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하면 매일 남편과 한 이불에서 함께 자는 줄 알았다.
혼수를 장만하며 예쁜 이불을 살 땐 남편과 같이 자며 나눌 아롱다롱 예쁜 꿈도 많이 꾸었더랬다.
그러나...
남편과 한 이불에서 잔 건 결혼 10년 동안 딱 첫 아이 낳기 전까지 였다.
결혼하고 바로 첫 아이를 가졌으니 한 1년이나 같이 잤을까, 첫 아이 낳은 그 날부터 서로
딴 이불 덮기 시작해서 어언 9년째 우린 떨어져 자고 있다.
첫 아이때는 나와 아이가 침대 아래서 따로 자고 남편은 침대에서 혼자 잤다.
그러다가 둘째 낳고 부터는 내가 양쪽에 아이들을 끼고 자고 남편은 따로 이불 덮고 잤다.
셋째를 낳은 후로는 한쪽에는 셋째가 다른 쪽에는 3일찍 내 옆자리를 차지하는 첫째와 둘째 옆에
남편이 잔다.
마당 있는 집에 이사 온 후에는 제일 넓은 거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잔다.
침대는 여름에 잠깐 쓰기도 하지만 침대가 놓여 있는 안방이 워낙 곰팡이가 심해 대부분
거실에서 이렇게 잔다.
그래서 너른 거실에 다섯 식구 잘 이부자리 펴고 개는 일이 늘 귀찮다. 침대를 쓰면 몸만 쏙
빠져 나오고 대충 자리만 정돈하면 되지만 겨울 이부자리는 어찌나 손이 많이 가는지 한 번 펴고
개려면 꽤 힘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으른 나는 늘 아이들을 시켜먹을 궁리를 열심히 한다.
온 가족이 함께 자는 일은 좋기도 하지만 불편한 점도 많다.
가족간의 거리가 가까와지는 건 물론 제일 좋은 점이다. 아빠랑 만날 시간이 없는 아이들은
이부자리를 펴고 나면 이불 위에서 아빠에게 한꺼번에 매달린다.
책을 읽어줘도 세 아이가 함께 듣고, 영화도 온 가족이 함께 본다. 그래서 늘 함께 나눌 화제거리가
풍성하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열중하고 있는지 다 안다.
그렇지만 모두가 함께 자야 하기 때문에 신경써야 하고 불편한 점도 있다.
늘 늦도록 책을 보고 싶어하는 필규가 잔소리를 제일 많이 듣는다. 불을 꺼야 모두 잠들 수 있기
때문에 한 사람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내가 결혼할 무렵에
'아무리 남편이랑 싸웠어도 잘 때는 꼭 한 이불에서 같이 자야 한다. 그래야 정도 깊어진다'
일러주셨건만 애 낳고 살다보니 도대체 아이들 떨어뜨려 놓고 부부끼리 같이 자는게 가능하지가 않다.
첫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 제 방에서 혼자 자라고 권해 봤지만 딱 잘라 거절 당했다.
하긴 어린 두 여동생은 여전히 부모 곁에서 자는데 저 혼자 제 방에서 자고 싶을까.
그래서 우리 부부는 조금 구슬르다가 맘을 접었다. 어짜피 좀 더 커서 저만의 세계가 생기고 나면
같이 자자고 불러도 저 혼자 잘 날이 오겠지... 생각한 것이다.
가끔 남편은 아이들 잠 들고 나면 슬며시 내 옆으로 와서 눕는데 그럴땐 남편이 안스럽기도 하다.
투탁거리고 싸워도 부부끼리 살 부비며 말없이 풀기도 하고, 서로 힘든 하루 살아낸 것을
가만히 안아보며 위로도 하는 법인데 늘 엄마만 편애하는 아이들에게 치여 마누라 언저리만
맴돌고 있는게 미안한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 건강하고, 또 큰 탈없이 잘 자라고 있는 것도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한 이불에서
서로 부비고 안고 만지며 보낸 시간들 덕이라는 것을 안다. 세월이 가면 하나 둘씩 품을 떠날테고
그 다음엔 넓은 이부자리 위에 우리만 남을 시간이 오리라는 것도 안다.
그때가 오면 어떨까? 좋을까? 아니면 허전할까..
부모에게 비밀이 없고, 뭐든지 함께 하고 싶어 하고, 서로 안기고 싶어 하는 이 끈적끈적한
시간이 어느날 끝나버린다는게 지금은 실감이 나지 않지만 제 방에 들어가 문을 쾅 닫아 버릴
날이 와도 너무 놀라지는 말아야지...
그러니까 지금 흥부네 식구처럼 온 식구가 함께 자는 이 시절을 맘 껏 누리며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부벼가며 찐하게 보내는거다.
확실한 건 부부끼리 한 이불 안 써도 애 만드는 일엔 아무 상관없더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