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열두 살이었던 한 여자 아이가 한 남자 아이와 그의 친구들로부터 윤간을 당했다. ‘착한’ 가톨릭 신도였던, 체구가 작고 똑똑했던 아이는, 그 일 이전의 삶을 모두 버렸다.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자신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가만 두었을 리 없다고 생각한 아이는 신에 대한 믿음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모두 버렸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정서적으로 충만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아이는 그 일을 겪고도 누구에게도, 아무런 내색도 할 수 없었다. 엄마 아빠도, 주변 누구도 몰랐지만, 아이는 스스로에 대한 모멸과 자괴감으로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 때부터 아이는 끝없는 허기에 시달렸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몸과 마음의 공허함을 물리적으로 채울 수 있는 건 음식 뿐이었으므로, 아이는 먹고, 먹고, 또 먹었다. 점점 체구가 커졌다. 몸집이 커질수록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몸이 크고 무거워질수록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고, 작은 몸보다 큰 몸이 여자로서 살아가는 데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 몸은 순식간에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이십대에 250kg이 넘는 초고도비만의 상태에 빠져버린 몸은 이제 무엇으로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없게 되었다. 다이어트를 할수록, 운동을 할수록, 최신 의학에 기대어볼수록,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자괴감은 더해갔다. 이렇게까지 달라져버린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가도, 어느 순간 너무나도 이해가 되었고, 또 그 이해의 찰나가 다시 못마땅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를 반복했다.자신의 거대한 몸을 보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그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열두 살 때의 사건에 대해 한없이 자책하며 괴로웠던 그는, 40대에 들어선 지금에야 스스로를,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스스로 편안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동네 대학에서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작가 록산 게이(Roxane Gay)의 이야기다. 자신의 몸에 숨겨진 ‘이야기’를 모른 채 그의 몸만을 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때로는 체념하듯 받아들이고, 그보단 자주 그 시선과 거기 담긴 부당함을 온 몸으로 저항하고 거부하며 살아온 한 사람. 그의 책<헝거>(Hunger)를 읽으며, 여성의 몸, (엄마가 된) 나의 몸,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몸으로 태어난 내 아이를 생각했다.
나는 체구가 작은 편이었다. 160cm가 채 안 되는 키에, 얼굴이 작고, 20대 내내 50kg 조금 못 미치는 체중을 유지했다. 외모에 신경쓸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천성이 워낙 외모를 꾸미는 데 관심이 없는 천성이어서 내 몸에 특별히 신경 쓰며 살아본 적이 없다. 물론 그건 특별히 체중이 늘지도, 줄지도 않는 체질의 소유자여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임신 중에도 사람들이 ‘배만 나왔네!’ 할 정도로 다른 데는 붓거나 살이 찌는 현상이 없었다. 그러다 임신 후반부, 체중이 10kg 가까이 늘었고, 출산 후엔 거기서 정확히 아이의 몸무게를 뺀 만큼의 무게가 내게 그대로 남았다. 아이를 낳고 홀쭉해진 배가 탄력 없이 쭈글쭈글한 모습 그대로 내 몸이 되어 정착하는 걸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출산 후 6개월 넘게 유축 모유로 모유 수유를 하고 쉴새없이 움직여대는 아이를 들쳐 안고 내내 걷고 움직이며 돌아다녀도 체중은 줄지 않았다. 하지만 그 충격은 잠시였다. 내겐 짝짝이 다리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으므로, 내 몸보단 아이의 몸이 더 애달팠다. 망가진 내 몸보다는 내 아이의 완벽하지 않은 몸이 먼저였고, 더 신경 쓰였고, 더 마음 아팠다. 하지만 1년, 2년, 시간이 지나고 아이의 완벽하지 않은 몸, 고칠 수 없는 몸을 천천히, 순순히 받아들여가는 한편에는 망가진 내 몸, 쭈글쭈글한 머핀탑(muffin top: 복부 언저리에 머핀 윗부분처럼 둥그런 챙이 생긴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버린 내 아랫배에 대한 혐오가 불쑥 불쑥 목구멍을 치밀어 올랐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남편과의 섹스를 피하거나 거부하던 때, 내 머핀탑 뱃살은 그 여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아이의 완전하지 않은 몸은 받아들이면서, 나의 달라진 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모습이 한심하고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괜히 의기소침해졌다. 이십대 내내 생계 유지하느라 바빠 외모엔 전혀 신경 써 본 적이 없는데, 출산 후 달라진 몸 때문에 이렇게까지 자존감이 떨어지다니, 우습기까지 했다. 