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각 0시7분. 나는 지금 이불빨래를 하고 있다. 정확히 얘기하면 세탁기가 이불빨래를 다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녀석이 낮잠을 자다가 ‘실례’를 한 그것이다. 이불빨래가 끝나면 침대시트를 따로 집어넣어서 다시 돌려야 한다. 빨래를 다 널고 자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나의 아들 성윤과 나의 아내는 이미 잠들었다. 녀석은 감기에 옴팡 걸려 오늘 하루 어린이집을 쉬었다. 연구 마감일을 앞두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작업을 해야 했던 아내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몸살이 심하다.
어제 새벽에 녀석은 불덩이 같았다. 잠결에 작렬하는 녀석의 발길질이 무서워 항상 녀석과 등지고 자는 나는 그 뜨거운 체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아이를 몸에 품었던 모성애는 역시 다르다. 아내는 제 컨디션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녀석의 심각한 상황을 먼저 알아차렸고, 나는 주섬주섬 정신을 차렸다. 해열제를 먹이고 찬 수건으로 녀석의 몸을 식혔다. 새벽녘에 다시 잠든 녀석의 체온은 거짓말처럼 정상온도를 되찾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전에 출근을 하지 못한 아내와 교대로 반차를 고민하고 있는 사이, 어머니가 당도하셨다. 모든 게 다행이다.
아이가 아프고 아내가 아프지만 해가 져서도 나는 집에 달려가지 못했다. 오늘은 야근 당번 날. 12월1일 종편이 출범하고 난 뒤 야근이 빡빡해졌다. 예전에는 지상파 3사 뉴스만 체크하면 됐지만, 이젠 조중동매 종편까지 저녁 8시부터 밤 10시30분까지 무려 7개의 뉴스를 모니터링 해야 한다. 언론 노동자에게 종편 출범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그렇게 7개의 뉴스를 보고 나면 머리가 얼얼하다. 하루가 유난히 길다.
그렇게 전쟁 같았던 하루가 또 지나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 시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 뭘까 생각했고, 그 결과 나는 실로 오랜만에 육아일기를 쓰고 있다. 바쁜 일상이지만, 우리 세 식구는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
멜로디가 울렸다. 이불빨래가 끝났다. 나는 또 빨래를 하러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