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규 16.jpg

 

아들과 싸웠다.
그것도 서로  손을 맞 잡고 엎치락 뒤치락 몸 싸움을 하며 제대로 붙었다.
아들은 나를 밀어 내려고 있는 힘을 다했고, 나도 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열 살 사내녀석을
쓰러 뜨렸다.
이런 장면은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나.. 마흔 셋에 열 살 아들과
육박전을 벌일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친구집에서 종일 놀다 늦게 들어온 날, 나는 시어머님이 설 때 챙겨준 생선 대가리들을 개들의
저녁밥으로 끓이고 있었다. 집안에 비린내가 심하게 나서 아이들에게 외투를 입고 있으라고 일러두고
현관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있는데 아들은 춥다고 불평하면서도 외투입는 건 싫다고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러면서 벽난로를 피워달라는거다. 그날은 날이 풀려 저녁에도 영상의 기온이라 나는 당연히
벽난로를 피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추우면 옷을 더 입으라고 했더니 그건 절대 싫단다.
개밥을 끓여서 밖에 내다 놓고 거실에 이불을 펴기 위해서 걸레질을 시작하면서, 거실 바닥 가득
펼쳐놓은 아들 녀석의 레고 장난감들을 치우라고 했다. 벽난로를 안 피워준 것 때문에 심통이
나 있던 아들은 내가 걸레질을 하며 가까이 가도 소파 근처에 서서 발 하나도 안 치우고 있다.
'걸레질 해야 하니까 소파 위로 올라가던지 좀 비켜봐' 했더니
'싫은데요?' 하며 나를 노려본다. 엄마도 내가 원하는거 안 해줬으니까 나도 엄마가 하라는대로
안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잠깐 아들 녀석을 쳐다보다가 한 번 참았다.
'레고, 어서 치워. 레고를 치워야 엄마도 걸레질을 해서 이불을 펴지'
'싫어요. 아들은 또 고개를 젓는다.
순간 화가 확 났다.
'빨리 치워. 니가 안 치우면 엄마 맘대로 할꺼야?'
'그렇게는 못 하실걸요?' 아들은 레고 앞에 앉아 레고를 만지작거리며 나를 노려 본다.
'어서 치워. 엄마가 지금 걸레 들고 기다리고 있잖아. 니가 이걸 치워줘야 엄마가 방을 빨리
닦고나서 이불을 필 거 아냐' 나는 화가 나서 언성을 높였다.
'흥!'
아들은 레고를 치우는 시늉을 하며 앉아서는 도무지 꼼지락거리기만 한다. 나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어서 치워!'
'소리 지르지 마세요'
'뭐라고? 이거 안 치울거야? 그럼 엄마 맘대로 할꺼야?' 하며 레고에 손을 댔더니
'만지지 마세요. 엄마 맘대로 못해요'
'손 치워, 니가 치우기 싫으면 엄마가 치울꺼야'
'싫어요' 하며 아들은 레고를 집으려는 내 손을 잡았다.
'엄마 손 놔!'
'싫어요. 엄마가 힘으로 하면 저도 힘으로 할꺼예요' 하더니
아들은 내 두 손을 꽉 잡고 밀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이 녀석이 엄마에게 힘을 행사하려는 것이
너무 놀랍고 기막혀서 순간 머리가 하애졌다. 그러면서도 너무너무 화가 나고 아들 녀석에게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있는 힘을 다해 녀석을 밀어서 넘어 뜨렸다.
녀석은 바닥에 쓰러져서도 고개를 들어 나를 노려 보며 씩씩거렸다.
나는 눈 앞에 벌어진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가 없었다.
'너, 지금 엄마한테 힘을 쓰는거니? 엄마를 니 힘으로 밀어서 쓰러뜨리고 싶어?
이불을 펴려면 니 장난감들을 치워야 하는거고, 엄마가 몇 번이나 치우라고 말 했는데
꼼짝도 안 하고, 그래서 내가 치우려고 했더니 엄마를 밀어? 니가? 열살 된 아들이
엄마에게 대드는 것도 모자라 밀어서 쓰러뜨릴려고 해?'
나는 기가 막히고 분해서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악을 쓰며 아들 녀석에게 퍼 부어댔다.
가슴 속에서 뭔가 툭 하고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들을 잘 못 키웠나, 세상에 열살 녀석이 엄마인 내 권위와 힘에 정면으로 도전하다니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가 없었다. 눈물이 솟았다.

아빠와 목욕탕에 씻으러 들어갔던 윤정이가 달려 나왔다.
남편도 나왔다.
남편은 막대기 하나를 찾아 들고 나오더니 커다란 가방을 꺼내와 레고를 집어 넣기 시작했다.
'아빠, 레고는 안되요' 필규가 울부짖으며 아빠에게 매달렸다.
'뭐가 안돼. 너 이거 때문에 맨날 동생하고 싸우고, 엄마한테 대들고, 다 이것 때문이잖아.
비켜. 이건 아빠가 알아서 할꺼야'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 레고는 치우지 말아 주세요' 아들은 남편의 손을 잡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아빠, 오빠 레고 치우지 마세요. 버리지도 마세요. 오빠야, 오빠가 잘못했지? 아빠한테 어서
잘못했다고 얘기해'
윤정이는 울먹거리면서 남편 품에 매달려 아빠에게 사정했다가 오빠에게 얘기했다 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젖을 찾는 이룸이를 품에 매달고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결국은 나도 이런 꼴을 다 보게 되는구나.
이런 수준밖에 안 되면서 무슨 블로그를 하고, 책을 썼다고 하겠어. 내 아들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하고 존경도 못 받는데... 자책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윤정이가 내게 달려 오더니 저도 울어서 붉어진 눈에 가득 안스러움과 연민의 표정을 담아
나를 바라보더니
'엄마... 나는 엄마가 좋아요. 사랑해요' 하며 나를 꼬옥 끌어 안는 것이었다.
그 포옹이 얼마나 따듯하고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남편은 필규의 사정에도 단호하게 가방에 레고를 주워 담고 있었다.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 이제부터 윤정이랑도 안 싸우고 레고 같이 놀께요. '하더니
필규는 별안간 나를 안아주고 다시 아빠에게 달려가 오빠를 편 들어주던 윤정이를 보면서
'윤정아, 오빠는 너 없이 하루도 못 살아. 오빠가 너,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하며
동생을 꼭 끌어 안는거다.
'나도 오빠 사랑해' 윤정이도 필규를 꼭 안았다.
갑자기 집안 분위기는 살벌한 막장 드라마에서 훈훈한 형제애가 넘치는 가족 드라마로 바뀌었다.

