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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 아빠는 나보다 두 살 많지만,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나는 고작 골목길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놀았다면, 민지 아빠는 시골에서 나무도 베고 풀과 나무와 꽃들 사이에서 뛰어놀았다고 했다. 말하자면 ‘촌놈’으로서의 정체성이 살아있다. 그래서 그런지 길거리 가다가 꽃이나 각종 식물을 보면 제법 이름을 말해주곤 한다. 
 
나는 무남독녀다. 그리고 우리 집안 모든 여자들은 공부를 못한 것에 ‘한’을 가지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집안 생계를 꾸려야했던 할머니, 엄마, 이모들은 내게 항상 공부와 책 읽기, 하고 싶은 것 맘껏 하기를 강조했다. 집안일 같은 것은 못해도 상관없다 했다. 다 때 되면 할 수 있다 했다. 학교 다닐 땐 부엌 근처에 가본 적도 없고, 내 옷을 스스로 빨아 입어본 적도 없다. 나는 그저 학교와 집을 오가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놀고 싶은 대로 놀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웠다. 집안일이나 요리, 각종 생활에서 필요한 기술들은 항상 내 관심 밖이었다. 그래서 난 가끔 나 스스로 구체성이 떨어진다 느낄 때가 많다. 
  
남편은 삼형제 중 막내다. 두 형들과 터울이 큰 남편은 딸이 없는 집안에서 이것 저것 집안일을 많이 하며 살았다. 제사도 많고 집안 식구도 많은 집에서 자란 그는 딸이 없는 집안에 태어나 집안일이며 부엌 일이며 많이 도와야 했다고 했다.
 
실생활에 필요한 기술이나 자연을 즐기는 능력엔  ‘꽝’인 나에 비해, 민지 아빠는 요리도 잘 하고 식물도 잘 기르고 일상생활에서의 능력엔 탁월하다. 그런 민지 아빠를 볼 때마다 나는 뭔지 모를 뿌듯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능력, 생활의 구체성을 남편이 가지고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우리 둘은 서로를 보완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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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베란다 화단에 심어놓았던 감자를 캐는 남편과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도 다시 한번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사실 감자를 심어 캐본 경험이 내겐 없다. 감자를 먹을 줄만 알고, 감자가 덩이줄기 식물인 것만 알았지, 실제로 감자를 심어서 캐어본 적이 없다. 어렸을 적 살았던 집 앞 마당에 작은 화단이 있어 동백꽃이 피고 큰 나무가 있었지만 나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리고 꽃을 보며 집안 어른들과 무슨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다. 그런데 남편은 주말에 뜬금없이 베란다에 감자를 심어보기도 하고, 길거리에 핀 들꽃들을 파서 옮겨 심어보기도 한다. 민지와 함께 그렇게 감자도 심고 꽃도 심고 나서 같이 물을 주고 알뜰살뜰 챙긴다. 햇빛이 반짝거리는 날들엔 그저 베란다에 앉아 아이들과 함께 심어놓은 식물들이 잘 자라는지도 지켜본다. 그 모습 자체가 내게는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4월5일 식목일날 민지가 어린이집에서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고 그 화분을 집에 가져왔다. 지난해에는 피망을 가져와서 잘 키워 피망 2개를 따 먹었는데, 올해는 방울토마토다. 남편은 작은 화분에서는 방울토마토가 잘 자라지 않는다며 옮겨 심어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작은 스티로폼 박스에 심어놓았던 감자를 캤다. 민지와 잘 자란 감자 줄기를 쭉 뽑았더니 크고 작은 감자가 보인다. 크고 작은 감자들을 따서 삶아서 먹었다. 덜 자란 꼬마감자를 하나 맛보았는데 정말 달콤했다. 민지와 민규는 저녁 밥을 맛있게 먹고 나서도 본인들이 캔 그 감자를 맛있게 먹었다. 물 잘 주고 그저 햇빛 잘 드는 베란다에 두었는데도 그렇게 감자가 주렁주렁 열린 것을 보니 얼마나 신기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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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방울토마토를 잘 키울 일이 남았다. 감자를 키울 땐 회사와 집만 왔다갔다 하면서 물 한번도 제대로 준 적 없고, 눈길 한번 준 적 없는데, 이번엔 방울토마토에 관심을 기울여봐야겠다. 민지와 함께 방울토마토 앞에 앉아 어떻게 커가는지 얘기도 나누고 나중에 방울토마토가 열리면 같이 따봐야겠다. 이런 것도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안되는 내가 참 어이가 없다. 한번씩 하다 보면 나중엔 자연스럽게 식물에 눈길도 가고 삶의 구체성도 획득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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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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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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