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시간 돼요?”
아내가 이렇게 물어볼 때는 긴장하게 된다. ‘학교에 행사가 있거나 학부모 면담이 있거나..’ 학교 관련 일이지 않을까 했는데 학부모 교통봉사 요청이었다. “네, 시간 괜찮아요”, “아빠가 교통봉사하는 것도 꽤 기억에 남을 거에요. 시간된다고 학교에 전할게요” 며칠, 몇 시인지 확인하고 스케줄 예약부터 했다. 혹시나 까먹거나 늦으면 큰일나니까. 뽀뇨가 1학년 이다보니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을 나와 아내가 함께 겪게 되는데 교통봉사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끔 등하교길에 만나던 여성 한 분이 학부모 였구나를 깨닫는 동시에 그 자리에 내가 투입되어야 함을 직감할 수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 있던 분들인데 내 순번에는 비가 오지 않기를 빌었다. 교통봉사 당일날, 뽀뇨는 아빠와 함께 학교에서 봉사를 한다는 생각에 꽤 기대를 했나보다. 늦잠을 자지 않고 일찍 일어나 학교갈 채비를 했다.
오전 8시에 아이와 함께 학교 가서 엄마들이 입던 조끼와 깃발이 어디 있는지 찾았다. 교무실, 행정실을 거쳐 체육관 입구에 가니 여러 개의 조끼와 깃발, 기록장이 있었다. 10분부터 50분까지 40분간 봉사를 해야 했기에 서둘러 후문으로 달려갔다.
오전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인데 걸어서 오는 아이들이 제법 되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이들 밥은 먹고 오는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이들 표정이 조금은 어두워 보였다. 나 또한 학교 가기 싫어서 초등 1학년 때는 단골지각생이었고 복도에서 자주 벌을 섰다. 5학년 때는 일과 중에 집으로 와버려서 학교에서 나를 찾느라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아이들 힘 빠진 얼굴이 안쓰러워 보여 한명 한명씩 ‘하이파이브’를 했다. 내가 학부모인지 다들 아는지 얼굴은 시무룩하여도 다들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했다. 중간 중간에 뽀뇨 친구들을 보고는 반가워서 하이파이브, 덩치가 큰 아이들은 몇 학년인지 물어보며 하이파이브, 뛰어서 오는 아이들은 넘어지니 천천히 오라며 하이파이브..
아이들 위한다고 한 하이파이브였지만 일하러 가기 싫은, 나를 위한 하이파이브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손을 맞추며 ‘짝’하고 소리를 내니 왠지 나도 힘이 나고 한바탕 웃고 나니 기분도 좋아졌다. 아빠 옆에 있던 뽀뇨가 절친들이 등교하니 함께 2층 교실로 들어갔는데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아빠를 지켜본다. “아빠, 왜 하이파이브 하는거야?”, “응, 아이들 표정이 안좋아서. 힘내라구”, “아빠 손바닥 아프지 않아?”, “괜찮아. 재밌는데”.
조금 있으니 후문으로 뽀뇨 담임선생님과 한 명의 여자분이 나왔다. 담임선생님께 인사드리니 “뽀뇨가 아빠 하이파이브 한다고 손이 아플 것 같다고 해서 나와 봤어요”라며 웃으신다. “아니요. 안 아파요. 오히려 기분이 좋은데요” 옆에 계신 여자분이 “아빠가 교통봉사 오는 것도 칭찬할 만 한데 일일이 하이파이브까지 해주시니 참 좋네요. 제주 분은 아니시죠? 제주 아빠들은 ‘에이, 무슨 그런 일을’ 하며 시켜도 안하는 일인데”. 알고 봤더니 그 여자분은 교장선생님이셨다.
40분간 재밌게 교통봉사하고 아이들과 선생님과 헤어졌다. 조끼입고 깃발 들고 하는 봉사가 처음이었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오전에 출근하여 일하고 있는데 아내가 톡을 보내왔다. 다른 엄마들이 나를 칭찬하는 톡 내용이었다. 교장선생님이 칭찬하는 걸 다른 엄마들이 들으셨나보다. 앞으로 자주 해야 될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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