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깨닫게 되는 사실들이 있다.
아이들은 정말로 넓은 곳 보다는 구석진 곳, 작고 낮고 좁은 곳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집안에서도 기막히게 그런 공간들을 잘 찾아내 자기들만의 공간으로 재창조 해 내는데
세 아이를 키우면서 13년 동안 보는 모습이면서도 늘 감탄하게 된다.
책상이나 테이블 밑, 문 뒤쪽의 좁은 틈이나 빨래 건조대 아래같은 곳은
아이들의 단골 놀이장소가 되곤 했다. 보자기나 낡은 천 몇 조각으로
지붕도 만들고 문도 만들어 드나들며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몸이 작아져서 함께
들어가 놀고 싶어질 정도다.
아이들은 왜 작고 좁은 장소들을 좋아할까.
아마도 그런 공간들이 엄마의 뱃속, 처음에 제가 깃들었던
자궁같은 안락함과 따스함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열세살인 큰 아이는 대여섯 살 무렵에 이불을 다 들어내고 이불장 안에 들어가
하루 종일 놀곤 했다. 정리하는게 힘들어서 못 놀게 해 보아도 소용없었다.
어느새 이불을 허물고 그 안으로 들어가 제 살림살이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벙커도 되고, 집도 되고, 굴도 되는 그 안에서 아이는 하루 종일 행복했다.
그 행복을 내가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막을 수 가 없었다.
윤정이와 이룸이는 제 방안에 있는 나무탁자 아래 방석을 늘어 놓고 기어들어가
누워서 놀곤 한다. 너무 좁지 않냐고, 답답하지 않냐고 해도 좋단다.
커다란 책상밑을 색색 보자기로 막아서 그럴듯한 방으로 만들고 둘이서 소꼽놀이를
종일 하기도 한다.
요즘 세 아이는 거실에 캥핑용 의자를 맞대어 놓고 그 위에 얇은 여름 이불을
빨래 집게로 고정시켜 드리운 자기들만의 방을 만들어 노는 일에 푹 빠져 있다.
처음엔 거실에 널어 놓은 이불 호청 들을 이용해 대강 만들던 의자집은
아이디어가 좋은 오빠가 합세하면서 얇으면서도 넉넉한 폭을 가진 여름이불이
등장했고, 2층의 빨래집게 통이 내려오면서 한층 더 업드레이드 되었다.
의자위를 푹신한 베게와 쿠션으로 채우고, 제가 좋아하는 인형들을 늘어놓고
후렛쉬와 스탠드까지 가져다 놓으니 환하고 안락한 저만의 공간들이 된 것이다.
가장 환한 빛이 들어오는 어항 옆의 좋은 자리는 잽싼 필규가 차지했다.
이불 자락을 막대로 들어올려 어항위에 고정해 놓고 어항 불빛으로 책을 읽는 것이다.
이런 자세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 한시간도 끄떡없다.
윤정이는 작은 후렛쉬로 비쳐가며 책을 읽는다.
오빠가 책을 읽으면 동생들도 똑같이 한다. 오빠만큼 오래 집중해서 읽진 않지만
이렇게 읽으면 훨씬 더 재미있단다.
글씨는 모르지만 오빠 언니가 하는 것은 열심히 따라하는 이룸이도 스탠드를 옆에다 밝혀놓고
만화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 오빠와 언니가 모두 좋아하는 조경규의 '오므라이스 잼잼'은
음식에 대한 만화책이라서 그림만 봐도 먹음직스럽고 재미있다.
저녁 먹은 것을 치우느라 한참을 주방에 있다가 나왔더니 세 아이는 숨 소리도
내지 않고 자기들의 의자방에 들어가 책을 보고 있었다.
방안을 가로질러 메어놓은 빨래줄 위엔 겨울 옷들이 가득 널려 있는데
책과 옷가지, 잡동사니들로 어지러운 소파와 늘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느라
정리할 사이가 없는 탁자 너머로 세 아이의 작은 공간들이 섬처럼 떠 있었다.
열세 살, 아홉살, 여섯살 세 아이가 한명씩 들어가 있는 자그마한 공간..
은은하고 환한 빛들이 그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참 예쁘구나..
늘 아웅다웅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는 아이들인데 이 순간은 거짓말처럼 각자의 공간에서
고요했다. 그래서 나도 이 아름다운 세개의 섬들을 모처럼 아주 오래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
이런 풍경이 가능한 데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 마을에는 어울려 놀 또래 친구들이 없다. 친구들은 모두 시내의 아파트에 산다.
그래서 세 아이들의 친구는 세 아이 뿐이다.
싸우고 밉고 지겹고 싫어도 돌아서면 다시 찾게 되는 오빠, 언니, 동생이다.
혼자 노는 것보다는 어울려 노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투닥거리고
울고 싸우면서도 종일 같이 논다.
평일엔 텔레비젼을 볼 수 없는 것도 중요하다.
텔레비젼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볼 수 있다보니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집안에서 온갖 궁리를 다 동원해가며 놀거리를 찾게 된다.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것도 시간이 정해져 있고, 아이들 모두 스마트폰이 없다보니
뭐든지 이용해서 놀 방법들을 생각해 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집안의 모든 방석과 베개들이 나오기도 하고
거실이 온통 거대한 레고 세상이 되기도 하고 이렇게 아이들만의 섬이 세개 두둥 하며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에 만든 의자집은 아이들의 요청이 너무 강해 이틀째 치우지 못하고 있다.
덕분에 거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자던 것을 아이들방에서 셋과 둘씩 나눠 자는
수고를 감수하고 있는 중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고 흘러 내려서 다시 고치고 꾸며야 하는 의자집은
책을 읽는 도서실이었다가 갑자기 병실로 바뀌어 보자기로 깁스를 한 아이들이
절룩 절룩 뛰어 다니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어느새 아파트로 변신해 서로의
집을 방문해 가며 역할 놀이를 하기도 하면서 무한 변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늑해 보이는 아이들의 의자집을 엿보다 보면
책상밑에 들어가 책을 읽고 불장난을 하고 그러다 잠이 들곤 하던
어린날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엔 다락방도 있었고, 늘 축축하게 습기가 차 있던 집 뒤의 좁은 틈도 있었지.
어른들의 눈에 띄지 않고 하루 종일 이라도 우리끼리 놀 수 있던 그런 장소..
그런 공간이 많았던 내 어린날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고 있다.
그래서 매일 보는 뻔한 공간을 매 순간 새롭게 창조해내는 아이들의 손길과 마음이
이쁘고 귀하다.
그림같이 말끔하게 집안이 정리되는 것은 늘 허무한 바램이 되고 말지만
카오스처럼 어질러지고 부산스러워도 매번 새로운 창조와 재미와 즐거움이
탄생되는 집안이 더 좋다.
조금 헐렁하게, 느슨하게, 지저분하게, 덜 치우고 많이 놀면서
아이들의 어린 시간을 함께 누리는 것...
마흔 여섯살 겨울을 보내는 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