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jpg

 

우리 동네의 봄은 요란한 농기계 소리로 온다.

경운기며 트렉터 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또 봄이구나.. 실감하게 된다.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속에 이미 새 봄은 와 있는 것이다.

 

우리도 농사준비에 들어갔다.

작년에는 여름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해 농사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올해는 퇴비도 넉넉하게 들여 놓았고 작년보다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보리라 결심했다.

 

올해는 매년 잡풀만 우거지던 마당 아래 밭을 제일 먼저 갈았다.

 

아빠랑 필규.jpg

 

남편은 마당 아래 밭을 갈아 나무 판자로 길죽한 상자모양으로 다듬었다.

아이들만의 밭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농삿일에 시큰둥하던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했다.

자기만의 밭이 생긴다고 하니까 달려들어 도왔다.

필규는 아빠와 함께 밭 둘레에 나무 판자를 대는 일을 열심히 거들었다.

 

시골에서 사는 아이들이 농삿일을 좋아할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다.

도시의 아이들에게 어쩌다 하는 농사체험은 특별한 이벤트가 될 수 있지만

농사가 일상이 되는 아이들에겐 그저 일일 뿐이다.

 

시골에 이사오면서부터 텃밭을 시작했지만 아이들은 첫해만 신나서 달려들었을 뿐

재미와 흥미가 사라지자 귀찮고 힘든 일이라며 질색을 했다.

농작물보다 더 잘자라는 풀들과 풀모기에 시달리며 밭일을 하는 것은 어른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다보니 아이들이 밭을 싫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오이가 달렸다고 좋아하고, 토마토가 익었다고 기뻐했다.

감자같이 많이 심은 작물을 캘 때는 다 같이 돕기도 했다.

그렇지만 작고 아담한 자기만의 밭이 생긴다는 것은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나보다.

아이들은 서로 제 밭이 더 이쁘다고, 더 멋지다고 자랑하며 시키지도 않았는데

흙 사이의 돌을 골라내고 이따금 나오는 쓰레기 조각들도 주워 냈다.

'내 밭'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밭이라는 생각이 이제껏 무심하게 보던 땅을 새롭게 한다.

그만큼 특별한 애착과 애정이 기울여지는 것이다.

 

제일 첫 번째 밭은 필규것, 두번째 밭은 윤정이, 그리고 이룸이는 제일 넓은

밭을 엄마와 함께 짓기로 했다.

밭을 다 일군 다음에는 저마다 자기 밭의 이름을 지었다.

남편은 나무를 잘라 멋진 팻말 세 개를 만들어 주었고, 아이들과 집 주변의

작은 나뭇가지들을 주워다가 아이들이 지은 이름을 이쁘게 붙여 주었다.

 

윤정이 밭.jpg

 

윤정이 밭 이름은 '하늘'이다. 하늘처럼 마음이 넓은 윤정이 답게 제게 어울리는

멋진 이름을 지어 주었다.

밭에 제일 많이 들락거리며 벌써부터 제일 많은 애정을 쏟고 있다.

 

필규 밭.jpg

 

필규 밭은 '초록'이다.

초록으로 무성한 밭을 일굴 모양이다.

학교에서도 텃밭 교육이 있는데 어딜가나 농삿일이라고 툴툴대지만 제것에

대한 애착이 큰 아이인만큼 믿고 있다.

 

이룸이 밭.jpg

 

이룸이는  제 밭에 '바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다처럼 넓고 큰 밭을 만들겠단다.

수박도 심고, 참외도 심고, 토마토도 심고, 옥수수도 심겠단다.

풀이 나기 시작하면 일이 넘칠텐데 어린 이룸이는 그저 제 밭이 제일 넓은게

좋아서 싱글벙글이다.

심기만 하면 다 잘 자랄 줄 안다. 심지어는 귤도 심겠단다.

이룸이랑 같이 짓는 밭 농사는 땀 깨나 흘리겠다.

 

우리들의 밭.jpg

 

새로 만든 아이들의 밭은 아이들이 늘 노는 마당의 나무집에서도 금방 내려다 보인다.

학교에 오고 갈 때마다 들여다 볼 수 도 있다.

아이들은 제 밭에서 자란 푸성귀들을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다.

아이들의 맑은 눈에는 벌써부터 이 밭에 풍성한 푸른것들이 보이는 모양이다.

 

'초록, 하늘, 바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들의 밭이 올 한해 기쁜 땀과 정성으로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모두 열심히 돌볼 생각이다.

 

새힘이 불끈 솟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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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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