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룸 4.jpg

 

엄마가 되기 전에는 소근육이니, 대근육이니 하는 말들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아이를, 그것도 첫 애를 사내아이로 낳고 보니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아 키운

자매들이며 형님,  동서, 이웃들이 부지런히 조언들을 들려주는데 그 중에

참 많이 들었던 말이 '소근육', '대근육' 이런 말들이었다.

 

결론은 여자 아이들은 소근육이 먼저 발달해서 섬세한 작업들을 일찍 할 줄 알고

남자 아이들은  소근육은 더디게 발달하니 가위질을 못한다거나 그림 그릴때 색칠을

꼼꼼하게 못하더라도 그러려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다는 것이다.

 

정말 첫 아이는 가위질이며 종이접기, 정해진 칸 안에 색칠하기 같은 것들을

오래도록 힘들어 했다. 게다가 왼손잡이어서 글씨 쓰는 것도  서툴렀다.

열두살인 지금도 글씨 쓰는 것을 싫어한다.

부푼 마음으로 초등학교에 보내놓았지만 두 세줄 일기 쓰는 것도 귀찮아 하고

알림장은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써오는 아들에 비해 같은 반 여학생들은

이쁜 글씨로 일기도 척척 쓰고 그림이며 미술 작품도 어찌나 근사하게 만들어 내는지

나는 감탄하기 바쁜데 딸 키우는 엄마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얄밉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들 밑으로 두 딸을 낳고보니 이젠 내가 아들 키우는 엄마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있다.

첫 애와 네살 터울로 얻은 딸은 어려서부터 손끝이 야물었다. 엄마가 하는 것을

가만히 보다가 저도 흉내 내곤 했는데 어떤 일이든 처음부터 그럴듯 하게 해 내는

것이었다. 그림도, 글씨도 오빠에 비하면 놀랄만큼 빨리 섬세해 졌고 학교에 입학

해서도 알림장이며 일기, 받아쓰기 같은 것을 어려워 하지 않으니

첫애 때와 비교하면 마음이 얼마나 여유롭고 느긋한지 이제서야 밀린 계를

탄 기분이다.

 

그것만해도 고마운데 언니랑 세살 차이나는 막내딸은 더 잘 한다.

열두 살 오빠와 여덟살 언니를 늘 보며 자라는 막내는 또래와 노는 시간보다

오빠 언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월등히 많다. 자연스럽게 오빠, 언니를

따라하고 같이 놀면서 일찍 깨우치는 것들이늘어난다.

숙제가 있는 오빠, 언니가 부러워서 제 공책을 가지고 매일 숙제를 한다며

그림을 그리고 글씨 쓰는 연습을 하는 막내다.

 

이룸 5.jpg

 

집안일도 잘 돕는데 이렇게 고구마 줄기 껍질 벗기는 일도

척척 잘 해낸다. 오빠, 언니는 같이하자고 해도 싫다고 도망가는 일을

엄마와 즐겁게 함께 해주니 정말 정말 로또 맞은 기분이랄까.

말도 너무 잘 하고, 달리기도 잘 하고, 노래도, 그림도, 이야기도 잘  짓는

막내를 보며 이 아이야 말로 진정한 천재가 아닐까... 하는

첫애, 둘째 어릴때 꾸었던 꿈들이 요즘 다시 뭉게 뭉게 피어나는 중이다.ㅋㅋ

 

이룸 6.jpg

 

이룸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하루에 수십장을 그리는 날도 있는데 매번 엄마 선물이란다. 귀여워서, 기특해서

그리고 그림이 너무 맘에 들어서 따로 챙겨두는데 그림보관하는 가방이 벌써

꽉 차서 고민이다.

 

이룸이의 그림 3.jpg

 

며칠전에 이룸이가 그려준 '엄마와 아빠'다. 너무 맘에 들어서 액자에 넣어

거실에 세워 두었다. 실제로 남편과 나는 키 차이가 별로 없는데 그림에서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ㅋㅋ

 

이룸이의 그림 2.jpg

 

이 그림 제목은 '바다의 향'이다. 바다속으로 햇님이 지고 있고, 우리 가족이 사는 큰  집에

서 엄마가 버섯이랑 고추 키우는 창고로 가고 있는 중이란다.

이 그림도 너무 이뻐서 챙겨 두었다. 이러다가 이룸이 그림으로 내 책상이 차고 넘치겠다.

 

이룸이의 그림.jpg

 

다섯살인데 작고 섬세한 그림들도 얼마나 잘 그리는지 그냥 보고만 있어도 흐믓하다.

 

남들은 막내도 어린이집 보내고 반 나절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자유를 누리라고 권하지만

막내가 주는 기쁨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디게 배워가는 큰 아이를 가슴 졸여가며 키웠던 나로서는 막내가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다 고맙고, 귀하고, 놀랍고, 행복하다.

이 아이가 크면 이런 행복은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막내와 보내는 하루 하루를 어디에다 고스란히 담아 두고 싶을 정도다.

 

첫 아이 입학을 앞두고 셋째를 낳았을 때 둘째는 고작 네살이었다.

큰 애 학교 뒷바라지를 하면서 둘째와 막내를 같이 돌볼때는 정말 매일 매일이 전쟁같았다.

세아이가 같이 아프기라도 하면 며칠씩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학교 행사에도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참여해야 했다. 강의를 가든, 교육을 받든 어디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랬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둘째도 학교에 다니고 하루 반 나절은 막내와 둘 뿐이다.

힘들게 키웠던 날들을 보상이라도 하듯 막내는 너무나 이쁘게 내 시간들을 웃음과 행복으로 채워준다.

 

혼자서 꼼지락 꼼지락 그리고 만든 것들을 '엄마, 선물이예요' 하며 눈을 반짝이며 달려와 안기는

막내를 보고 있으면 이 시간들이 훌찍 지난 후에, 어린 시절에 아이들에게 받은 선물들을 내가 얼마나

그립게 추억할지 벌써부터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이 키우는 일은 힘들지만 힘든 만큼 행복도 진하다.

이렇게 농도짙은 기쁨과 행복을 이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디서 얻었을까... 싶다.

 

'엄마, 엄마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요?

하늘 만큼, 땅 만큼, 돌맹이 만큼, 나무 만큼, 밭에 있는 고구마 만큼, 하늘에  있는 구름만큼

해치랑 해태, 복실이 만큼, 밤 나무에 달려 있는 밤 만큼, 집에 있는 책 만큼.....'

이렇게 한 없이 읊어대던 막내는 마침내 곡을 붙여 노래를 불러 준다.

세상에 다시 없는 엄마 사랑 찬가다.

아아아. 행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막내가 주는 행복을 매일 매일 마음껏 누려야지.

이 맛에 애 키우는 구나.. 정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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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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