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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방송에서 '스마트폰 중독'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밤 늦게 하는 이 프로그램을 열여섯살 아들과 같이 봤다.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너무 어린 아이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7개월 된 여자 아이는 스마트폰만 조른다. 다른 장난감엔 아무 흥미가 없다. 스마트폰 만큼
재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엄마는 아이가 조르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솔직히 스마트폰을 틀어주면 엄마에게 매달리지 않아 집안일 하는 것도 여유롭고 힘들때
쉴 수 도 있다고 말한다.
다섯살 사내아이는 유치원에 안 가고 집에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고 싶다고 떼쓴다. 떼가 심해져서
며칠씩 등원을 못 하기도 한단다. 집을 나서서 유치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까지 아이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이 아빠는 도저히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초등 저학년 남자 아이는 스마트폰 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밤을 새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엄마는 이미 아이에 대한 통제를 잃었다. 그녀가 아이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게 하는 방법은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늘려주는 것이다.
쌍둥이 아들을 낳고 육아가 너무 힘들때 스마트폰을 쥐어 주는 것으로 수월하게 넘겼던 엄마는
이제 초등학생이 된 두 아들이 스마트폰만 하려고 해서 매일이 전쟁이다. 못하게 하면 대들고
불같은 분노를 뿜어대며 점점 무례해지고 거칠어지는 두 아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물론 이런 풍경이 새삼스러울리 없다.
전철안에서 마트에서 도서관에서 거리에서 식당에서 어디서나 너무나 흔하게 보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도서관에서 권장도서 목록을 들고 책을 찾고 있는 동안 정작 그 책을 읽어야 하는 아이는

통로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 풍경, 자주 본다.

식당에 가면 영아들도 전용탭으로 뽀로로를 보느라 보채지도 않고 한참씩 조용하게 앉아 있는 모습

정말 흔하다. 부모 품에 안겨 있는 어린 아이들 손에도 스마트폰 하나씩 들려있다.

그 상태로 다니면 어디를 다니든 보채고 떼쓰는 아이들 때문에 민페를 끼치지 않으니 정말 좋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어린 아이들이 떼도 쓰지 않고, 보채지도 않고, 엄마나 아빠를 찾지도 않고, 말없이 디지털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모두에게 다 좋은 일일까.

스마트폰이 보편화 되었을때 많은 부모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보채고 떼쓰고 말 안듣고 말썽부리던 아이들이 스마트폰만 쥐어주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쇼핑을 다니고, 까페에서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한 번 시작한 집안일을 도중에 멈추지 않고 끝마칠 수 있고 잠시 달게 낮잠을 잘 수도 있게 되었다. 과히 육아의 신세계가 펼쳐 졌다고 좋아했다.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던 그 신세계는 이제 암울한 그림자를 우리에게 드리우고 있다.
육아를 스마트폰에 의지했던 양에 비례해서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의 힘겨움은 커지고 있다.
아이를 이해하고, 적절하게 통제하고, 소통하는 일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의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마딱드린 현실의 일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 일부분만으로도
현실은 충분히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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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살 큰딸과 아홉살 막내는 스마트폰이 없다.
물론 간절하게 원한다. 그러나 오빠가 열 여섯에 가졌으므로 적어도 열다섯 까지는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열두살 딸은 일주일에 두 시간 검퓨터 게임 및 유트브 시청이 가능하고, 웹툰 보는 시간은 20분이다.
아홉 살 막내는 일주일에 한 시간, 컴퓨터 게임만 가능하고 유트브는 볼 수 없다. 웹툰을 따로
보는 시간도 없다. 언니 볼 때 끼워주면 가끔 얻어 보기는 한다. 이 모든 것은 거실에서 부모가 보는
곳에서 해야 한다. 컴퓨터가 필요한 숙제는 엄마 책상에서 엄마 노트북으로 해야 한다.

부모의 스마트폰은 허락을 받아야 쓸 수 있다.

자기 방으로 디지털 기기를 가지고 들어가 작업하는 것은 안된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열 여섯 아들은 평일에는 불가능하고 집에 오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컴퓨터 게임 세시간, 스마트폰은 자정까지만 쓸 수 있다. 밤 열두시가 되면 거실에 있는 충전기에
꽂아두어야 한다. 가족끼리 여행을 하는 차 안에서, 혹은 외식을 할 때 스마트폰을 꺼낼 수 없다.
아이들과 같이 있을때 어른인 나도 되도록 스마트폰을 열지 않는다. 내가 빠져 있으면서 아이들만
하지 말라고 할 수 는 없다. 같이 지키고, 같이 자제한다.

