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이룸.jpg

 

주말 아침...

늦잠에서 일어나 마루로 나와보니 거실 TV앞에 남편 혼자 앉아 있다.

'피곤할텐데 더 자지, 왜 벌써 일어났어..' 하며 다가가는데

남편, 눈가가 젖어 있다.

이 사람..... 울고 있었구나..

 

그제서야  TV 화면에 눈이 갔다.

늙은 할머니가 나오는 휴먼 다큐가 방영되고 있었다.

악착같이 농사짓고 잠시도 몸을 놀리지 않으며 자식들을 챙기는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는 그런 나이 많은 엄마의 이야기였다.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남편은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나도 울컥했다.

'여보... 엄마 생각 하고 있었구나.. 우리 남편.. 가엾네..

어떻게하니.. 그냥 생각나면 생각나는대로 그리워하고, 울어야지..

울어도 돼, 여보, 그게 훨씬 좋아.

당신 때문에 나도 갑자기 어머님 생각 나잖아..'

눈물이 핑 돌아서 남편을 끌어 안았다. 남편은 말없이 눈가를 훔쳤다.

 

얼마전에도 그랬다.

그날도 주말이었고, 아이들은 모두 마당에 나가 놀고 있을때

남편과 나만 집에 남아서 집안 일을 하면서 무심하게 TV를 보고 있다가

둘 다 눈물을 흘려 버렸다.

섬에 사는 홀어머니가 나오는 다큐였는데 나이든 외아들이 좋아하는

뭍에 사는 아가씨가 섬에 놀러와 아들이 아가씨에게 섬을 구경시켜주는

그런 장면이었다. 발랄하고 싹싹한 아가씨는 누가 보아도 며느리로

맘에 꼭 드는 그런 사람이었고 아가씨를 대하는 아들의 태도는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이 너무 묻어나서 화면으로 지켜보기도 참

짠했지만 정작 그 아가씨는 그야말로 섬에 놀러온 사람처럼

온갖 멋진 풍경과 맛난 것들을 신나게 감탄하며 즐길 뿐

애타는 남자의 마음에 곁을 내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남편과 내가 같이 울컥했던 장면은 저녁이 되어 아가씨가 뭍으로

돌아가는 대목이었다. 낡은 사립문까지 나와 홀어머니는

아가씨에게 또 놀러오라고 몇번이나 손을 흔들고 못내 아쉬워

돌아서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저렇게 이쁘고 싹싹한 여자가 아들과 짝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저런 이쁜 사람이 며느리가 되어 이 집안 식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들은 이렇게 좋아하는데, 이번에 가서 다시 안 오면 어쩌까..

사립문에서 하염없이 손을 흔드는 늙은 어머님의 모습에서

나도, 남편도 돌아가신 어머님을 보았고, 속절없이 둘다 울어버렸던 것이다.

 

남편은 서른 일곱이 되도록 장가를 못가 어머님 애를 태워드렸던 일이

떠올랐을 것이다. 어머님은 선을 볼 때마다 기대를 하셨다가, 또 실망하고

속 상해 하다가 다른 선 자리를 알아봐달라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가며 부탁을 하셨다고 했다.  그런 어머님의 모습이 싫어

명절에도 일부러 고향엘 안 내려갔다는 남편이었다.

그런 아들이 서른 일곱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가는 날, 어머님이

얼마나 환하고 고우셨는지.. 첫 아들을 낳았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처럼 기뻐 하셨는데..

섬에 사는 홀어머님의 그 주름진 얼굴에서 자식을 염려하는 애달픈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고, 그게 바로 우리 어머님의 마음이었음을

세상 모든 어머님들의 마음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아.. 남편은 그렇게 오래도록 엄마의 애를 태우던 자식이었음이

사무쳤을 것이다. 늘 어머님께 잘 하는 아들이었으면서도 갑작스런

어머님의 죽음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던 자신이 미웠을 것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9개월이 지났다.

