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룸 23.jpg

 

부모와 아이 사이에 갈등상황이 생길 때 확실히 아이들은 부모에 대해 나름의 전략이

있는 것 같다.

자기들은 그게 전략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만 엄마인 내가 보기엔 세 아이 다

아주 특화된 전략들을 펼친다.

 

열네 살 큰 아이는 아주 지능적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은 장면을 전환시켜 저를 피해자로 만드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큰 아이가 잘못을 해서 내가 야단치게 되는 상황에서

열심히 핏대 올려가며 설명을 하고 야단을 치는데, 녀석이 갑자기 나를 보며 이러는 거다.

"근데요, 엄마, 말하는 건 알겠는데요, 엄마도 소리 좀 지르지 말아주실래요?"

"엄마는 소리 지른 게 아니야, 설명을 하는 거지."

"그건 엄마 생각이구요, 저한테는 설명하는 게 소리지르는 것 같이 느껴진다구요."

"니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엄마 목소리가 커지는 거 잖아."

"엄마가 소리를 지르니까 제가 잘못을 인정하기 싫은거라구요."

머리 뚜껑이 또 열리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래.. 그럼 서로 작은 소리로 이야기해 볼까?"

"이미 저는 엄마가 아까까지 계속 소리지른 거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더 이상

엄마랑 말 하기가 싫어요."

"뭐라고? 엄마 목소리가 크다고 니가 얘기해서 엄마가 힘들게 목소리도 낮췄는데

이젠 말하기 싫다고? 너, 엄마 놀리는거야?"

"제가 언제 엄마를 놀렸어요? 이것 봐요. 엄마는 또 엄마 맘대로만 생각하면서

저한테 또 큰 소리 치잖아요.이러니까 제가 엄마랑 말하는 게 싫은거라구요."

그리고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

뒤에 남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붉으락푸르락 거리며 씩씩 거린다.

애초에 핵심은 이게 아니었는데 녀석의 억지에 말려들어 결국 나만 소리 지르는

나쁜 엄마가 되 버렸다. 매번 이런식이다.

 

둘째는 오빠와 여동생 사이에서 치이는 게 많다 보니 조금만 억울한 기분이 들면

울음부터 터뜨린다. 울면서 소리를 지른다. 그게 가라앉아야 대화가 가능하다.

울지 않고 말하는게 여전히 어렵다.

 

그런데 일곱살 막내는 정말이지 놀라운 전략을 구사한다.

예측불허의 메소드 연기라고나 할까? 막내의 반격은 늘 나를 속수무책이 되게 한다.

며칠 전의 일이다.

 

셋이서 과자를 한봉지씩 먹었는데 아들과 큰 딸은 다 먹은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막내는 거실 바닥에 그대로 두었길래 막내를 불러 치우라고 했다.

그 순간 막내는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더니

"그럼, 엄마는 저를 위해 뭘 해주실건데요?" 이러는거다.

나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 막내를 바라보았다.

"아니, 니가 먹은 과자봉지, 니가 치우라는데 엄마보고 뭘 해줄거냐니?

그건 니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잖아?"

"그러니까요, 저는 이 봉지를 치우며는요, 엄마는 뭘 해주실 거냐구요."

"해주긴 뭘 해줘. 그건 그냥 니가 치우면 되는 거지."

"그럼 저만 힘든 거잖아요. 엄마는 안 치우고 나만 치우잖아요."

그리고는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는 거다.

"자기가 먹은 과자 봉지, 자기가 치우는 게 당연한 거잖아. 당연한 걸 안 했으니까

니가 잘못한 거잖아. "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

이럴 때는 정말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말문이 탁 막힌다.

"그럼 뭐가 중요한건데?"

"나만 힘들고... 엄마는 안 힘들고... 흑흑."

"엄마는 방 닦고 있잖아. 너는 봉지만 치우면 되는데 뭐가 힘들어. 니가 방 닦을래?

엄마가 봉지 치우고?"

"엄마 맘대로 그렇게 정하면 어떡해요. 흑흑."

"아니, 그럼 니가 빨리 치우라고."

난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어 솟아오르는 짜증을 참아가며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 글썽이는 얼굴을 들고 막내가 이렇게 말하는 거다.