이 정도의 규칙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규칙을 정하기까지 수많은 대화와 시행착오가 있었다. 아이들은 납득이 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모가 억지로 강제하면 효과가 없고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아이들과 외출을 할때마다 세상에서 마주하는 스마트폰 쓰는 모습에 대해서 늘 예민하게 관찰하고
얘기해 왔다. 식당에 갔을때 4인 가족이 들어와 각자의 스마트폰을 꺼내 보다가 말없이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동안 거의 대화가 없는 모습을 아이들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모두가 저런 모습은 정말 안 좋다고 입을 모았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통로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아이들 생각을 물으면 저것은 옳지 않다고 얘기한다.
전철을 타면, 스마트폰을 보느라 자기 앞에 임산부나 노인이 서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보지 않았다면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더 가질 수 있을거라는 것을 이해한다. 단골 분식집에 갔을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어린 아이가 징징대고 말썽을 부리는 것도 말리지 않는 젊은 엄마를 보았다. 그런 풍경을 볼 때마다 우리끼리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가족끼리 시간을 함께 보낼때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기, 전철을 탈땐 읽을 책이나 메모장을 챙겨가기,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를 같이 보는 일 등을 지켜왔다.

이 모든 과정이 한 번에 쉽게 되었을 리 없다. 그러나 중요한 일은 그만큼의 과정과 시간을 들여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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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주중에 못한 게임을 하느라 컴퓨터를 쓰고 있는 일요일 한 낮, 두 딸들이 거실에서 깔깔거리길래 나와봤더니 바닥에 세워둔 매직을 손 안 쓰고 넘어뜨리기 게임을 하고 있다.
이룸이가 콧감과 입김, 해드뱅잉으로 넘어뜨리기를 시도하다가 실패하자 윤정이의 웃음보가 터졌다.
윤정이는 장풍으로 넘어뜨리겠다고 손을 모아 바람을 일으키고 이젠 그 모습이 우스워 이룸이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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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넘어뜨리기가 싫증나자 이번엔 볼링을 하자며 분리수거 통을 뒤져 플라스틱 병들을 찾아왔다.
물을 조금씩 담아 뚜껑을 꼭 닫고 세운 뒤에 축구공을 굴려 넘어뜨린다.
스트라이크, 스페어 처리 어쩌고 하는 요란한 함성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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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볼링 놀이를 한 다음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바비인형 놀이에 빠졌다.
이것도 시들해지면 마당에 나가 이런 저런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 아빠도 돕고, 강아지랑 놀기도 하다가 다시 들어와 만화책을 넘긴다. 오빠가 밀린 게임을 다 하고 자리를 비키면 고대하던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볼 것이다.

열 두살에게도 놀이는 중요하다. 꼭 필요하다.
궁리를 하고, 방법을 찾고, 애도 써 가며 몸과 마음을 모두 동원하는 놀이를 할 때 학교생활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리고, 자주 티격태격 하는 동생과의 관계도 부드러워지고 한창 예민해지는
사춘기의 마음도 조금 느긋해진다.
심심함이 쌓이고, 그 심심함을 해결할 재미를 찾아내고, 그 재미를 더 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는
모든 것이 아이들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 이런 세상은 할 수 있는 한 오래 누리는 것이 좋다.

선진국일수록 아이들의 디지털 기기 이용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프랑스같은 나라는 만 15세까지 스마트폰을 주지 말라고 권하고 있다. 대만에선 영유아에게 스마트폰을 주면 부모가 처벌을 받는다. 실리콘벨리의 부모들은 초등시절까지는 디지철 기기를 
철저하게 통제하라고 얘기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뇌와 사회성이 발달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친구를 사귀는 일에 스마트폰은 큰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는 어떤가.
세게 최고의 아이티 강국이라는 자부심으로 어디서나 와이파이가 터지는 디지털 선신국이라고 자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타인과의 관계맺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부모와 갈등이 더욱더 심각해지며 수많은 디지털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우리 아이들의 암울한 현실이 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짜피 그런 시대인데 별수있냐고 미리 체념하지도 말자. 어릴수록 아이들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는 회복력이 있다.
지금 내 아이는 디지털 기기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아이들의 부모인 우리 자신부터
스마트폰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보다. 우리가 하면서 아이들만 금지시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무엇보다 사소하더라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데 명확한 기준과 규칙을 정하되 아이들과 충분한 얘기를 나눈 후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찾아야 한다.

그날 같이 다큐멘터리를 본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초등시절까지는 스마트폰은 절대로 안되는게 맞는 것 같애요"
"맞아. 가족끼리 같이 여행을 할 때나 외식을 할때, 시간을 같이 보낼때도 안 하는게 맞고.."
"그래서 저도 그런 때는 안 꺼내잖아요"
"그건 정말 고맙게 생각해. 밤 열두시에 스마트폰을 맡기는 것도 그렇고...
성인이 되면 그때 네 맘대로 해. 그때까지는 부모와 같이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지키는것이
맞는 것 같애"
다큐멘터리가 끝난 후 다른 체널에서 하는 라이브 에이드 실황 공연을 같이 보며 퀸의 노래에
흠뻑 빠졌다. 열 여섯 아들과 마흔 아홉의 엄마는 적어도 '퀸'에게 함께 열광하는 사이다.

잊지말자.
육아의 아날로그 시간을 오래 지낼수록 디지털 세상을 더 슬기롭게 항해할 수 있는 관계와 힘이
생긴다. 힘들고 쉽지 않지만 그만큼의 열매는 분명하다. 아이들은 우리와 더 깊게 더 오래
연결될 것이다. 부모로서 얻고 싶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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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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