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인 내가 보기에 일본 사회에서 며느리가 되면,

 

.. 시댁 식구들과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시댁의 연중행사를 며느리가 중심이 되어 챙겨야 하는 의무가 없다.

.. 시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문화도 없다.

.. 시댁에 자주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문화도 없다.(추석, 설날외에)

.. 시댁에 다니러 가서, 줄곧 부엌일을 하는 일도 없다.(가끔 설거지 정도)

   결혼하고 얼마 안 된 경우는, 며느리이기보다 손님에 가깝다.

.. 시어머니가 아들집을 자주 찾아오는 경우도 드물 뿐더러

   이때, 며느리가 식사대접까지 하는 경우도 드물다.

 

제사를 비롯한 추석, 설날의 상차리기같은 시댁의 연중행사는

어디까지나 시댁 부모님이 주관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리고 일본에선 60세 이상이 되었다고 해도 집안일은 며느리가 있고없고를

떠나 그집 안주인(시어머니)의 영역이다.

그래서 어떤 시어머니는 자신의 고유한 영역인 부엌에 다른 사람이

(며느리라 해도) 들어오는 걸 내키지 않아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비교적 시댁에서 설거지나 음식만드는 걸 많이 돕는 편이긴 하지만

명절 외에 일상적으로 다니러 갈 때는 정말 '손님'처럼 있다 온다.

차와 음식 대접을 받고 그때 나의 유일한 의무는

어머님이 준비해주시는 대로 두 아이들을 잘 알아서 챙겨먹이는 것 정도다.

친정이 바다건너 있으니 아이들 데리고 갈 수 있는 남의 집이 별로 없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댁에 자주 놀러가고 시어머님도 자주 찾아오셔

친밀하게 지내는 편인데

그걸 일본인 친구들은 굉장히 신기해 한다.

그만큼 아들가족이 부모님댁을 자주 찾거나 일상적으로 만나는 일은 드물다.

 

그리고 용돈 드리는 일.

일본의 지금 젊은 세대들은 자신이 노년이 되었을 때 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되었지만(나와 남편 세대도 그렇다)

십여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신 시아버님 세대인 노인분들은

비교적 안정된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었고 지금도 크게 위험하진 않다.

예정된 금액의 퇴직금과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도 결혼생활 12년을 통틀어 시부모님 용돈 챙겨드린 일은

먼 곳으로 여행가실 때 한 두번 정도 했나 싶다.

 

자식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게 아니라, 여유있는 부모세대가

생활과 육아로 늘 빠듯한 자식과 손주들에게 선물과 용돈을 자주 챙기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그래서 일본 엄마들은 아이들이 장난감 사달라고 조를 때

"비싼 건 할머니 할아버지께 부탁하자."

며 웃으며 말하는데 그건 농담보다 진담에 가깝다.

한국서도 제법 알려졌을 일본 유명아동복브랜드 '미0하우스' 물건은

거의 조부모가 사주는 품목으로 인식되어 있다.

 

일본의 부모와 자식세대가 이렇게 쿨한 관계가 가능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한국처럼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교육비를 비롯한 결혼보조금으로

전재산을 쏟아붓듯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물론 일본에도 자식교육에 열성인 극성엄마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일단 자기들의 노후를 대비하는 적금과 준비를 먼저 하고

그 한계내에서 교육비를 쓰는 편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조건 노후의 삶을 기댈 수 없는 사회 분위기와

가족간이라도 서로 가능한 한 폐를 끼치지 않고 자립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고 때문이 아닐지.

 

또 한국보다 해외유학이 많지않고 군대를 가지 않으니

4년제 대학을 졸업해도 만22,3살이니 어떤 방식으로든 생활비를 번다.

또 결혼식 비용은 양가의 부조금으로 해결하고 신접살림과 이사 비용은

본인들이 모은 돈으로 해결한다.

전세제도가 없는 일본에서 신혼부부의 첫 집은 큰 목돈이 들지않는

월세로 시작하는데 한국 신혼부부들의 집은 궁궐처럼 보일만큼

작고 초라한 경우가 많다.

젊은 신혼부부가 큰집, 큰차를 가지는 게 오히려 비정상적이라 여겨진다.

 

집 규모가 작고 소박하니 거기에 채워넣을 살림도 크고 화려한 건

어울리지도 않으니 꼭 필요한 것만 준비한다.

