는 동안 한 번도 그토록 힘찬 목소리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러 본 일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학창시절 3.1절 행사에서 몇 번쯤 만세를 따라 부르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저 시늉만 하면서 지겨운

행사가 빨리 끝나기를 바랬을 뿐 이다.

마음에 느껴지면 온 존재를 기울여 그 마음이 되는 어린 딸이 있어 나도 태어나 처음으로 딸과 함께

목청껏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말과 소리는 참 신비해서 있는 힘을 다해 외쳐 부르는 것 만으로도

그 마음이 되게 한다.

 

유관순 이야기.jpg

 

이룸이는 벽에 붙여 놓은 유관순의 사진을 디지털 카매라로 찍어 확대해 가면서 스케치북에 그렸다.

그림속의 유관순도 눈빛이 생생했다. 아이의 마음을 꽉 채우는 감정은 연필 끝으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관순 이야기2.jpg
 

이제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벽에는 유관순의 모습과, 고아성이 살려낸 유관순 이야기의

포스터와 이룸이가 힘차게 써 놓은 대한독립만세 글씨가 더해졌다.

오며 가며 볼 때마다 다시 마음을 여미고 오늘을 잘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 영화를 모든 국민이 다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보고 모두의 마음에 유관순이 더 이상 동상이나 위인전 속의 박제된 인물이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살아있는 정신으로 새겨졌으면 좋겠다.

고문 장면이 끔찍하긴 하지만 초등 고학년 정도 부터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이다.

영화를 보기 전이나 본 후에 유관순이 생애와 3.1 운동에 대해서 더 많은 책을 찾아보고

함께 이야기해 본다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살아있는 역사 공부가 될 것이다.

역사를 잊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 가는 것

올바른 시민으로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것

역사를 아는 아이들로 키워 내는 것

지금 나, 그리고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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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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