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 <미디어오늘>에 날 일이야."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 몇몇은 입을 샐쭉이며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그 즈음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꺼번에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며 분석적인 자세를 보인 이도 있었다.  어떤 이는 "여기자들이 회사에 불만을 품고 테러를 일으킨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어렵게 임신 사실을 부서에 알렸을 때 한 선배가 놀라며 이렇게 되물었다. "너도?" 알고보니 이미 타 부서에서 3명의 여기자가 임신을 ‘보고’했다고 한다. 여기자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취재기자 4명이 거의 동시에 임신을 한 것은 <한겨레> 창간 이래 처음이라나.


재빠르게 서로를 수소문해 4명 임신부 여기자들이 모처에서 회동했다. 모여보니 기가 막혔다. 30대 초반~후반의 여기자 4명의 출산 예정일은 2월6일~3월1일 한달 사이에 오글오글 모여있었다. 급기야 나와 6월에 만나 폭탄주를 엄청 마셨던 선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 때, 둘다 임신 상태였던 것이다! 어쩐지 둘다 너무 취하더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며, 그래도 이런저런 회사 쪽의 반응에 주늑 들지 말자며, 키위 주스로 건배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곤란이 278.JPG » 산전후 휴가에 돌입하기 전, 임신부 F4 모임의 마지막 회동 기념 촬영. 다들 배는 부를대로 부르고 옷은 후줄근하고 화장도 못한 초췌한 모습이지만 표정만은 누구보다 밝다.이후 이 ‘임신부 모임’은 입덧이 심했던 임신 초반기를 지나 배가 나오기 시작한 임신 중반기, 몸이 무거워져 황제펭귄처럼 걷게된 임신 후반기까지 나에게 너무도 큰 힘이 되어주었다. 임신 전에는 서로 일이 바빠 별로 마주치지도 못했던 선후배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몸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얼마나 간식이 땡기는지, 치골통으로 잠들기가 얼마나 괴로운지 우리는 서로 눈빛만 보면 알 수 있었다. 유모차 뭘 살거니, 산후조리는 어쩔거니, 고민도 똑같았다.


임신부 모임에는 이미 아이를 낳은 ’출산 선배’들이 참여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출산을 한 지 2년이 지났든, 20년이 지났든 ‘출산 선배’들은 열과 성을 다해 우리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주려고 노력했고 임신부 4명은 눈을 빛내며 강의를 흡수했다. 똑부러지게 일 잘하기로 유명한 선배와 ‘모유 수유시 젖꼭지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눴던 순간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기수가 높은 한 선배는 자기 때는 출산휴가를 2~3개월밖에 쓸 수 없어서 젖이 흐르는 유방을 부여잡고 일했었다고 회고했다. 너무 힘들었다고, 그러니 너희들은 1년의 육아휴직을 모두 잘 사용하라고 힘을 주었다. 맛있는 밥을 사주는 이들도 여럿이었다.


신기하게도 친정과 시댁 양가에서마저 임신이 속출해 여성 연대는 더욱 확대됐다. 시댁의 시누이가 나와 이틀 차이로 임신을 했고 동서도 둘째를 가졌다. 친정 여동생은 나보다 두 달 늦게 아이를 가졌다. 이거, 한국의 저출산은 이제 끝났나봐 하며 때로는 얼굴을 보고, 때로는 전화를 걸어 속시원하게 ‘임신 수다’를 떨었다. 


임신과 출산은 분명 남녀 공동의 일이지만 임신을 하는 순간 나는 여성들에게 진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임신 전 "아기를 왜 안낳느냐"고 묻는 쪽은 남성들이 훨씬 많았지만 막상 아기를 갖고보니 도움을 주는 쪽은 대부분 여성들이였다. 자신들이 몸으로 겪어봐서 그것이 얼마나 고생스럽고 불안하고 힘든 일인지. 동시에 하루하루 얼마나 경이롭고 뿌듯한 일인지 알아서일까. 전혀 친하지 않던 선후배들과도 임신과 출산이라는 주제로 속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여성 연대 덕분에 불안하게만 보였던 앞날이 조금씩 밝아졌다. 아이 배냇저고리부터 임부용 속옷에 이르기까지 선배들이 집에서 정성껏 챙겨다 준 물품들은 세상 어떤 선물보다 값졌다. 자신의 아이가 사용하던 물건, 자기가 임신 중에 긴요하게 사용했던 물건을 싸다 주는 정성 덕분에 나는 임신 기간을 누구보다 소박하게, 누구보다 풍요롭게 보낼 수 있었다.


임신부 4명이 낳을 용띠 아이들은 앞으로도 같은 나이로 커나갈 것이다.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는 여정에 여성 연대가 있어 든든하다. 임신으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이들이여, 주변의 누구라도 좋으니 여성 연대를 맺으시길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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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기자
<한겨레21> 기획편집팀, 사회팀, <한겨레> 사회부 24시팀을 거쳐 현재 오피니언넷부에서 일하고 있다. “결혼 생각 없다”더니 한 눈에 반한 남자와 폭풍열애 5개월만에 결혼. 온갖 닭살 행각으로 “우리사랑 변치않아” 자랑하더니만 신혼여행부터 극렬 부부싸움 돌입. 남다른 철학이라도 있는양 “우리부부는 아이 없이 살 것”이라더니 결혼 5년만에 덜컥 임신. 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이메일 :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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