그 시간동안 남편은 늘 담담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줄때나, 아이들 어린시절을 이야기해줄때 자연스럽게 할머니와 얽힌 대목이

나올때에도 아이들 앞에서 울컥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남편 마음 속에서 어머님이 떠나신 그날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는 것을... 어머님의 부재를 하루도 잊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얼마전에 나는 꿈에 어머님이 너무나 생생하게 나와 새벽잠을 설친 적이 있었다.

남편을 깨워 꿈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남편은

'오늘이 어머님 돌아가신지 딱 8개월 되는 날인데, 그래서 나오셨나보다' 하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남편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날로부터 매일 매일을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구나.. 나는 시어머님을 잃은 며느리지만, 남편은 엄마를 잃은 아들이구나..

그 사무치는 그리움이, 허전함이, 슬픔이 나와 같을 순 없을 것이다.

 

그리움이란 참으로 힘들고 애달픈 감정이다.

어느순간 솟구쳐올라 담담하게 유지하던 마음을 온통 흔들어버린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고나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온 천지에 가득 넘쳐난다는 것을 말이다.

아기 손을 잡고 가는 젊은 엄마들을 보아도, 등이 굽은 어르신들을 보아도

어머님 모습이 그 안에 있다. 쑥쑥 크는 아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다가도

내 마음이 어머님 마음이었음을 깨닫고 가슴이 서늘해지곤 한다.

어머님 좋아하시는 음식을 먹다가도, 좋은 풍경을 보다가도, 날이 너무 좋아도

비가 오래 오는 날에도,  그냥 잠이 안 오는 밤에도 떠난 사람 생각은

불쑥 불쑥 솟구쳐 못 견디게 한다. 남편은 더할것이다.

마흔하고도 다섯이나 되었지만 나도 아직 엄마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데 엄마잃은 남편의 그 애달픈 마음은

내가 다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눈물이 좋다.

슬플때 울 수 있는 사람이어서 안심이다.

슬프고 힘들어도 안 슬픈 척, 안 힘든 척 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정말 정말 고맙다.

그리움을 견디려면 그 그리움을 자꾸 자꾸 끄집어 내는 수 밖에 없다.

일상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떠난 사람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웃고, 울고, 가슴 뭉클해 하는 것이

우릴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아이들과 나는 일상에서 무시로 할머니 이야기를 한다.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면 아이들은 '할머니가 소풍나왔나보다요, 구름들하고요'

이렇게 얘기한다. 단호박을 구워 먹을때는 '할머니가 단호박을 좋아하셨는데..'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잠 자리에 누워서 이런 저런 수다를 떨 때도

무겁지 않게 할머니 이야기를 나누고, 하늘을 향해 '할머니도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를 건넨다.

그립지만 아프지 않게, 보고싶지만 너무 사무치지 않게, 생각나지만 힘들지 않게

매일 매일 살아가는 순간에 할머니를 만나는 일, 그게 나와 내 아이들이

할머니의 부재를 견디는 방법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충분히 충분히 그리워하다보면

아프지 않게 떠난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70년을 넘게 살다가도 빈 자리가 이렇게 큰데, 꽃 다운 나이의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애통함은 차마 짐작할 수 도 없다.

울고, 울고, 울어서 눈물이 다 말라버려도 그리움은 생생할 것이다.

그래도 견디고 견뎌서 다시 일어나시라고, 하늘나라의 자식들을

위해 더 잘 살아내시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같이 울어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 빈 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기를

오래 오래 애통해하고, 아파해서  마침내 그 빈자리를 함께 매울 수 있기를..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 곁에 있는, 모두가 손주같은 그 어린 넋들 손을 꼭 잡아 주세요..

우리 모두 만나러 갈때까지 그곳에서도 행복하라고..

우리가 잘 살아서 조금 더 나은 세상 만들 수 있게 힘을 주세요.

 

부모를 보낸 자식도,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도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부디 웃으며 지낼 수 있게..

그럴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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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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