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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짬짬육아’ 연재를 절필하다시피 한 지 어언 3개월. 그 사이 내 인생, 특히 육아인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아이템 중의 하나가 바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1천만명을 돌파했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약정’에 묶여 통신생활의 진화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취재는 물론 생활상의 편의를 추구하고자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을 곰곰이 고민하던 지난해 10월 기준, 내가 토해내야 할 위약금은 7만8천원이었다. 스마트폰 사용을 위해서 지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합리적인 액수로 5만원 정도를 상정하고 있던 나는, 새해 1~2월 정도를 전환 시기로 잡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휴대전화 통신판매원으로부터 위약금 7만8천원을 보상해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약정 기간이 3년이라는 점이 맘에 걸렸지만, 그래도 결단을 내렸다. 


참치야채죽.jpg » 내가 만든 참치야채죽.

 

여느 스마트폰 사용자가 그러하듯, 처음엔 앱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내 생활과 취향에 맞는 유용한 앱을 찾는 일도 꽤 품을 팔아야 했다. 그리고 정말 별 생각 없이 요리 앱을 다운받게 되었다.
요리라 함은 내 아킬레스건이 아니었던가. 결혼 전에 아내에게 날렸던 수많은 공약 중에 유일하게 지키지 못했던 그 약속. 맨땅에 헤딩하듯 달려들었다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이제는 포기, 아직까지 바가지를 긁히고 있는 나의 콤플렉스. 요리앱을 다운받게 되면 혹시나 요리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운받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인생의 변화를 경험하게 됐다. 


그전에는 뭔가 그럴 듯한 요리를 하려면 데스크탑 컴퓨터를 켜고 레시피를 검색하고 이를 외우든지, 종이에 적든지 기타 여러 방법으로 숙지를 한 뒤 행동에 옮겨야 했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니, 레시피는 내 손바닥 안 아몰레드 디스플레이에 들어와 있었다. 앱에 들어있는 전문가들의 레시피는 정확했다. 시키는 대로 하면 맛이 났다. 녀석을 혼자 건사해야 할 경우, 예전에는 있는 밥에 국에 마른반찬으로 끼니만 건너뛰지 않고 대충 먹이고 치웠지만, 용기를 내어 실험을 해보았다. 맨 처음 해본 요리는 녀석이 감기에 걸려 밥을 못 먹을 때 해본 참치야채죽이었다. 맛이 괜찮았다. 여세를 몰아 기회 있을 때마다 참치야채덮밥, 닭고기완자, 카레볶음밥, 밥도그 등 난이도를 높여갔다. 성공적인 맛이었다. 내 인생에 있어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요리를 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름 수준급 아마추어 요리사인 아내도 나의 요리를 인정했고, “아빠가 맛있는 거 해줘서 좋아”라는 녀석의 ‘칭찬’을 들었다. 요리를 하게 되니 냉장고 살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양파, 당근, 감자, 달걀 등 기본 아이템들이 구비돼있는지 항상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당근과 양파를 잘게 체 썰면서 뭔가를 깨닫게 되었다. ‘요리는 정성’이라는 것. 우리의 어머니와 아내들이 쏟았던 정성의 결정체가 바로 요리였다.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알게 된 진리다.
요리는 정성이라지만, 그래도 편리함을 추구하는 건 본능이다. 요즘 나는 자동으로 체를 썰어주는 전동 커터기가 갖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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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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