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엄마, 아빠는 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둘째 은유는 연휴 기간 동안 아침마다 “오늘은 쉬는 날이야?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야?”라고 물었고, “쉬는 날이야”라고 얘기해주면 “신난다”면서 동동 뛰었다. 그런 은유를 보면서 긴 연휴를 끝내고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 울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했다.
연휴가 끝난 첫 날 아침, 우려와 달리 은유는 어린이집에 잘 갔다. 은유랑 손 잡고 어린이집 마당을 지나면서 “은유야 오늘 밥 많이 먹고 재미있게 놀아. 사랑해 은유야”라고 말해주니 “응~”이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말하는 은유가 너무 대견해서 “우리 은유 무척 예쁘네”라고 칭찬해줬다.
연휴가 너무 길면 아이들이랑 어떻게 보낼까 걱정이 된다. 이번 연휴에는 고향으로 가지 않고 연휴 내내 제주에 있었다. 연휴의 절반 정도는 여행을 다녔다. 서울에 사는 아이들 고모가 제주에 내려와서 1박2일 여행을 갔다. 고모가 돌아가고 나서는 우리가 사는 제주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2박 3일 가족여행을 떠났다. 제주 온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우도도 가봤고, 표선해수욕장도 갔다.
아쉬운 것은 여행 기간 내내 비가 왔다. 제주 동쪽은 오름의 왕국이다. 어느 오름이든 다 좋다. 오름에 오르면 바다 쪽으로는 성산 일출봉과 우도, 에메랄드 빛 바다가 보이고, 반대쪽으로는 낮은 오름이 연이어지다 우뚝 솟은 한라산이 보인다. 비가 와서 그 오름을 올라가지 못했다. 다행히 우도에 들어갔을 때는 비가 잠시 멈춰 우도봉을 올랐다.
오히려 오름은 가족여행이 끝나고 나머지 연휴 기간에 올랐다. 집 근처에 있는 새별오름, 궷물오름, 금오름을 올랐다. 우리가 사는 집 근처에 있는 오름들이다. 새별오름은 지금 억새가 장관이다. 궷물오름에 오르면 인공적인 도로, 건물이 안 보이는 자연 그대로의 풍광과 마주하게 된다. 금오름은 나 없이 아내랑 아이들만 올랐다. 금오름은 이효리가 뮤직비디오를 찍어 유명해진 곳이다. 연휴 마지막 날 아내랑 아이들이랑 금오름을 올랐는데, 사람이 제법 북적거렸다고 한다.
첫째 윤슬이는 웬만한 오름은 혼자서도 잘 오른다. 문제는 은유. 힘들다면서 늘 언제나 나에게 “어부바, 어부바”해달라고 조른다. 아내는 은유한테 “너 혼자서 올라가”라고 말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내가 업고 오름을 오른다. 우도봉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연휴 마지막 날, 나 없이 아내랑 아이 둘이 금오름을 올랐다. 아내가 은유 때문에 고생할까 걱정했는데, 은유가 혼자서 오름 정상까지 씩씩하게 올랐다. 은유가 처음에는 “힘들어, 힘들어”를 말했지만, 결국 끝까지 자기 발로 잘 올라갔다고 한다.
아내는 “자기가 은유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렇다”고 나한테 타박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은유도 힘들 때 어리광부리고 떼를 쓰고 할 사람이 있어야지. 어른도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데 아이도 마찬가지 아니냐”라고 대꾸했다. 여튼 은유가 혼자서 오름을 끝가지 잘 올라갔다니 조금은 놀랐다. 아내는 다음에 오름을 갈 때는 나보고 절대로 은유한테 혼자 가라고, 업어주지 않겠다고 말한란다. 글쎄, 아마도 내가 가면 은유를 업어주게 될 것 같다는 약한 마음이 벌써 드니, 결론은 뻔하지 않을까?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게 올바를까? 몇 년 전 EBS에서 방영한 ‘아버지의 성’이라는 다큐가 생각난다. 아빠 육아에 대해서 다룬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아빠는 엄마와 다르다며 놀아주기를 할 때도 엄마는 교육하는 편이라면 아빠는 아이가 자유롭게 놀도록 두고 보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 프로그램에서 부모를 대상으로 아이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각자 생각하는 바를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 엄마는 아이의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개입하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고, 아빠는 미래에 아이가 행복하면 좋겠다는 좀 막연하기도 하지만 바라보는 성향이 주로 나타났다.
아빠는 너그러운 편이며,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편이라면 엄마는 개입하고 교육하는 편이라는 것. ‘아버지의 성’에서는 엄마, 아빠의 다른 양육태도에 대해서 아이들 입장에서는 각각 다른 방식의 교육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성과 균형성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아빠 육아가 아이의 성장 발달에 매우 중요하며, 아빠는 육아에 있어 더 이상 보조 역할이 아닌 든든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아버지의 성’은 이야기한다.
아이 양육태도의 차이로 첫째 윤슬이 때는 아내와 자주 다투기도 했다. 아내한테 원망도 자주 들었다. 지금은 그런 일은 적다. 서로 엄마와 아빠는 다르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엄마의 독박육아는 흔한 일이지만, 아빠의 육아 참여는 여러 가지 점에서 힘든 일이다. 한편 아빠가 육아 참여를 하려고 해도, 엄마가 이를 막는 경우도 가끔 보기도 한다. 엄마와 아빠의 양육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은유의 예를 들어서 엄마하고 있을 때는 씩씩한 아이가 되어서 오름을 올라도 좋고, 아빠가 있을 때는 아기가 되어서 아빠 등에 업혀 오름을 올라도 좋지 않을까? 이제 39개월 된 은유에게는 둘 다 성장의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은유야, 오름을 오를 때 아빠가 어부바 해주는 것은 만 네 살까지야.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