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328c2f47341f40df84734aa1ea57f1.천하의 역마살였던 내가 이렇게 진득하니 2년 씩이나 집에 눌러 앉아있을 누가 알았을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다 놀라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신기하고 대견하다. 처음 생각은 달랐다. 육아휴직 1년이 끝나는 날을 D-day로 정하고 한 달 전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3.2.1. 제로를 외침과 동시에 용수철처럼 바깥으로 튀어나가려고 했다. 한창 일이 재미있어질 때 경력이 단절된 것에 아쉬운 마음도 있었고, 늘 바닥이 보이는 가정 경제에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육아휴직이 끝났는데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가고 싶었는데, 발이 아니 가슴이 원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이가 그렇게 좋아라 물고 있는 젖꼭지를 내 손으로 빼고 싶지 않았다.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뿐! 자연히 덜 찾고, 안 찾게 되는 날까지 조금 더 기다려주고 싶었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내가 이렇게 모성애 강하고, 인내심 있고, 이타적인 인간인 줄이야......^^ 그래서 사직서를 던졌다. 사직서에는  UN이 권장하는 ‘적어도 2년,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서’ 라고 썼다. 그리고 사직의 변에 충실하게 두 돌 넘어서까지 양껏 모유수유를 했다.



두 돌하고도 몇 달이 넘어가자 아이가 자연스럽게 젖을 찾지 않았고, 절묘한 타이밍에 잡오퍼가 왔다. 그런데 아직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이 느려 의사 표현도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가슴은 아니고, 이번엔 뭐지?’  이번엔 아래쪽 사정이었다. 데드라인에 쫓기고, 야근이 많은 일이다보니 간단한 시뮬레이션만 해도 애간장이 녹고 똥줄이 타들어갔다. 일은 언제 끝날 지 모르겠고, 애는 데리러 가야하고… 으아아… 끔찍하다. 공식 브리핑은 ‘창자와 똥줄, 아래쪽 사정으로 보류!’  덕분에 아래쪽 사정만큼은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



e144d4a48481595844624d478ed829ab.글쎄 모르겠다. 사회에 복귀하는 날이 언제가 될런지… 그럴 마음은 없지만, 어쩌면 영영 평생직장, 그리고 추가 생산(!)을 선택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성애가 엄청나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다. 육아에 대한 엄청난 철학을 가지고, 부지런을 떨고 열성적인 것도 아니다. 그냥 애를 내버려두는 태평농법을 구사한다.  그러면서 답답하다 투덜대고, 하루 종일 애랑 옥신각신해도 그냥 엄마가 되었을 때, 엄마 노릇에 충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원래 내가 살아온 방식이 그랬다. 특별한 미래 설계, 거창한 비전 같은 거 없이 지극히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 거 같다. 그러다 보니 왔다갔다 일관성도 없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개념이 없는 것처럼 보여 부모님을 비롯,주위의 걱정을 사곤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먼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현재의 행복에 감사하며 사는 너무나 근시안적인 삶이 그게 최선이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지 기약은 없다. 아이와 내가 준비되었을 때, 그때까지 무기한이다. 물론 불쑥불쑥 일하고 싶은 마음, 아니, 그냥 아이를 떠나 나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아직은 엄마 노릇이 마음에 든다. 내 친구 하나가 오해하는 것처럼 경제적으로 아쉬운 게 없어서 그러는 것도 절대 아니다. 돈은 궁하지만, 그냥 적게 쓰는 쪽을 택하면 그럭저럭 살만 했다. 능력이 특출나서, 아님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경력이 단절되고, 시대에 뒤쳐지고, 그나마 인정받던 능력도 퇴화될까봐 걱정된다.  그리고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는 사회에서 나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두렵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려고 한다. 미리 생각해봤자 골치만 아프다.



c95abd0971c285210180c0a784b7a76f.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욕심만 많아진다. 육아와 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일을 선택하면 아이가 희생되고, 아이를 선택하면 내가 희생되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은 피하고 싶다.  육아와 일,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돈도 잘 벌고 아이도 잘 키우는 슈퍼우먼인가 알파맘인가가 되겠다는 말이 아니다. 아이와 가까운 곳이면 좋겠고,  아이와 관련된 일이면 좋겠고, 평소 신념과 삶의 방식과 부대끼지 않는 일이면  좋겠다. 삶과 육아가 모두 아슬아슬한 밥벌이 말고, 적게 벌더라도, 다소 손발이 고달프더라도 오장육부와 머리와 가슴이 편안한 일이면 좋겠다 ! 너무 욕심이 많은 건가? 현실감이 없는 건가? 어쨌든 느즈막히 예고도 없이 우리에게 온 요 쬐끄만한 놈이 엄마한테는 평생 숙제가 될지 모르는 어려운 숙제를 내놓고, 저는 천진난만하다.  아가야...엄마는 가끔 니 팔자가 젤로 부럽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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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이메일 : tomato_@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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