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_0000061509.jpg » 어린이집에서 세배하고 세뱃돈 받는 민지

 

새해를 맞이하면서 결심한 것이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 섬세하게 기록해놓자는 것이다. 그때 그 순간 사진과 글, 영상을 통해 내가 바라본 아이들에 대해 기록해 놓지 않으면 매일 바쁜 일상 속에서 그것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결심을 한 탓인지 요즘 내게 깨알같은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 있다. 바로 딸의 폭발적인 언어 성장이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질문을 하고,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민지는 발견하곤 한다. 
 

# 에피소드 1 -“엄마, 내 마음이 찢어졌어”
 
5살(45개월)이 된 딸은 요즘 질문도 많이 하고, 본인의 감정 표현도 풍부하게 한다. 이번 설에 시골에 내려가서도 딸의 한 마디가 시댁 식구 모두를 허허허 웃게 만들었다. 바로 그 한마디는 “엄마, 내 마음이 찢어졌어”다. 마음이 찢어질 듯 슬프다는 표현이 5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데 얼마나 기가 막힌지. 식구들 모두 웃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감탄했다.
 
민지가 이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렇다. 온 식구가 모인 자리에서 딸 민지가 동생 민규를 자꾸 괴롭혔다. 아침 밥도 잘 먹지 않고 동생 노는 것을 자꾸 방해하자 삼촌이 민지를 혼냈다. 그리고 민지에게 “나 이젠 민지 싫어. 민지는 밥도 잘 안먹고 동생 괴롭히고. 민규가 좋아”라고 했다. 평소 민지를 너무나 예뻐하던 삼촌이 그런 얘기를 하니 민지로선 너무 섭섭했을 것이다. 냉랭한 삼촌의 시선에 화가 나고 슬펐는지 눈물을 보이면서 엄마인 내게 와서 와락 안겼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엄마, 내 마음이 찢어졌어. 삼촌이 나 속상하게 했어. 지금 내 마음도 찢어지고, 얼굴도 찢어지고, 발도 찢어지고, 발톱도 찢어질 것 같아”라고 했다. 얼마나 슬펐으면 그런 표현을 했을까. 그리고 그 표현을 언제 배웠을까...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 표현을 민지는 내게 배운 것 같다. 둘째 민규가 아토피로 가려워서 밤잠을 자지 못하고 엉엉 울때 내가 그 표현을 썼었다. "민규야... 울지마... 네가 울면 엄마 마음이 찢어져... "라고 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민지는 그 상황에 그런 표현을 쓴다는 것을 배워 자기 상황에 적용한 것이다. 아... 얼마나 놀라운 성장인가...  
 

# 에피소드 2 - “민규는 왜 여기에선 낯가림을 안해요?”
 
17개월된 민규는 낯선 사람 특히 여자를 보면 낯가림을 한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내리깔고 어수룩하게 타인을 경계한다. 민규가 그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난 상대방에게 “아이가 낯가림을 해요. 조금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진답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내 언어를 민지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낯가림’이라는 단어를 매우 적절하게 사용한다.
 
얼마전 브루미즈 체험전에서 민지와 민규를 데리고 갔을 때 일이다. 너무 갈증이 나 민지는 쥬스를, 나는 아이스라떼를 마시고 있던 중이었다. 한참 쥬스를 맛있게 마시다 말고, 민지가 뜬금없이 내게 묻는 말.
 
“엄마.... 그런데 민규는 왜 여기에선 낯가림을 안해요?”
 
순간 민지의 발견에, 또 민지의 질문에 감탄했다. 아는 이모들이 집으로 놀러왔을 때, 또 밖에 놀러가서 낯선 사람을 봤을 때 분명히 민규는 낯선 사람을 보고 놀라거나 부끄러워 했었다. 브루미즈 체험전에는 낯선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데 민규가 낯가림을 하지 않고 신나게 논 것이다. 난 얼마전 읽은 유태인의 교육 방식을 적용해 바로 답을 주지 않았다.
 

“어. 그렇네? 정말 놀라운 발견이다!! 민지는 왜 그렇다고 생각해?”

민지가 좀 생각하는 듯하더니

“음..... 여기는 재밌게 노는 곳이니까 그런 것 같아요... 노느라고 정신이 없는 거죠... ”
“아~ 그럴 수 있겠다!! 그럴 듯한 분석이야.. 엄마 생각도 민지랑 똑같아. 아마 민규가 너무 노는 데 정신 팔려 낯선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아.. 민규 정말 신나게 놀지? 미끄럼틀도 신나게 타고. ”

우리 둘은 놀 것에 정신팔린 민규를 보며 낄낄대며 웃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민지와 나는 대화가 통하는 느낌이었다.
 

# 에피소드 3 - “엄마, 다원이처럼 이가 빠지고 싶어요”
 
잠 자기 전에 민지는 항상 내게 그날 있었던 일들 중에 인상깊은 것들을 얘기한다. 민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또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 나눴던 대화를 통해 알게 된다. 많이 피곤하고 빨리 잠들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잠자기 직전 나누는 대화와 사랑의 뽀뽀가 민지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 최대한 나는 대화하려 노력한다. 
 
며칠 전 민지가 잠자기 직전 또 내게 말을 건다.
 
“엄마... 나 엄마한테 할 말이 있어...”
“응. 뭔데?”
“나도 다원이처럼 이가 빨리 빠졌으면 좋겠어요”
“진짜? 왜?”
“다원이는 벌써 이가 빠졌어요...”
“이가 빨리 빠지는 것은 안좋은데... 때 되면 다 빠져... 다원이가 빨리 빠진거야...”
“다원이는 왜 이가 빨리 빠진거예요?”
 ???
다원이란 애는 왜 이가 빨리 빠진걸까? 이가 빨리 나오려고 그러겠지... 라고 얼렁뚱땅 대답해놓고 잠자는 척 했다.
 
 그래도 우리 민지 계속 말을 건다.
“엄마... 나도 oo처럼(생각인 안 난다) 이사 가고 싶어요...”
“이사 가고 싶구나... ”
네...”
 
 또 있다가..
 “엄마! 그런데 왜 브루미즈는 발이 나왔어요?”
 (뮤지컬 공연에서 브루미즈 큰 인형을 쓴 사람이 공연을 했기 때문이다)
 “음... 왜 그럴까?”
 “내가 알려줄까?”
 “응”
 “응. 그것은 사람이 브루미즈 탈을 쓰고 춤 춘거야. 내 말 맞지?”
 “응!! 맞아. 어떻게 알았지?”
 
 
요즘 질문도 많고, 말하고 싶은 것도 많고, 느끼는 것도 많은 우리 딸. 벌써 5살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딸이 성장한 만큼 나도 성장하고 있는 걸까. 딸과 대화를 하면서 뭔가를 발견할 때 행복하다. 딸의 그 아기 냄새도 좋고, 웃으면 사라지는 눈도 좋다. 이렇게 하루하루 깨알같은 즐거움을 누리며 올 한해도 행복하고 싶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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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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