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바오밥 나무 아래, 엄마 코끼리가 아기 코끼리를 두고 길을 나섭니다. 

오래도록 바싹 마른 채 쩍쩍 갈라져버린 대지에 비를 좀 내려달라고, 저기 높은 산 꼭대기에 가서 간곡히 빌어볼 작정입니다

 

겁이 난 아기 코끼리가 엄마를 붙들며 묻습니다.
"
가지 말아요, 엄마.
엄마 모습이 보이지도, 
엄마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으면
나는 어떻게 해요?"

엄마가 곁에 없더라도 너무 걱정 마. 
너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엄마가 그리울 땐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찾아 봐. 
멀리 떨어져서도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우리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것처럼 느껴질거야.

그러다 언젠가
밤 하늘이 환해지는 순간이 오면
그 때 엄마를 만나러 달 가까이 와.
하늘과 땅이 만나는 바로 그 곳으로.”

 

그렇게 엄마가 떠난지 얼마나 지났을까요. 
마침내 마르고 갈라진 땅에 비가 쏟아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비에 묻혀 바람도, 태양도, 별도 보이지 않는군요. 
엄마가 곁에 없어도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던 그 모든 것들이, 
세찬 비에 묻혀 버렸습니다.

 

아기 코끼리는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밤 하늘이 환해지는 순간, 그 순간은 언제 올까요?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그 곳은 어디일까요?
엄마는 왜 그렇게 아기 코끼리를 남겨두고 길을 떠나야만 했을까요?

 

내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밖으로 눈을 돌려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가꾸는 일도 중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 아이에게서 눈을 떼 바깥을 바라보면 너무나도 많은 끔찍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세상 속에 우리 아이들이 내던져져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 아이는 이렇게 내 눈을 마주보고 앉아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고 있는데, 저기 바깥에는 사고와 학대, 범죄와 무관심으로 상처 입고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3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에서, 어린이집, 학교에서 몸과 마음이 병들어 다치고 죽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학대와 범죄에 노출된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 사회의 모순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장애와 질병으로 몸과 마음의 생김이 다른 아이들은 아이들 세계에서조차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어 소외된 지 오래입니다. 몸과 마음의 생김이 다른 이들을 불쌍하게 보거나, 폄하하거나, 가까이 가면 전염이라도 되는 양 멀리하려는 우리 어른들을 보며, 아이들은 타인을 대하는 그릇된 태도를 그대로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에는 가난을 이유로, 혹은 인종적으로, 성적으로, 종교적으로 소수자라는 이유로 조롱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다섯 살, 여섯 살 난 아이들이 임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가리켜 ‘0000 거지라고 서슴없이 부르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피부색이 다른,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러, 일하러 온 사람들을 가리켜 냄새 난다, 더럽다 말하는 어른이 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종교적 선택, 성적 지향에 대해 쉽게 비난하고 조롱하는 어른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쉽게 잊습니다.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내 아이 역시, 언젠가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소외되고, 무엇인가에 상처 입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또 반대로, 내 아이가 언젠가 다른 아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조롱하며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코끼리.png

<케이티가 그린 엄마 코끼리>

 

메마른 땅에 비를 내리기 위해 길을 떠나는 엄마 코끼리를 보며다음 세상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을 위해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 더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내 아이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함께, 각자 꾸고 싶은 꿈을 꾸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다양한 삶의 조건을 가진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살며 각자의 삶의 모습을 존중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을 모아 귀한 비를 세상에 내리고 곳곳에 푸르고 싱싱한 새싹을 틔우는 것, 바로 그것이 '엄마의 사랑' 아닐까요


엄마가, 엄마의 사랑이 위대한 것은, 그저 엄마에게 모성이란 것이 있어서, 그것 자체가 위대해서가 아닙니다. 엄마가 강하고 위대한 것은, 바로 엄마에겐 세상을 바꿀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기꺼이 길을 떠나 비를 내리게 할 만큼, 엄마는 용기 있고 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비에 가려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아이가 언제나 엄마의 존재를 느끼며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내 아이를 튼튼한 갑옷으로 무장하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맨 몸으로도 단단히 딛고 설 수 있는 땅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엄마의 사랑입니다.  

 

엄마 코끼리의 조금 특별한 사랑이야기, 
함께 읽어요.


번역본: <달에서 만나자>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897871


원서: Meet Me at the Moon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880655

+ 함께 이 땅에 비 내릴, <정치하는엄마들>을 찾아요.

남자 엄마도, 여자 엄마도, 손주 키우는 엄마들도, 

얼집과 유치원과 학교의 엄마들도 모두 엄마이자 언니인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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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alyson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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