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 두 딸들이 수영을 배우고 있다.
다른건 몰라도 수영만큼은 어렸을때 꼭 가르쳐주고 싶었다.
세월호 이후 생존수영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해도 수영장이 구비되지
않은 초등현실에서 제대로된 수영을 배우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시내에 있는 사설 스포츠센터 수영 프로그램을 등록하게 되었다.
두 딸들도 수영을 배우게 된 것이 신나서 미리 산 수영복을 집에서부터 입고
다니면서 강습을 고대했다.
막내 이룸이는 아기때부터 물을 워낙 좋아했던 터라 은근 기대가 있었다.
머리감을때 물이 눈에 들어가는 것 쯤 신경도 쓰지 않는 아이다. 물 속에서
눈을 뜨는 것도 자유로왔다.
여덟살 치고 또래보다 큰 키와 긴 팔, 다리도 수영에 유리하리가 생각했다.
달리기도 잘 하고 운동 신경도 좋은 아이다. 문제 없을 것이다.
둘째 윤정이는 사실 걱정을 조금 했다.
물에 대한 공포가 워낙 컸던 아이라 어렸을때부터 머리 감기는 일이
전쟁이었던 탓이다. 특히 눈에 물이 들어가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머리가 물에 적셔지는 순간부터 공황처럼 공포가 몰려오곤 했다.
스스로 머리를 감게 되기까지 10년 넘게 걸렸고, 그것도 가까이에 수건을 두고
눈에 물이 들어가는 것 같으면 재빨리 물기를 닦으면서 감는 머리였다.
수영을 하겠다고는 했지만 잘 하리라는 기대는 안했다. 중간에 그만두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영 시작한지 네 달이 넘어가는 요즘... 결과는 내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이룸이와 함께 왕초보반에서 시작한 윤정이는 이룸이와 같은 반에서 강습받은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두 번이나 이룸이보다 먼저 월반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상급반에 들어가 접영 기초를 시작했고 금요일부터는 오리발도 착용한다.
그 일때문에 아주 신나있다.
물론 고비는 있었다.
자유 수영 팔돌리기에 접어들고 킥판과 거북이등까지 떼고 해야 할때 윤정이는
크게 자신을 잃더니 몇 번은 배가 아프다며 강습을 피하려고 했다.
한 번쯤은 봐줬지만 두 번째로 배 아프다는 핑계를 댔을때는 단호하게 밀어붙였다.
울고불며 수영이 너무 어렵다고, 그만두고 싶다는 아이를 그래도 해보라고
밀었다. 윤정이는 눈물이 글썽해서 풀 죽은 모습으로 들어가곤 했다.
윤정이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믿지못하고 있었지만 내내 지켜본 내 판단으로는
윤정이 몸은 윤정이 생각이나 느낌보다 훨씬 물에 잘 적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고비를 넘기고나서 윤정이는 곧 자유형이 편해졌다.
얼굴을 내밀고 하는 배영은 더 쉽게 익혔다. 평형도 어렵지 않게 배웠다.
반면 이룸이는 네 달이 지난 지금도 수영하는 날만 되면 물에 들어가기전까지는
언제나 우울해한다. 막상 들어가서 하고 나오면 표정이 밝지만 수영하러
가는 것을 환영하지는 않는다.
똑같이 시작해서 언니가 먼저 월반을 했을때는 너무나 맘이 상해서 반나절이나
울었다. 두 번째 월반은 체념을 하긴 했으나 언니가 산 오리발을 몹시 부러워한다.
이룸이와 윤정이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걸까.. 지켜보며 생각을 해봤다.
우선 체력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열한 살 윤정이는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다. 동생보다 날씬하지 않다고 가끔 속상해
하지만 유연성이 좋고 힘도 좋다. 설명을 듣고, 시연을 보고 이해한 것을 제 몸으로
구현해 내는 일도 이룸이보다 훨씬 능하다.
