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 인디애나에는 미국 전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규모가 큰, 유명한 농장이 하나 있습니다. 5년 전, 임신해서 아이를 품고 있던 때, 단체 견학 광고가 붙은 것을 보고 남편과 함께 다녀왔는데요. 무척 불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곳은 농장이 아니라, ‘폐쇄형 사육시설’(Concentrated Animal Feeding Operation)이었기 때문이죠. 목초지가 넓게 펼쳐진 진짜 농장을 기대하고 간 곳이었지만 정작 우리를 반긴 것은 뜻밖에도 깔끔하고 번쩍거리는 기계들이 가득 들어찬 공장, 그리고 젖소와 돼지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감옥이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마주친 장면은 젖소가 새끼를 낳는 장면이었습니다. 통유리 너머, 눈부시도록 밝은 여러 개의 형광등 아래에는 출산 과정을 겪고 있는 젖소 두 마리가 엉덩이를 바깥으로 드러낸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그 엉덩이 뒤에는, 마치 쇼를 보듯 둘러 앉은 인간 수십 명의 눈길과 카메라 플래쉬 세례가 있었죠. 그 시끄럽고 왁자한 곳에서, 젖소는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 순간, 인간 여성이 병원에서 출산할 때 빛나는 형광등 아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리를 벌려 출산하는 장면이 겹쳐 떠올라 눈을 질끈 감아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젖소가 새끼를 낳는 순간, 박수를 치며 환호했지만 저희 부부는 한마디 신음만을 내뱉은 채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그곳엔 생명 탄생의 경이로운 순간도, 감동도 없었어요. 인간을 먹이기 위해 착취 당하는 것도 모자라 출산의 순간마저도 인간을 위한 눈요깃거리로 빼앗겨 버린 그들의 삶 앞에서 인간인 우리는 한없이 죄스러웠습니다.   

 

얼른 그곳을 빠져나와 축사 관광용 버스에 탔는데요. 버스는 기대하던 목초지가 아니라 드라이 반(dry barn)’이라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드라이 반은 임신 중인 젖소들만을 모아 놓은 곳이에요. 수백마리에 달하는 임신 중인 젖소들이 자기 몸 하나 겨우 구겨 넣을 수 있는 공간에 갇혀 있었습니다. 버스 안 녹음 테잎에서는 계속해서 설명이 흘러나왔죠. “젖소는 임신 기간 9개월 중 마지막 2개월간은 젖을 짜지 않고 쉰다고요. 한 몸 겨우 들어가는 철창에 갇힌 젖소들이, 그것도 임신을 한 몸으로, 정말 수가 있을까요? 나중에 들은 얘기에 따르면, 젖소는 9개월의 임신 기간이 끝나고 나면 3,4개월 후 다시 임신을 시켜야한답니다. 젖소의 우유 생산량이 출산 후 1개월 간 최대치에 달했다가 점차 줄어들기 때문이라더군요. 그러니까 젖소는, 순전히 인간이 먹을 우유를 생산해내기 위해 평생 임신-출산-우유생산을 반복하는 존재인 거죠. 완전히 처음 듣는 얘기는 결코 아니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그렇게 살고 있는 소들을 보는 건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나중에 출산을 하고 아이 젖을 먹이기 위해 유축을 하던 때, 주변인들도, 저 자신도 내가 사람인지 젖소인지 모르겠다며 농담을 하곤 했지만, 농담을 하면서도 그 때 그 농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본 가장 끔찍했던 곳이 바로 우유짜는 곳이었거든요.




fair-oaks-farms.jpg
(This photo of Fair Oaks Farms is courtesy of TripAdvisor)


위 사진에 보이는 시설은 한번에 72마리의 젖소를 놓고 원형으로 돌려가며 소독-젖 짜기-소독의 순서를 거칠 수 있게 만든 장치예요. 이제 막 출산한 젖소들은 바로 이 곳에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우유를 짜내고 있었습니다. 소의 양쪽 귀에는 평균 우유 생산량이 적혀 있고, 각 젖소가 들어가 있는 칸 아래에 설치된 유축 기계에는 빨간 글씨로 방금 얼만큼의 우유를 짜냈는지가 뜹니다. 방문객들은 이 시설물의 위에서 통유리를 통해 이 광경을 지켜보게 되어 있지요. 그 곳에 서니 마치 우리가 원형감옥을 지키는 간수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 곳에 서서 수백마리의 젖소들이 '젖 짜임 당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무서울 지경이었는데, 시설 관리자는 대단하지 않냐는 투로 이 희대의 시설물을 설명하는 데 여념이 없었죠. 그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 머리 위에 검은 웃음을 띤 또 다른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앉아 있을 것만 같은 환각에 빠졌습니다.

 

도린 크로닌(Doreen Cronin)의 귀여운 그림책 <탁탁 톡톡 음매, 젖소가 편지를 쓴대요>(Click, Clack, Moo Cows That Type)를 읽으며 그 농장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혀 이 책을 읽어주던 날, 자꾸 책 읽기를 멈추고 다른 이야기가 하고 싶어지는 걸 참느라 혼이 났지요. 젖소들이 사는 축사 안에서 밤새도록 타자 치는 소리가 나서 가 보니 젖소들이 모여 농장주에게 항의 편지를 쓰고 있었대요. “축사가 너무 추워서 살 수가 없으니 전기 담요를 달라,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더 이상 우유를 제공하지 않겠다!” 면서요. 물론 농장 주인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요. 그랬더니 이 젖소들이 진짜로 파업을 하고 맙니다. 같이 살던 닭들도 합세해서, 전기 담요를 주지 않으면 우유도 계란도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하지요. 이 농장은, 그리고 소와 닭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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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읽으며, 이곳 농장, 아니 공장에 갇힌 젖소들이 한꺼번에 파업을 선언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파업만으론 충분하지 않겠죠. 언제나 그렇듯, 어떤 조건을 내걸고 협상하게 되어 있는 상황에선 근본적인 해결이란게 가능하지 않으니까요. 그곳에 갇힌 수백마리의 소들이 그 잔혹한 시설에서 해방되는 것, 그게 가능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다른 존재를, 다른 생명을 이렇게까지 혹사시켜야 하는 걸까요? 내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기 위해 젖소들에게 임신과 출산, 유축을 강요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칠 때마다, 그리고 우리 식구 배불리 먹이기 위해 남의 뼈를 오랜 시간 공들여 고아 삶고, ‘남의 살을 굽고 찔 때마다, 이 끔찍한 살육을 멈추지 못하는 나의 관성에 화가 나고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크면서 우유 소비량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지만, 그리고 원래 고기를 그리 즐겨 먹진 않지만, 마트마다 빽빽하게 들어찬 우유와 고기를 볼 때마다 죄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그 우유에, 그 고기에 손을 대고 마는 이 죄를, 어떻게 용서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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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alyson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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