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갸 공모전에서 연락 왔어요”

아내에게 톡이 왔다. 육지 출장 중이라 짧고 굵게 톡을 날렸다.

“된거?”

“그런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상인지는 안 가르쳐줘서 장려상이나 입선일수도 있다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입상 축하해요. 장려상이면 어떻고 입선이면 어때요. 고생 많았어요”

하루가 지나 아내가 톡과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자갸 나 대상 먹었어요”. 사진엔 수상작 명단, 그것도 제일 위쪽에 아내의 이름과 작품명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축하인사를 전했다.

 

아내가 동화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지는 2년이 되었다. 결혼 전에는 사법시험을 준비했었고 결혼 후에는 미디어 교육 관련 법인에서 일하다 제주에 내려왔다. 제주에 온 이후 뽀뇨를 낳고 공부방을 운영하며 우리 가정경제를 책임진 아내였다. 서귀포로 이사하고 둘째를 낳으며 아내는 공부방을 그만두었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내 월급과 아내의 재택 근무로 우리 가정은 경제적으로 부족하긴 했지만 행복했다.

아내가 처음 동화를 쓰겠다고 했을 때 의아했다.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거나 문학을 사랑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사람이고 판단하는 눈이 아주 정확한 사람이라 ‘작가’보다는 ‘평론가’에 가까웠다. 내 생각은 그랬지만 마흔 살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아내에게 잘 해보라며 격려만 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뽀뇨나 유현이가 한창 클 때니까 동화쓰기에 충분한 자양분이 될거에요”. 가끔 변호사를 하고 있는 친구가 제주에 놀러오면 ‘지금까지 법 공부한 것이 아깝지 않냐. 아내에게 다시 한번 시작해보라고 해라’는 권유도 들었다.

가족들은 지금처럼 마을기업에서 일하거나 동화 쓰는 일보다 공부방 운영하며 조금은 덜 어렵게 돈을 벌수 있을텐데 왜 그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지만 선택은 우리 몫이었다.

비문학전공인데다 나이 사십에 처음 동화를 쓰는지라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동네도서관에서 동화쓰기 강좌도 열심히 참여하고 내게 직접 쓴 동화를 보여주며 어떠냐고 자주 물어봤다. 동화수업을 하는 동료들만큼이나 아내의 동화를 많이 읽었는데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워 술술 잘 읽혔다. 동화에는 작가의 세계관이 담기게 마련인데 아내의 동화가 조금은 어두운 현실을 담아내고 있어서 ‘과연 등단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선배의 소개로 만난 유명 동화작가도 ‘동화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야 하는데 내용이 너무 어둡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작가는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 이야기가 세상에 울림을 주는지 여부는 독자들의 판단이니까. 아내에게 ‘등단이 안 되어도 좋으니 쓰고 싶은 방향대로 써보셔요’라고 하고는 아내가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말에는 아이들을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녔다.

주위 사람들이 아내가 나이 마흔에 동화작가 등단을 준비한다고 하면 "문창과 출신이 세상에 얼마나 많냐. 그 사람들의 교수가 모두 심사위원으로 올텐데 여간해서는 어렵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내 또한 그 이야기를 수 십 번은 들었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아내는 동화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 수강료가 부담되어서 올해부터는 수업을 듣지도 않았고 "기다렸다가 유명출판사의 공모전에 집중하자"는 조언에 작은 성취감이라도 느끼고 우리 가정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공모전에 참여하겠다며 이번 공모에 참여했다. 그렇다고 이번 동화공모전이 작은 규모는 아니다. 1000편 이상이 출품되며 수상 상금 등 공모전 규모로는 손에 꼽히는 공모전으로 수상집은 전국의 만 3천여 초등학교와 도서관으로 보내진다.

 

아내는 내게 고생했다며 내가 평소에 먹고 싶었던 참치를 사주었다. 그리곤 “수상하면 뽀뇨를 **월드에 데리고 가기로 했는데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에요”라고 했다. 나는 아내가 한국에서 유명한 작가가 될거라는 걸 약속할 수는 없지만 자기색깔이 분명한 작가가 될거라는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내의 작품은 상처받은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작지만 확실한 처방전이 될 것이다.

 

수상식사.jpg » 아내가 대상수상기념으로 저녁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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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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