연습에 성실한 자세도 중요했을 것이다. 선생님의 지시사항을 정확히 기억하고
그대로 따라 하려고 애를 쓴다.
반면에 이룸이는 조금 건성이다. 키는 크지만 몸이 마른 체형이라 힘이 달린다.
그러니까 제 힘으로 끝까지 가지 못하고 매번 수영장 라인 줄을 손으로 끌며 나간다.
수영이 늘 리 없다. 몇 번이나 자세를 잡아주고 동작을 보여줘도 막상 하게 되면
좀처럼 정확한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워낙 영리한 아이라서 쉬울 줄 알았는데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물 속에서 몸으로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인가 싶다.
늘 전망대에 앉아 두 딸이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그토록 물을 무서워 하는 아이가 수영을 잘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사방에서 영특하다는 말을 듣는 막내가 수영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는게
재미있기도 하다.
슬슬 사춘기에 접어드는 것 같이 까칠했던 윤정이는 수영을 시작하고나서
오히려 많이 부드러워졌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부심이 커졌다.
사춘기의 아이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는 아주 중요하다.
제 몸이 제 기대보다 날씬하지 않거나, 이쁘지 않거나. 유능하지 않다고 느끼면
곧바로 자존감에 영향을 받는다. 또래 관계나 학교 생활 많은 부분에
위축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내 몸이 내 생각보다 유능하고 잘 해낸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진다. 당연히 관계나 학교생활에도
탄력이 붙는다. 윤정이는 수영을 시작한 후로 자기가 더 예뻐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수영을 잘 한다는 사실도 퍽 좋아한다. 자기 자신이
아주 맘에 드는 것이다. 한동안 까칠했던 모녀사이도 부드러워졌다.
나날이 수영에서 이루는 성취를 칭찬하고 격려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윤정이를 매우 행복하게 한다.
이룸이는 들쭉날쭉 하지만 제 또래 중에서는 제가 잘 하는 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사실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자존감이 높은 아이라
수영을 언니보다 못한다고 해서 크게 기죽지 않는다. 언니와 비교하지 않고
듬뿍듬뿍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은 물론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언제나 예상밖의 풍경을 만나는 일이다.
그게 또 육아의 묘미이기도 하다.
물을 그토록 무서워하던 아이가 물속에서 멋지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의
감동도 뿌듯하고, 모든 일에서 칭찬을 듣다보니 못 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힘들어 하는 모습도 소중하다.
더 키워봐야 안다.
내가 낳았고 내가 키우고 있지만 내가 어찌 내 아이를 다 알 수 있을까.
언제나 지금의 모습이 다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아들이 어렸을때 과연 이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학교 공부로 인정받는 날이 있기나 할까.. 좌절했었는데 열다섯 아들은
지금 제가 속한 반에서 아주 우수한 아이로 인정받고 있다.
챙기고 확인하지 않아도 알아서 숙제를 해 가는 모습이나 배운 내용을
줄줄이 읊어대는 모습은 지금도 정말 신기하다.
저는 바보인가봐요.. 자책하던 어린 아이는 이제 스스로 자기가
똑똑한 학생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어른의 계획대로 몰아대지 않았던 것, 적당한 때에 기회를 주었던 것
그때까지 기다려주었던 것들이 아마도 잘 맞았을 것이고
언제나 한눈 팔며 지낼 수 있는 환경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부모노릇, 엄마노릇이 할만해지는 건 이런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키우다보면 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을 만날지도 모르지만
그런 설레임, 그런 기대 안고 같이 사는 일은 힘들때도 있겠지만
결코 지루하진 않을테니 얼마나 좋은가.
더 키워보는 거다.
그러면서 나도 같이 커 가는 거다.
딸들 덕분에 나도 처녀적에 배우고 오래 잊고 있었던 수영을 다시 하고 있다.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하지 않았는데 내 몸은 수영을 잊고 있지 않았다.
이 나이에 새삼 내 몸을 기특해하고 있다. 근사한 일이다.
더 키워봐야 안다.
더 살아봐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