"엄마 조금 부드러운 소리로 말 해주면 안될까요? 너무 무서워요"라며

제 양 팔을 꼬옥 감싸안는 제스추어를 취한다.

이런...

갑자기 막내는 포악한 엄마에게 당하는 착하고 여린 딸이 돼버렸다.

"니가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엄마를 화나게 하잖아"고 했더니, 이번에는

"엄마... 부탁인데요... 흑흑... 한 번만 안아주실래요? 한번만이요."

하며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치 내가 한번도 저를 안아주지 않은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제게 필요한 것은 엄마의 사랑뿐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봉지는 거실 바닥에 그대로 있는데 막내는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나를 보며 애처롭게

간청하고 있고, 나는 걸레질 하다 말고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정말이지 혼을 쏙 빼놓는 막내다.

 

저녁에 잘 준비로 한창 바쁠 때 막내를 불러

"이제 목욕탕에 가서 이 닦자" 했더니

"지금은 그럴 기분 아니거든요?" 한다.

"이빨은 기분으로 닦는 게 아니야, 빨리 가서 닦아"

"그럼 잠깐 안방에 들어가 혼자 생각 좀 해 보고 나올래요."

"생각? 아니 이 닦으라는데 무슨 생각?"

"이빨, 닦고 싶은지 아닌지요."

???

 

남들한테 이런 얘길 하면, 깔깔 웃어가며 이룸이가 너무 사랑스럽다느니

어쩜 그런 말들을 하냐느니, 너무 귀여워 죽겠다고 야단들이다.

글쎄 뭐, 귀엽기야 하지만 정말 바쁘고, 고단해서 빨리 해주고 나도 쉬고 싶을 때

이런 말을 들으면 귀엽고 뭐고 간에 머리 뚜껑만 더 열린다.

 

확실히 막내는 태도도 행동도 뭔가 극적인게 있다.

가끔은 혼자 물건을 집어 올릴 때도 손가락을 높게 치켜들고 여왕처럼 도도하게

움직이기도 하고, 몸을 그냥 돌리면 될 것을 머리칼을 한번 찰랑이며 도는 등

하여간 뭔가 특별하다.

표정 변화도 어찌나 변화무쌍한지 언니랑 싸울 때의 이룸이의 그 풍부한 눈썹 움직임에

윤정이는 늘 기분이 먼저 나빠져 바르르 떨고 만다.

웃으면서 달려오는가 싶은데 어느새 고개를 홱 돌리며 새침스런 얼굴로 바뀌기도 하고

다 함께 기분 좋게 간식을 먹으며 놀 때도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며

 "아.. 엄마가 이걸 말하면 안 들어주시겠지" 하며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뭔데?"

"물 한잔만 가져다 주시면.... 물론 안되겠지만요..."

아이고, 이 깜찍한 것 같으니....

 

조금 전까지 생글거렸는데 금세 눈물을 뚝뚝 떨구며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인양

하소연하기도 하니, 막내가 보이는 모습은 남편과 내게 늘 연구 대상이다.

남들은 이담에 배우를 시키면 되겠단다.

 

그런거냐, 막내야?

엄마가 타고난 배우를 몰라본 거냐?

도무지 평범한 엄마 밑에서 너무 비범한 재능을 타고 나서 힘든 거야? 그런 거야?

 

유치원에 가기 위해 가방을 들어주는데 갑자기 나를 쳐다보는 막내..

"엄마...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예요., 머리 스타일도 이쁘고...." 한다.

세수도 안 하고, 빗질도 안 해서 부스스한 머리로 정신없이 세 아이의 등교 준비로 바쁜

나를 보면서 말이다. 이러니 난 도무지 막내 앞에서는 맥을 못 추게 된다.

 

당할 때는 황당하지만 두고 두고 곱씹어가며 나를 웃게 하는 말을 제일 많이 들려주는 막내다.

그 깜찍한 말들, 그 놀라운 몸짓들.. 그래, 넌 정말 타고난 배우인가보다.

너의 그 멋들어진 연기를 기왕이면 오래 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나를 세상에서 가장 이쁜 엄마라고 해 주는 막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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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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