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노동’은, 신문배달이었다. 고 3 수험생 시절, 밤잠이 많아 늦게까지
공부를 하거나 밤샘 공부를 할 수 없었던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곤 했다. 수능을 마친 직후, 새벽 4시에 일어나던 버릇이 아직 몸에 남아 있던
때. 그 시간에 무얼 할까 생각하다 신문배달을 해보기로 했다.
초겨울의 깜깜한 골목길을, 신문 60부를 실은 ‘구르마’를 끌고 나는 걸었다. 오토바이를 탈 수 없는 내게 많은 일을 맡길 수 없었던 보급소장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아파트가 늘어서 있는 단지 몇 개를 도는 일을 내주었다. 얼마
되지 않는 분량이었지만 동트기 전에 배달을 마치려면 아파트 계단을 뛰어 올랐다 내려와야 했다. 빈
구르마를 끌고 밝아오는 아침을 맞으며 터덜터덜 보급소에 가면, 그 사이에 어느 집에선가 ‘신문이 오지 않았다’는 신고가 접수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보급소장은 나를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워 다시 그 집에 가서 신문을 주고, 사과를 하게 했다. 나는 분명히 쪽지를 손에 쥐고 동/호수 확인해가며 배달을
했는데, 그런 항변은 하려야 할 수 없었다. 그저
내 탓이려니 하면서도 자존심 상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나의 첫 ‘노동’은, 두 달도 채 못되어 끝났다.
곧 대학생이 되었지만, 그건 곧 ‘알바’인생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운
좋게 받게 된 장학금이 아니었으면 대학에 못 올 형편이었으면서 계속 ‘용돈’을 받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구한 첫 자리는 학교 앞 빵집. 오후 네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앉을 곳도 앉을 틈도 없이
일했다.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은 시급 2300원. 그나마도 한 달씩 근무 개월 수가 늘어나야 한 달에 100원씩이
올라 2700원까지 받을 수 있는, 구차하기 짝이
없는 돈이었다.
‘빵집 알바생’이 해야 하는 일의 목록은 끝도 없었다. 매장 청소, 출입문과 유리창 닦기, 구워진 빵 내오기, 떨어진 빵의 냉동 생지 꺼내오기, 케이크 포장하기, 케이크 진열장 채우기, 데워 내 주길 원하는 손님을 위해 전자레인지에 빵 돌리기, 바게뜨
빵 썰기, 생크림 케이크 위에 올라갈 과일 장식 얹기, 손님
응대하기, 샌드위치에 들어갈 계란 부치기, 빵에
들어간 재료 설명하기, 어떤 이유에선지 반품하려는 손님과 어떻게든 반품을 받지 않으려는 점주
사이에서 진땀 빼기 등등.. 정말이지 쉴새 없이 닥치는대로 일해야 했다. 그렇게 일해서 남는 건 시급 2300원, 유통기한 지난 케이크 한 조각, 그리고 가끔 바게뜨
빵을 썰다 칼에 베여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손가락. 그 뿐이었다. 대학 4년, 대학원 2년의 과정을 마칠 때까지, 나는 빵집, 공부방 한 군데, 학원 두 군데, 과외 대여섯 곳, 회사 임시직 연구원, 고시원 총무 일을 번갈아 하며 푼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네 식구 사는 지하방의 월세를 보태고, 밀린 공과금을 내고, 유학 준비에 들어가는, 턱없이 비싼 시험 비용을
댔다. 그 정도의 노동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노동’마저도 양극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무리 일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과 끝없는 노동, 차별의
굴레 속에 갇힌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비정규’ ‘임시’ ‘알바’ 딱지를 달고 이 동네 저
동네 전전하던 나 역시 그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를 읽으며, 여러 번 책을 놓아야 했다. 그가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은 삼십 년, 이십년 전의
일이고, 이 책이 나온 것은 십년 전인데,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의 현장엔 책 속에 묘사된 일들이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갑갑해져 책을 더 읽을 수가 없었다. 삼십 년 세월 동안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노동 환경은 그리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바로 얼마 전, 여성
마트 노동자가 일터에서 쓰러진 후 응급처치를 받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순식간에 ‘희망퇴직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야 했던
노동자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청년 노동자 한 사람이 마트 무빙워크 수리작업을 하다 숨졌다. 누군가는 핸드폰을 만들다 실명을 하고, 3교대에 ‘태움’을 당하는 간호사들이 유산을 하고, 누군가는 병에 걸린다. 위험하고 고된 작업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최저임금이 올라도 그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사람도 많다. 어떤 사람들은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로
여기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위’에는, 노동자를 자기가 부리는 하수인쯤으로 여기고 ‘종업원’이라
칭하는 ‘고위경영진’이 있다. 하루 종일
서서 계산하고, 청소하고, 배달하고, 무언가를 만들고, 옮기고, 그 많은 일들을 ‘사람’이 하는데도, 어떤 이들은 손 하나 까딱 않고 다른 이의 노동에 기대어 풍족함을 누리고, 노동하는 이들은 자신의 노동이 자기 삶에 ‘월급’ 외에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루 하루 일할 뿐이다. 평생을 수저 찍어내는 기계 앞에서 기름밥, 도금밥
먹는 내 아버지와, 십여 년 식당 일을 거쳐 이제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돌보는 내 어머니의
노동이 우리 사는 세상에서 얼마나 하찮게 여겨지는지도, 충분히 알고 있다.
