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5655.JPG » 마곡사 주변 산책길 가는 길.

 

 

“아~ 좋다~”
 
내 입에선 계속 감탄사가 쏟아졌다. 심지어 전날엔 너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로 지난 13일 부서 첫 엠티 가는 날의 일이다. 스페셜콘텐츠팀과 기획운영팀으로 구성된 디지털콘텐츠부. 이 부가 만들어진 지 꽤 됐지만, 아직까지 한번도 엠티를 가보지 못했다. 아이 딸린 엄마들과 연조 있는 선배들로 구성된 이 부서 멤버들은 부서 회식도 자주 못할 정도로 바쁜 일상을 보내왔다. 그런데 4월 초 부서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조홍섭 환경전문 기자가 “봄도 왔는데 우리 엠티 한번 가보자”라고 발동을 걸면서 거사는 진행됐다.
 

처음 가는 엠티인 만큼 1박2일이라는 일정을 잡았다. 애초 일부 선배들이 아이를 데리고 오겠다 했다. 나는 “애 데리고 가면 신나게 못놀잖아요. 전 그냥 애 안 데리고 가려고요”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뱉어 결국 다른 선배들도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 않는 방향으로 유도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서 단 하루 만이라도 해방돼 그저 신나게 놀고 싶었다. 우리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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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회식 자리에 권복기 디지털미디어국장이 동석한 만큼, 국장의 윤허를 받아 당일 오전 업무를 휘리릭 처리하고 오전 11시께 회사를 출발했다. 첫 목적지는 서산 개심사. 유홍준 교수가 1박2일에 나와 소개했다는 이 절은 충남의 4대 절 가운데 하나로 백제 의자왕 14년(654년)에 지어진 절이다.꾸불꾸불한 돌길과 산길을 따라 걸으며 조홍섭 환경전문기자는 괭이눈꽃, 현호세 등 각종 꽃의 이름을 알려줬다. 꽃구경에 짹짹거리는 새소리에 하늘은 맑고 봄기운 가득하니 세상의 행복이 우리에게 온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니 고즈넉한 절이 하나 보였다. 마음을 열어주는 개심사. 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이고, 고즈넉함이 살아있는 절이었다. 절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이런 저런 사진도 찍으며 추억을 남겼다. 사진찍기 좋아하시는 선배들은 절 곳곳의 아름다움에 취해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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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심사를 나와 해미읍성을 향했다. 해미읍성은 조선시대 초기 성곽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읍성으로는 가장 잘 보존돼 있는 읍성이라고 한다. 넓직한 해미읍성을 따라 1시간 정도 걷는 것이 애초 목표였다. 그런데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트래킹을 포기하고 우리는 성내를 조금 구경하고, 숙소인 전통불교문화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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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5시 정도였다. 아직 저녁을 먹고 본격적인 음주가무를 즐기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마침 한겨레 휴 프로그램 강사로 활약을 하고 있는 권복기 디지털미디어국장이 함께 했기에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 휴 맛보기 체험을 하기로 했다. 온몸 체조를 통해 몸의 근육을 이완시키고, 두 사람씩 짝을 찌어 발 마사지, 머리 마사지 등을 실시했다. 1시간 반의 체험이었지만, 잔뜩 긴장된 몸이 쫙 풀리고 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한겨레 휴 프로그램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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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고 개운한 몸 상태로 식당에 도착해 우리는 폭탄주를 돌리기 시작했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폭탄주인가. 취재원을 만나 폭탄주를 먹긴 했지만, 마음을 턱 놓고 ‘집에 빨리 가야하는데’ 라는 재촉감 없이 술을 마셔본 게 얼마만인가. 폭탄주는 거의 먹지 않던 우리 부서 사람들도 엠티를 가서는 폭탄주를 마구 돌렸다. 마사지를 해서인가? 알싸한 폭탄주가 달콤하기 그지 없고, 폭탄주가 목구멍을 타고 잘도 넘어간다. 기분 좋게 취한 우리들은 2차로 노래방을 향했다.
 
 
아~ 이 얼마만에 출입하는 노래방인가. 노래방에서 노래에 취해 사람에 취해 난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술에 너무 취해서인지 선배들이 참 예뻐 보이고, 가슴에 묻어뒀던 말들도 쏟아냈다. 얼마전 보왔던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흘러나왔던 ‘기억의 습작’도 부르고, 평소 애창곡 자우림의 노래도 부르고, 미친 듯 목놓아 노래를 불렀다. 노래방에서 방방 뛰고 흥에 취해 3시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03207365_P_0.jpg » 한겨레 자료사진

 

술에 잔뜩 취해 흥청망청해본 지가 언제이던가. 아이 딸린 엄마가 술 마시고 싶을 때 맘 놓고 술 먹기는 쉽지 않다. 취재원과 일때문에 마시는 술이 아니라면 거의 개인적 모임에서 술을 마시지 못했다. 특히 남편은 얼마전 막걸리를 먹고 잔뜩 취해 계속 토하는 나를 보며 “다시는 그렇게 토할 정도로 먹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술을 안마시다보니 술이 많이 약해졌고, 토한 경험이 있어 술이 싫어졌다. 그런데 왜 그 날은 그렇게도 술이 달콤한지. 자유의 맛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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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박2일 동안 아이들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냥 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저 이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가니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이며 나를 맞는다. 그저 아이들이, 남편이 사랑스럽게 보인다. 잠깐 동안이지만 1박2일 아이들과 떨어져있다 아이들을 보니 마냥 예쁘고 사랑스럽다. 엄마 없어도 씩씩하게 잘 있어준 아이들이 고맙고, 아이들을 잘 보살펴준 남편이 고맙다.
 
 
아이들과 좀 놀아주는데 시간이 좀 흐르니 피로가 몰려온다. 잠시 방에 누워 쉰다. 한 30분 정도 누워 있었나. 생명력 넘치는 아이들은 엄마에게 함께 놀아달라, 텔레비전을 틀어달라 떼를 쓰기 시작한다. 자기 방에서 일을 하던 남편은 “펑펑 놀고 오더니 계속 누워 있냐”며 화를 버럭 낸다. 평소 같았으면 화를 냈을텐데 그저 “남편이 화났구나.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 평화로운 마음의 정체는 뭐지? 노곤함 몸을 일으켜 세운다. 커피를 진하게 한잔 타서 마시고 다시 힘을 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먹일 과일을 썰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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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좋다~”
 
 
여행가기 전에도 좋았지만, 여행 다녀와서도 좋았다. 노곤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 속에 에너지가 가득 찬 것 같았다. 노래방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며 에너지를 발산해서인지, 아니면 자연으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고 와서인지 잘 모르겠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가끔 그렇게 외박을 해야겠다. 혼자만의 시간, 에너지를 발산하거나 자연의 좋은 에너지를 받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번 엠티로 다시 한번 깨달은 사실.

 

엄마에겐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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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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