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월 된 막내는 요즘 입만 열면 '내가, 내가'를 외친다.
외출하려고 외투를 입히면 '내가, 내가' 하며 내 손을 뿌리치고 제가 지퍼를 올린다고 돌아선다.
양말도 제가 신는다고 가져가고 현관에서는 '내가, 내가'를 외치며 제 신발의 찍찍이를 떼고 발을 집어 넣는다.
자동차 키 버튼도 제가 눌러야 직성이 풀리고 차 문도 제가 열겠다고 까치발을 한 채 낑낑 애를 쓴다.
어린 것이 벌써 제 앞가림을 시작했다면 마땅히 환영하고 칭찬해야 하지만
뭐든지 제가 하겠다고 나서는 의욕 충만한 막내를 감당하는 일은 무지무지한 인내와 기다림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시간 많을때야 스스로 성공 할 때까지 양말을 저 혼자 신도록 놔둬도 되지만 바쁘고 급한데
제가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때로 머리 뚜껑이 확 열릴만큼 짜증 나기도 한다.
옷 입고, 양말 신고, 신발 신고 차에 오르는 일이 보통 때는 10분 안에 해 치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막내가 '내가, 내가'를 외치게 된 후 부터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렵고 힘든 일이 되 버렸다.
'엄마가 해 줄께' 하며 적당히 끼어들려고 하면 막내는 기어코 내가 재빨리 올린 지퍼를 다시 내려서 처음부터 저 혼자 올리겠다고 힘을 준다.
'바쁘니까 이번엔 엄마가 해줄께' 하며 얼렁 해치우고 덜렁 들어 차에 앉히면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 버린다.
그래서 어지간히 급한 경우를 제외하고 저 혼자 하게 놔둔다.
덕분에 다섯 살, 두 살 두 딸을 데리고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채비가 여간 오래 걸리는게 아니다.
맘에 드는 머릿방울 부터 고르게 해야 하고, 내가 입히려고 해도 제 맘에 안 들면 안 입으려고 하고
양말부터 신발도 모두 제가 골라 저 혼자 신으려고 하는데다 냉큼 맘에 드는 가방 들고 나오는 언니 따라
저도 가방 하나 찾아 들어야지, 인형 안고 나오는 언니처럼 저도 인형 하나 안아야지, 정말 온갖
준비 하는데만 한 나절 걸린다. 어떤 날은 신발이 두 켤레가 꼭 같이 맘에 들어 한 켤레는 신고
다른 한 켤레는 손에 들고 따라 나서지를 않나, 어떤 날은 장난감 카트를 기어이 밀고 따라 나오기도 한다.
마당끝은 내리막길인데 그 길도 제가 카트를 밀며 내려오겠다고 고집이면서 제 몸에 손도 못대게 해서 그 뒤를 여차하면 잡을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숨 죽이고 따라 내려온 적도 있다.
어린 딸 데리고 나선 산책길이 준비부터 땀을 쭉 빼는 것이다.
하지만 지켜보면 정말 기특하고 이쁘다.
엄마가 안 도와주면 아무것도 못 하던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커서 벌써 저 혼자 다 하겠다고 나서냔 말이다.
게다가 얼마전부터는 오줌도 가리기 시작했다.
빨리 걷게 된 다음부터는 아랫도리에 불룩한 천 기저귀를 자꾸 빼 던져서 집에서는 아예 기저귀를 빼고 헐렁한 내복 바지만 입혀 놓곤 했다. 오줌을 싸면 바지를 통째로 갈아 입히는 편이 더 수월했다.
그래서 언니가 쓰던 쉬통을 내 놓고 자고 일어나면 앉혀서 오줌을 누게 했다.
'오줌 마려우면 여기에 앉아서 쉬 - 하는거야?' 일러 줄 때는 은근히 18개월에 기저귀를 뗀 제 언니처럼 해 줄라나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막내는 내내 바지만 적셔 내 놓을 뿐 20개월이 넘어도 저 혼자 쉬통에 앉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결에 하루에 한 두 번씩 쉬통에 오줌 눟는 것을 성공하더니 며칠 전부터는 놀다가도 저 혼자 쉬통에 달려가 뚜껑을 올리고 쉬를 하는 것이다.
