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이17.jpg

 

병설유치원에 입학한 막내가 드디어 3시까지 방과후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

자동적으로 둘째까지 막내가  끝나는 시간까지 학교에서 놀면서 기다리게 되었다.

큰 아이야 본래 수업이 3시였으므로 드디어 세 아이 모두 오후 3시까지

내 품을 떠나있게 된 것이다.

 

작년까지만해도  어딜 가든 막내와 함께 였다.

잠깐 누구를 만나게 되도, 급히 마트를 다녀올 일이 생겨도, 학교 상담을 하는 날에도

나 혼자 훌쩍 다녀올 수 가 없었다. 막내부터 옷 입히고 챙기고 손 잡고 다녔다.

아이는 늘 이뻤지만 아이때문에 모임에서 일찍 일어나야 했고, 아이 때문에

참석할 수 없는 모임들도 있었고, 아이때문에 더 늦어지거나, 아이때문에

더 복잡해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언제 나만의 시간을 좀 여유있게 누려볼까.

언제쯤이면 될까, 언제쯤이면...

늘 간절하게 고대하고 기다렸는데 드디어 그 날이 온 것이다.

애초에 내 계획에도 없던 유치원을 원해준것도 고마운데 막내는

유치원을 아주 아주 좋아한다. 너무 재미있어서 주말에도 가고싶고

유치원이 끝나도 더 오래 남아 있고 싶을 정도란다.

노래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만들기도 하고, 모래놀이도 하고

이젠 급식도 맛있고 이도 잘 닦는다며 싱글벙글이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가.

그동안 애쓰며 지내온 모든 세월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이다.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시키고 세 아이를 내몰아 학교까지 걷는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면 느긋하게 산길을 걸어 집으로 온다.

 

산길.jpg

 

조잘거리는 아이들 손을 잡고 넘던 길을 나 혼자 걷는다.

딱따구리소리가 들려오고 산비둘기가 울고 이름모를 작은 새들이

날아오르는 숲길이다.

이런 여유... 정말 오랜만이구나.

 

밥상 3.jpg

 

날이 풀리면서 슬슬 텃밭을 손 볼 때가 되어 자주 들리시는 친정엄마와도

맛난 반찬 만들어 둘만의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일흔이 넘은 엄마와 마흔이 넘은 딸은 애들 얘기도 하고, 남편 흉도 함께 보고

TV 프로그램에 대한 수다도 떨면서 즐겁게 밥을 먹는다.

그전까지는 기껏 밥 차려 놓고 애들 데리러 가야하거나 밥 몇 술 뜨다가

애들한테 달려가곤 했다. 이제 천천히 먹어도 애들 걱정은 없다.

세 아이 모두 정성 가득한 맛있는 밥을 먹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오늘은 친정엄마와 윗밭에서 땀을 흘려가며 일을 했다.

밭을 덮고 있는 마른  풀들과 잎들을 거둬내고 지난해 농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밭을 정리했다. 애들 걱정이 없으니 맘 놓고 일을 할 수 있다.

봄 햇살을 받으며 열심히 일하는 기분... 짜릿했다.

여기엔 강낭콩을 심고, 저쪽엔 감자를 심고, 호박은 이쪽에 심고...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왕룽이라도 된 기분이다.

늘 어린아이를 달고 있을때에는 텃밭일도 맘 놓고 못했다.

일을 할라치면 심심하다고 내려가자고 조르고, 혼자 집에 있게 하면

가위며 칼이 안 보인다고 엄마를 부르고, 풀이 자라기 시작하면

대번에 나타나는 풀모기때문에 애들은 얼씬도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한가지 일이 끝날때까지 그 일만 할 수 있는

즐거움...

정말 좋구나.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꼬박 여섯시간의 자유가 매일 내게 주어진다.

집안일도 많고, 텃밭일도 많지만 내 속도와 내 계획대로 할 수 있으니

걱정없다.

가끔 영화도 보러 갈 수 있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과 차 한자 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오래 생각만하던 영어 공부도 시작하고

겨울동안 중단했던 요가도 다시 등록해야지.

둘째가 다니는 학교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도 시작했다.

맘 놓고 여유있게 보내기엔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래도 좋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 일인가..

당분간 이 행복한 자유에 취해 힘든 줄도 모를것 같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춤을 추고, 나 혼자 차를 마시고

뭐든지  나 혼자 어쩌고 저쩌고 하는 노래 가사도 있더만

나는 좋구나. 혼자 밥 먹고, 혼자 거리를 걷고, 혼자 책을 읽는

이 시간이, 너무 오래 기다린끝에 얻은 이 자유가 좋아 죽겠다.

 

머리속엔 3천가지도 넘는 버킷리스트가 넘어가고 있지만

워워... 진정해야지. 그냥 매일 매일 내가 계획한 일들을 하고

무엇보다 그동안 애쓴 내 몸을 잘 돌보고 내 감정과 생각속에

풍덩 풍덩 빠져들 수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나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세상에나 13년 만에 이런 날이 오다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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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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