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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꽃보다 할배>를 보고 망고빙수가 먹고싶다고 했다. 아직도 망고만 보면 그날이 생각난다.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2013년 9월23일. 아내는 하루종일 뾰루퉁해있었다. 전날 아내가 망고빙수를 먹고싶다고 했었는데 야근 때문에 사다주질 못했다. 사실 아내가 임신기간 내내 먹고 싶다고 한게 몇개 안됐는데 다 해주질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퇴근한 뒤, 아내와 망고빙수를 파는 커피숍에 갔는데 망고가 없다고 했다. 아내의 입이 두치는 더 나왔다. 아내의 눈치를 보며 운전하다 실수를 하는 바람에 아내의 화를 또 돋웠다. 집에 돌아와 눈치를 보며 침대에 정자세로 누워 잠을 청했다.


새벽 3시. 한번 잠들면 잘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아내가 흔들어 깨웠다. 아내는 스마트폰 출산진통 앱을 보여주며, “아무래도 순신이가 나올 것같아. 진통주기가 딱 맞아.”라고 말했다. 아내는 혼자서 앱을 찾아 깔고 진통시간을 입력해두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병원에도 전화를 해본 것 같았다. 어리둥절한 나는 진짜냐고 물었다. 예정일보다 일주일이나 앞서 있었고, 검진 때 잰 아이의 체중이 그리 많이 나가지가 않아서 ‘아무래도 예정일 지나서 아이가 나오려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출산가방조차 챙겨놓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외국에 계시던 장모님이 이날 아침에 입국하기로 했던 날이었는데, 출산과정을 온전히 나혼자 지켜봐야 한다는 것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허겁지겁 짐을 챙겨 차를 몰고 병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병원 분만실에 아내가 미리 확인을 해놨기에, 순조롭게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진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분만실이 아닌 분만대기실에서 약 8시간을 버텼다. 다른 산모들과 가족들이 계속 들락거렸고, 레지던트들과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전날 뾰루퉁해있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못한 아내가 열심히 힘을 줬다. 분만대기실에 있는 다른 산모와 가족들이 듣기 민망할 정도로 아내는 고성을 질렸다. 여러명의 레지던트들이 번갈아가며 아내의 자궁이 얼마나 열렸는지를 체크했다. 아내가 열심히 힘을 줬고, 분만 속도가 빠르다고 했는데도 도통 순신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특히 자궁이 어느정도 열려 순신이의 머리카락이 보일땐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


더욱 힘들었던 건, 남편이라고 옆에 있으면서 해줄 수 있는게 고작 힘 열심히 주라고 말하는 것 밖에 없단 점이었다. 온전한 분만과정에서 남편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에 불과했다. 일종의 무력감이랄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힘 두번만 주면 될 것같다고 거짓말을 하며 어르고 달래야 한다는게 나 스스로에게 좀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무슨 죄를 졌길래 이런 힘든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건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곧바로 태어나자 마자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순신이 걱정은 뒤로 미룬채, 아내가 그만 아팠으면 하는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창피하게도, 아내의 손을 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몇번의 독촉 끝에 오전 11시께 분만장으로 들어갔다. 외래 진료중이었던 교수가 올라왔고, 소아과 의사 서넛도 분만실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곧 태어날 아이 걱정이 됐다.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산부인과 교수는 “소아과 의사들이 대기중이니 아이는 걱정하지 말아라. 아기가 나오는대로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는 몇번 힘을 줘보라고 하더니 뚫어뻥같은 도구로 순신이의 머리를 잡아 끄집어냈다. 2013년 9월24일 오전 11시44분. 2.98㎏의 딸이 아내의 뱃속에서 나왔다. 순간 분만장에 정적이 일었다. 세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내 눈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순신이의 배가 보였다. 살았구나. 또 눈물이 흘렀다. 산부인과 의사에게서 아이를 건네받은 소아과 의사들은 아기의 상태를 살펴본 뒤 입을 벌려 기도를 삽관했다.

 

 서진이사진.jpg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찍은사진. 분만장에도 카메라를 갖고 들어갔는데 찍을 정신이 없었다.


체온이 떨어져 벌벌 떨고 있던 아내는 의외로 의연했다. 정신이 없던 차에 “잘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겨우 건넸다. 내가 너무 울어 멋쩍었는지, 의사는 “엄마도 저렇게 씩씩한데 아빠가 뭘 그렇게 우냐. 아이가 아파서 걱정일테지만, 지금 상태를 보니 괜찮을 것같다. 잘 될테니 걱정말라”는 말을 건넸다.


아내가 어떻게 병실로 옮겨진지도 모른채, 조막만한 몸에 호스 여러개를 꽂고 펌프로 호흡을 하고 있는 딸을 따라,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신생아 중환자실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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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기자
포스트모던을 바라보고 있는 시대에 전근대적인 종갓집 종손으로 태어나 모던한 가족을 꿈꾼다. 2013년 9월에 태어난 딸을 키우며 유명한 기자보단 사랑받는 아빠·남편·아들이 되는 것이 삶의 목표. 회사에서 2분 거리인 자택에서 딸에게 재롱떠는 것이 삶의 낙. 2010년 <한겨레>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다.
이메일 :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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