성공할 때마다 집안이 떠나가도록 박수를 치고 폭포같은 칭찬 세례를 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의욕 넘치는 막내는 쉬통에 오줌을 싸고나면 오줌이 담겨 있는 그 통을 제가 빼 내서
화장실로 가져가 변기안에 쏟는 것도 한다. 두 손으로 받치고 간다고 해도 춤 추듯 걷는 막내의
걸음을 따라 출렁 출렁 쉬통의 오줌이 길가에 넘치는 건 당연하다.
엄마가 해 준다고 하면 펄쩍 뛴다. 간신히 '같이, 같이'를 외치며 쉬통에 내 손을 댄다.
그리고 막내랑 같이 쉬통을 들고 변기에도 같이 버린다. 쉬통을 내가 씻어서 주면 제가 가서 다시 끼운다.
가끔 바지에 똥을 싸기도 하는데 언니가 엉덩이를 휴지로 닦는 모습을 본 막내는 제가 화장실로 달려가 휴지를 사정없이 풀어서 제 엉덩이를 닦는 시늉을 하고 그 엄청난 휴지 뭉치를 그대로 변기에 던져 버린다.
2층에서 놀다가 똥을 쌌을 때는 근처에 휴지가 없었던 모양인지 제 손으로 쓰윽 똥꼬를 문지르고 내게 똥 범벅된 손을 흔들며 달려 오기도 했다.
혼자 똥 싸고, 저 혼자 뒷 처리를 하기 시작했으니 이만하면 기특한 독립이라 하겠다.
놀다가 손에 지저분한게 묻으면 쏜살같이 욕실로 달려가 세면대 앞에 있는 작은 의자를 딛고 서서
수돗물을 최대로 틀어 놓고 소매도 안 걷도 두 손을 풍덩 담궈 철벅거리며 씻고 오고
제가 먹은 밥 그릇은 제가 싱크대에 넣겠다며 까치발을 하고 싱크대 안에 그릇을 떨어 뜨려 넣는다.
(그러다가 이가 나간 그릇이 여럿이다. ㅜㅜ)
내가 안 볼때 작은 의자를 싱크대 앞에까지 끌고 가서 그 위에 올라가 설걷이를 한다며 철벅거려서
부엌바닥이 물 바다가 되기도 했다. 아아아. 정말 다 큰 모양이다.
밤에 다 씻겨 놓으면 옷장에 달려가 제가 옷을 찾는 시늉을 하고, 그러다가 제법 맞는 옷을 찾아 오기도 하고 졸리면 제 요 위에 누워 이불을 배까지 덮고 나보고 옆에 누워 젖을 달라는 입소리를 내기도 한다.
둘째가 내게 와서 오빠가 심술 부린 얘기를 꺼내 놓으면, 저도 속상한 표정을 짓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말 소리를 끝없이 늘어 놓기도 한다.
오빠 일기 쓰는 옆에서 저도 연필 가져다가 종이 위에 글 쓰는 시늉을 하고, 오빠 언니 책 읽는 옆에서 저도 책 꺼내 들고 큰 소리로 읽는 시늉을 한다. 뭐든지 언니 오빠가 하는대로 다 하고
엄마, 아빠가 하는 일에 다 나선다. 이제 저도 완전히 다 큰 아이가 되었다는 듯이..
'내가, 내가' 외치며 도움을 뿌리치고
'내꺼, 내꺼' 외치며 제 것을 주장하고 나선 우리 막내.
그래서 세 아이의 충돌과 갈등도 더 심해 졌지만 흐뭇하고 귀엽고 대견해서 가슴이 뻐근하도록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일도 더 많아졌다.
막내의 시간은 언제나 반짝 반짝 빛이 난다.
그 작은 몸에서 뿜어나오는 생기 넘치는 에너지와 사랑스런 웃음,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궁리와 노력을 대할 때마다 너무나 이쁘다. 정말 이쁘다.
드디어 독립을 선언한 막내 때문에 우리집은 더 들썩들썩 시끄러워졌지만
하루 하루 깜짝 놀랄만큼 쑥쑥 커 가는 막내의 발걸음에 진심어린 애정을 보내고 싶다.
장하다, 막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