이런 노동의 조건을 만들어 온 것은 우리가 아니지만, 우리가
이 조건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몇 년 전 원자로 취수구 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은 잠수사, 그리고 용광로에 떨어져 목숨을 잃은 청년의 이야기를 내 눈과 귀로
똑똑히 보고 들었으면서도, 나는 하루에 몇 시간씩 노트북을 켜놓고 자판을 두드리며 ‘값싼’ 전기를 쓰고, 물건의 값을 꼼꼼히 따져가며 물건을 산다. 유해
수습마저 할 수 없었던 그 잔인한 사고 후에도 잠시 잠깐 눈물 짓거나 죄스러워할 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잊고 금새 더 많은 풍족함을 누리고 사는 게 사실이다. 서비스 노동 구매비용이
한국보다 높은 미국에 살면서 ‘내 돈’ 아끼려고
서비스 구매 자체를 포기한 경험도 많고, 구매 비용에 비해 떨어지는 ‘서비스의 질’을 비판한 경험도 많다. 그 사이사이
느껴지는 불편함과 부당함을 가끔은 소리내어 이야기해보지만, 그 때뿐이다. 많은 경우 그런 이야기는 내가 얼마나 ‘양심 있고
생각 있는’ 사람인지 드러내려는 몸부림일 뿐. 결국에는 ‘우리처럼 없이 사는 사람이 그런 것 다 따져 가며 살기엔 세상이 너무 이미 이렇게 되어버렸다’며 합리화하고
만다.
요즘 아이는 종종, 엄마 아빠
흉내를 내느라 가방 한 가득 짐을 싸서는 ‘일하러 가야 한다’며 안방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이 아이에게 ‘일’이란, 손바닥만한 전자사전을 켜 놓고 엄마 아빠가 노트북으로 글 쓰는 흉내를 내는 걸 말한다. 아이의 천진스러운 놀이를 보며 깔깔 웃지만, 그 ‘일’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언제쯤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게 될까 생각하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우리 집 수도가 고장 났을 때 신발을 신은 채 성큼성큼 들어와 뚝딱 고쳐주는 기사 아저씨, 하루 종일 너와 네 친구들을 돌보는 어린이집 선생님, 그리고
어린이집에 오가는 길에 보이는, 꽁꽁 언 땅을 깨트려가며 도로 공사를 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노동이 있어 우리의 하루가 이렇게 평탄하게 굴러가고 있는 거라고 아이에게 말해주어야 하는데. 네가 가지고 노는 모든 장난감에 찍힌 ‘메이드 인 차이나’ 라는 그 짧은 문구 속에도 노동, 노동의 가치, 이윤 때문에 이리 저리 옮겨다니는 공장, 그곳에서 하찮은 대접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어야 하는데. 정작 나조차도 그 사실을 잊기 일쑤다.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니 누군가 ‘일하고 싶다’고, ‘인간답게 일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칠 때 그 목소리를 듣고 함께 외쳐야 한다고 말해주어야 하는데. 정작 나조차도 ‘듣기’만 할 뿐 ‘함께’ 외치지는 않는다.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김진숙이 써 내려간 이 세 문장을 읽고, 부끄러워 다시 책을 내려놓았다. 나를 보고, 나를 따라 배우는 아이를 두었으니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서,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등에 소금꽃나무 한 그루 피워본 일 없이, 신문 배달과 빵집과 학원 일을 해보았다는 얘기로 노동을 ‘추억’삼아 이야기하는 나의 염치없음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그렇게 책장을 덮고 보니, 어느새 5월이다.
5월 1일은 메이데이, 노동절. 노동하는 모든 이에게 하루 쉼을 선사하지도 않는 우리의 세계에서, ‘근로자의 날’은 누구를 위한 날일까. ‘종업원’이 한 일은 자신이 알지 못한다던 이에게 집행유예 선고를 내린 사법부에선, 이 날을 무슨 날로 이해하고 있을까. 따뜻한 봄날 소금꽃나무 몇 그루씩 등에 지고 일하고 있을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봄’은 언제 올까.
읽은책: 김진숙, <소금꽃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