뭐든 혼자서도 잘 하는 사람인데, 달라진 몸에 대한 나의 자괴감은 유독 혼자 극복하기 어려웠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지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내게 물리적으로나 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남편 뿐이었으므로, 남편에게 털어놓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남편은, 그걸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나이가 들면 사람 몸이란 더 그렇게 되기 마련이고, 아이를 품었다 낳은 몸이 예전과 똑같을 수는 없을거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흔적만 남은’ 자신의 ‘한때 식스팩’이라든가, 늘어가는 흰머리를 굳이 헤집어 보이며 달라져가는 우리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운동을 권할 때도,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년의 건강을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방식의 운동을 조금씩 해 나가면 되는 거라며 나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리고 ‘몸매 관리’에는 돈과 시간이 들 수밖에 없는데, 지금 우리 형편엔 돈도 시간도 여유가 없으니 달라진 ‘몸매’에 대해 자괴감을 갖기보단 오래 쓸 건강한 몸을 만들어가는 데 신경을 쓰자고도 했다. 그렇게 함께 이야기하는 동안 내 달라진 몸에 대한 자기 혐오는 천천히,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출산 후, 달라진 몸에 대해 남편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내 엄마를 떠올렸다. 내 기억 속 엄마는, 20년 가까이를 ‘다이어트’에 대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 사람이었다. 못 먹고 못 살던 학창시절,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을 한, 허약하고 마른 몸에 가까웠던 엄마의 몸은 두 아이를 낳고 ‘독박 육아’를 하는 세월 동안 많이 달라졌다. 내가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 아빠는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일하느라 육아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을/못했을 아빠는 아마 엄마의 달라진 몸에 대해서도 그 이유는 생각하지 못하고 현상만을 보고 비난했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아빠와 엄마는 식사량이나 식습관에 관한 한 거의 서로 반대 수준이었는데, 아빠는 늘 말랐고 엄마는 늘 몸집이 커서 서로에게 반감이 컸다. 엄마 아빠를 오랜만에 한 자리에서 보는 친척,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큰 몫을 했을 게다. 수영을 꾸준히 하고 몸 쓰는 식당일을 몇 년씩 하는 와중에도 엄마의 몸은 좀처럼 달라질 줄 몰랐고, 엄마는 그런 자신의 몸을 두고 때로는 미워했고, 때로는 동정했으며, 자주 허탈해했다.
우리 사회에서 몸, 특히 여성의 몸은 언제나 잔혹한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몸이 큰 여성들에 대한 평가다. 몸집이 큰 여성들에겐 자기 관리를 못한다, 게으르다, 식습관이 좋지 않다, 등 부정적인 평가가 꼬리표처럼 붙는다. 실제로 그의 생활이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해도 그렇게 쉽게 얘기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된다. 아이 엄마가 된 뒤 예전의 모습을 찾지 못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애초에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데에 녹아 있는 강박도 문제지만, 엄마들에게 '집에 들어앉아 애나 보면서 자기 관리도 안 한다', '애 보는 일이 편해서 그런다', '애들이랑 똑같이 간식을 먹어서 그런다', 등등의 말도 안 되는 추정들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정말로 집에 들어앉아 육아를 해 보면 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몸매 관리는커녕 눈꼽 뗄 여유도 없이 하루 종일 동동거리는 것이 엄마의 삶이라는 것을. 아이를 데리고 수시로 놀이터를 들락거리는, 철저히 아이의 잠과 밥, 용변 욕구와 놀이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삶을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옷을 뒤집어 입은 채 외출을 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가다듬을 여유도 없이 집 밖을 돌아다니기 일쑤다. 낮잠도 밤잠도 꼭 누군가 붙어 누워야 편안하게 잠드는 아이 때문에 옆에 누워 늦도록 아이를 토닥이다 결국 함께 잠들어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운동 부족, 근력 부족으로 몸이 아파 짬짬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이라도 하고 싶어도 아이가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엄마가 하는 요가 동작마저 재미있어 보인다며 같이 하길 원하거나 업어달라 안아달라 방해하는 아이 옆에서 대체 나의 ‘몸매’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달라진 몸에 대해 어떤 평가도 함부로 하지 않는 나의 남편은, 본인이 저녁마다, 주말마다 꼬박꼬박 육아를 도맡아 하기 때문에 ‘엄마’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안다. 아이에게 꼬박꼬박 하루 두어시간만 시달려도 쉬이 피로해진다는 것을 아는 그는, 내가 집안일을 미뤄두고 정말 게으르게 쉬어도 그런 나를 ‘게으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녁 식사 직후 아이에게 ‘오늘의 만화’ 시간을 주고 설거지를 할 때나 아이를 씻길 때, 남편은 늘 내게 “가서 좀 쉬어” 하고 말한다. 아이가 쉴 때 쉬어두지 않으면, 아이가 먹을 때 같이 먹어 두지 않으면 엄마는 쉴 때와 밥 때를 놓치기 십상이라는 걸 그는 안다. 아이와 밥을 먹다 보면 제 속도대로 먹을 수 없어 순식간에 밥을 후루룩 삼켜야 할 때가 있다는 것도, 때로는 밥을 먹다 말고 아이 용변을 처리하거나 엎질러진 밥상을 치우느라 식사를 어중간하게 끝낼 때가 있다는 것도 안다. 본인도 아이 낮잠, 밤잠을 재우다 함께 잠들어버리는 날이 있기에, 그런 나를 이해하고도 남는다. 게을러서, 식습관이 나빠서, 운동을 안해서가 아니라, ‘엄마’ 일을 하다보면 쉽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아는 것이다.
