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고나걸_2.jpg

 

얼마전부터 아르간 오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먼저 써 보고 권해준 친정 언니 덕분이다.

얼굴을 가꾸고 관리하는 일에 내내 게을렀던 탓에 피부는 이제 나이를 대놓고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무심하려 해도 눈에 뜨이는 잔주름들에 심란해하는 나에게 친정 언니는

우선 아르간 오일부터 써 보라고 쥐어 준 것이다.

그래서 하루에 두 번 얼굴에 정성껏 바르고 있다. 뭐가 달라지는지 잘 모르겠지만

피부가 한결 촉촉해진것 같은 느낌이다.

탄력이 떨어지는 목을 위한 운동과 스트레칭에도 부쩍 신경쓰고 있다.

고작 이 정도가 내가 얼굴에 투자하는 노력 되겠다.

 

한동안 대통령이 처방 받았다는 마늘주사니 백옥주사니, 태반 주사가 화제였다.

덕분에 강남 모 병원은 대통령이 맞았다는 미용 주사를 시술받으려는 사람들의

문의 전화가 폭주한단다. 보다 젊어보이고 이뻐 보이고 싶은 마음이야 본능이니

탓할 수 없다.열심히 살면서 외모도 정성껏 가꾸고, 애써 번 돈으로 미용에 투자하는

것도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

여성 대통령으로서 건강과 생기 넘치는 외모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국가도, 자신도 잘 관리하고 잘 지켜내는 여성 대통령이란 얼마나 멋진가.

대통령의 미용 주사가 비난 받는 이유는 국가를 잘 관리하기는 커녕 남의 손에 맏겨놓고

국민들의 눈을 피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비정상적으로 외모에 집착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 시절에 불법적으로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다는 논란에서부터

대리인을 통해 처받받은 각종 미용 주사제들이 청와대로 들어갔다는 뉴스까지

듣다보면 같은 여자로서 부끄러움을 넘어 애처롭기 까지 하다.

그렇게 애써가며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 고작 팽팽한 피부였다니...

 

'해리포터' 시리즈가 완결되기까지 10년간 펜으로서 함께 열광하고 즐기는 동안

내가 참 좋아했던 등장인물중의 하나가 '멕고나걸 교수'였다.

잘 알다시피 주인공 '해리포터'가 속해있는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사감이다.

첫 등장할때부터 주름투성이의 할머니였는데 10년간 주름에 주름을 더해가면서

열연을 펼치는 그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늙어간다는 것과,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감탄하곤 했다.

1934년생인 배우 '매기 스미스'는  1997년 첫 시리즈에서 63세로 출연하여

2007년 마지막 시리즈가 완결 되었을 때는 73세의 나이로 '멕고나걸' 교수를 열연했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나이에 어울리는 외모, 나이가 부끄럽지 않은 관록, 그 나이에 더 완숙해진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펜으로써 참 감사한 일이다.

'멕고나걸'을 볼때마다 안타깝게 겹쳐지는 인물이 우리나라  배우 '김수미'다.

연기와 유머는 나이가 들어도 생생하게 빛을 발하는데 너무 일찍부터 너무 과하게

시술받은 보톡스가 얼굴을 괴기스럽게 만들어 놓은 것을 볼 때마다 재능있고

뛰어난 배우를 저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그녀 자신의 욕망때문인지, 나이든 여배우를

기피하는 방송계의 문제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매기 스미스처럼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습 그대로 연기를 할 수 있었다면

지금 얼마나 근사한 나이든 배우가 되어있었을까...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우리는 계속 볼 수 있었을텐데 언제부터인가는 과하게 보톡스 맞은 얼굴이나마

화면에서 보기가 어려워 졌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젊음은 시들기 마련이다.

아무리 곱고 화사하던 피부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주름이 생기고 생기가 사라져간다.

운동을 하고, 식습관에 신경을 쓰고, 좋은 영양제도 먹고, 맛사지며 이런 저런 관리를 통해

조금 늦출수는 있겠지만 젊음이 스러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우리가 진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늘어난 주름만큼 지혜와 연륜이 쌓이지 못하는 일이지

주름 그 자체일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생기기 시작한 흰머리도 염색을 하라는 주변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지켜보고 있다. 한 번 시작하면 계속 해야 한다는 염색은 아무리 천연 제품을 써도 피부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데 애써가며 머리칼에 색을 들일 이유가 없다.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육식을 즐기지 않고, 여전히 매일 몸을 움직이며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고

인스턴트와 간식을 되도록 멀리하면서 이제 아르간 오일까지 발라주는 것으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다. 그리고도 늘어나는 주름은 인생의 훈장같은 것이라

믿고 있다.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것은 취임한 후로 해가 더 할 수록 오히려 젊어보이는

피부가 아니었을 것이다. 국정 운영과 민생을 챙기는 일에 애쓰느라 주름도 늘어나더라도

국민과 함께 울고 웃으며 정말로 국민들을 챙기고 보살피는 대통령이었다.

화려한 의상, 수십년째 변함없는 헤어스타일, 미소와 웃음에도 인색했던 차가운 표정의

여왕이 아니라, 저자거리에선 상인들 속에 녹아들고, 아이들 앞에선 그냥 몸과 마음이 다 열리고

아파하는 국민들 앞에선 먼저 울음이 되고 통곡이 되는 그런 대통령이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혹 흰머리가 눈에 띈다해도 그런 대통령 앞에서는 누구도 외모를

흉보지 않을 것이다.

 

늘어나는 주름만큼 더해가는 권위와 정의를 품고, 불의에 대항하며 학생들을 끝까지 지켜내는

멕고나걸 교수의 모습에서 살아낸 세월이 내게 지녀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

스러져가는 젊음에 집착하기 보다, 지금 내 삶에 최선을 다하며 나 자신을 최대한 꽃 피우며

사는 삶이야말로 진짜 빛나는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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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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