신부가 준비하는 혼수도 당연히 없다. 결혼을 기념으로 시댁부모님 물건을

준비하는 문화도 없고 비싼 물가의 나라에서 사는 젊은이들에겐

그런 곳에 쓸 돈도 없다.

결혼예물은 당연히 부부가 될 두 사람이 의논해서 준비하는 것이지

가족이 나서서 해결하는 경우도 드물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 사회에서 결혼이란, 본인 두 사람의 일이란 인식이 일반적이고

또 둘 다 성인이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분위기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크게 의지하지 않고 시작한 결혼이니

부모가 간섭하거나 영향력을 크게 행사할 이유도 없다.

결혼식 이외에 자식의 결혼과정에서 엄청난 지출까진 없었던 부모세대는

큰 재산이 없는 가정이라 해도 일상적인 소비에는 문제가 없을 정도의

경제력은 갖추고 있으니(거품경제를 거쳐온 세대다)

손주가 태어남과 자라는 과정에서

기념일이나 입학과 졸업 등에 여유있게 지갑을 열 수 있다.

 

역시, 자립의 기본은 경제력일까.

성인이 된 이후로 부모자식간이 돈으로 크게 얽히지 않으니

서로가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건 바람직한 현상인 것 같다.

그런 현실을 당연한 듯 누릴 뿐 아니라 시댁으로부터 조금의 간섭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일본 며느리들은 무척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러나, but, しかし!!

 

가족이 꼭 돈으로만 계산하는 관계는 아니지 않는가.

자주 볼 일이 없으니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일도 적지만,

그만큼 서로를 알고 친해질 기회도 적다는 말이 된다.

한국의 심각한 고부갈등 이야기들이 무시무시할 때도 많지만

가끔 생생육아에도 등장하는 다정하고 깊은 맛이 나는 고부관계도

일본에선 찾아보기가 힘들다.

서로 크게 부딪힐 일이 없으니, 갈등도 비교적 덜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러고도 가족인가?싶을 만큼 가벼운 관계같다.

 

남으로 만나긴 했지만, 오랜 시간 함께하며 좋은일 나쁜일 두루두루 겪어

정이 들고, 그 속에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며 성장하는 

한국 가족관계의 긍정적인 면들을

현실에서 경험할 길 없는 일본인들은

한국 대중문화와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열광의 증거가 바로 한류 아닐까.

 

2000년대 초반, 일본에 왔을 때 가족간의 무서운 사건이 일어나는

뉴스들을 보고,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싶었다.

그런데, 불과 10여년이 지난 요즘은 한국도

어마어마한 가정 내 폭력과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민주적인 관계, 배려, 이해, 가사분담..  참 말하기는 쉽지만

일상의 가족관계에서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요즘 일본 사회는 다시 대가족 형태로 변해가게 될지 모른다는 추측이 있다.

독신이나 핵가족 형태가 비경제적이라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한 건물에 생활공간을 나눠 쓰는 것으로 가사와 육아를 함께 담당하며

지출을 줄이자는 인식에서다.

 

<2세대 주택>이라 불리는 이런 주거형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에선 유행해 왔는데,

두 세대 간의 마찰이나 불만이 자연스레 생겨남에도 불구하고

자식세대의 입장에서는 주택구입 비용절감, 생활비 절감효과와

부모세대로서는 외로움과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 해소,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와 조부모의 공간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충분한 돌봄을 받고 자랄 수 있다는

장점이 2세대 주택-대가족 형태의 삶을 선택하게 하는 듯 하다.

내 주변 친구중에도 세 명이 부모세대와 함께 1,2층을 나눈 2세대주택에 산다.

 

나는 친정없는 외국에서 핵가족으로만 사는 게 무척 힘겹고 외로웠다.

그래서 핵가족의 한계를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가족 형태의 삶에

아무 망설임없이 손을 들지도 못한다. 하지만, 한국 가족의 다정함과 일본 가족의

합리적인 부분을 접목해 <2세대주택>의 삶을 현실로 경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과연 지금 30,40대의 현실에 이런 형태의 주택이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002493111p01.jpg

<일본 2세대주택의 이미지. 한 집에 생활 공간을 두 공간으로 나누고 현관도

  두 곳으로 만들어 각 세대의 사생활은 유지한 채, 대가족의 이점은 공유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는 주거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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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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