누군가의 몸에 숨겨진 이야기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크다. 평생을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에 시달렸던 내 엄마의 몸에 숨겨진 이야기를, 나는 몰랐다. 엄마의 몸에, 엄마의 생활 습관과 식습관에 숨겨진 이야기를, 나는 알 방법도, 알 필요도 없었다. 물론 지금도 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어본 적도 없고, 엄마가 말해 준 적도 없으므로. 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보니 조금은 알겠다. 왜 나의 엄마가 그토록 오랫동안 다이어트에 집착했는지, 왜 그렇게 열심히 수영을 하고 고된일을 해도 엄마의 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지, 왜 아빠는 끝끝내 모를 수밖에 없었을지도. 그리고 또 알겠다. 두 아이를 혼자 돌보며 숨통 트일 데라곤 동네 문화센터 밖에 없었을 그 때, 왜 엄마는 그렇게 열심히 우리를 데리고 밖으로 다녀야 했는지, 왜 그렇게 바깥 음식을 자주 사 먹였는지, 그러면서도 집 밥을 먹을 땐 또 왜 그렇게 푸짐하게 상을 차려냈는지. 그리고 어린 아이 둘을 키우는 그 기간 동안, 누구도 아무것도 알아주지 않는 텅 빈 시간 속에서 정서적으로 얼마나 심한 공허와 허무를 느꼈을지도. 하지만 이런 걸, 반드시 똑같은 경험을 해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각자 자신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판단이나 평가에 대한 두려움과 거리낌 없이 꺼내 놓을 수 있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이뤄질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을 스스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마른 몸, 커다란 몸, 달라진 몸에 대해,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신에게 편안하고 흡족한 방식으로 몸을 가꾸어갈 수 있다.
록산 게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몸을 만들어 온 그 이야기를 자신의 말로, 글로 풀어내면서야 비로소 자기 몸에 대한 혐오와 연민을 떨어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오랫동안 숨겨왔던 이야기가 부모님의 귀에까지 들어갔을 때, 그는 그토록 오랫동안 듣기를 원했던, 그러나 결코 드러내놓고 구할 수 없었던 그 말,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마침내 조금쯤은 자유로워졌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또한 고백한다. 커다란 몸, ‘비정상적인 몸’을 가진 흑인 여성으로 살면서 겪은 많은 일들, 때로는 한없이 부당하고 때로는 역겹기까지 했던 그 많은 일들 덕분에 비로소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확장하고, ‘다른 몸’에 숨겨진 진실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나는 우리 주위에도, 감상하기에 예쁜 ‘몸매’에 대한 기준과 품평이 아닌, 여성의 몸, 엄마의 몸, 아니 여성이고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그의 몸을 구성해 온 삶,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많이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한 사람을 그의 ‘몸매’가 아닌 그가 살아온 삶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나의 엄마도, 나도, 나의 아이도, 우리의 불완전한 몸과 화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또 다른 불완전한 몸들과 기꺼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엄마와 함께 있는 예쁜 모습을 그려달라는 부탁에 아이는 꽃을 든 우리를 그렸다. '예쁜 우리'가 아니라 '예쁜 꽃'을 들고 웃고 있는 우리를 그린 아이에게서, 나는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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