둘이 끌어 안고 있는 사이에 레고를 가방에 집어 넣으려는 아빠에게 필규가 다시 매달렸다.
'아빠, 레고 버리지 말아 주세요. 저는 레고 없이 하루도 못 살아요. 차라리 저를 때리세요.'
'아빠는 너 안 때려. 그러니까 어서 손 치워'
'그러면 차라리 저를 죽이세요. 레고는 안 돼요'
이런...
벽에 기대어 자학과 자책을 거듭하고 있던 나는 필규의 대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도 레고가 좋구나, 필규는...
 
'앞으로 윤정이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엄마 말씀도 잘 듣고, 엄마 일도 많이 도와드릴께요.
제발 레고만 버리지 마세요'
남편은 아무말없이 레고를 가방에 집어 넣어 지퍼를 올렸다.
'버리지 않을거죠? 치워 두기만 하는거죠?'
필규는 희망을 가진 표정으로 내게 달려와
'엄마, 아까는 정말 잘못했어요. 그렇게 대들면 안 되는건데... ' 하며 내게 안겼다.
나는 여전히 아들에게 밀렸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필규는 내게 사과를 하더니 목욕탕에서 씻기 위해 속옷을 찾는 윤정이에게
'오빠가 팬티 찾아 줄까?' 하더니, 윤정이 손을 잡고 함께 윤정이 방으로 향했다.
'팬티가 어디있을까요? 못찾겠다 꾀꼬리 할까?' 하는 명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오빠야, 팬티가 못찾겠다 꾀꼬리 소리 들으면 나오겠냐?' 하며 윤정이도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레고가 담긴 가방을 들고 히죽 웃고 있었다.
'윤정이 하는거 봤지? 당신이 딸 하나는 정말 잘 키웠네. 나는 깜짝 놀랐어' 한다.
'기운내. 잊어 버리고..' 남편은 그때까지도 바닥에 주저 앉아있던 내게 다가와 나를 꼭 안아 주었다.
'... 저렇게 아직 어린 아인데... 말 하는 것 봐. 아직도 그냥 순진한 어린 아이인데..
내가 잘 못 했나봐.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나는 또 훌쩍 훌쩍 울었다.
'잊어 버려. 이러면서 크는거지'

 

어찌어찌해서 거실에 이불이 펴지고 아이들은 언제 집안이 살벌했냐는 듯 이불속에서 깔깔 거렸다.
필규는 내 옆에 누워 나를 몇 번이고 껴 안고 거듭 '죄송해요, 엄마' 사과했다.

윤정이한테도 '윤정아, 오빠가 뽀뽀 백번 해줄께' 하며 동생을 안고 뒹굴며 장난쳤다.
그러더니
'엄마.. 그래도 우리는 싸워도 결국은 좋게 끝나서 참 다행이예요. 어떤 집은요, 한 번 이렇게
크게 싸우면 평생 말도 안 하기도 한대요' 한다.
'... 그렇구나. 다행이구나. 우린 그렇게 하지 말자' 나는 기운없이 대꾸했다.
아들은 내 말에 다시 씨익 웃고 내 몸에 제 팔과 다리를 얹고 잠을 청 했다.

아이들과 남편이 잠 든 후에도 오래 잠을 이룰 수 가 없었다.
몇 번이고 일어났던 일들을 되돌려보며 그 때 내가 어떻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까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들이 내게 힘을 행사했다는 건 분명 단순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그것에만 너무 집착해서
감정을 과장하고 사건을 확대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필규는 레고가 너무 소중한, 세상에서 레고가 제일 좋은 어린 아이다.
그걸 엄마가 맘대로 치우려고 해서 오직 그걸 막고 싶은 마음에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진거다.
물론 다른 아들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슬며시 제 장난감을 치웠겠지만, 필규가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내 아이가 더 못되고 나쁜 아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때리면서 기르지 않았고, 아이라도 제 생각은 늘 제대로 표현하게 키운 것이
제 억울함, 분함, 고집을 더 강하게 주장하게 해 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잘 못 이끈것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사건으로 내 아이가 나쁜 아이라고 단정을 짓거나, 내가 아이를
잘 못 키운 엄마라고 자책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육아 파워 블로거이고, 육아에 대한 책을 썼고, 내가 아이 키우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본다는 사실을 너무 의식하며 지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자꾸 아들이 내 기대와 다른 행동을 할때 더 야단치고, 다그친게 아닌가 반성이 들었다.
글을 쓰던 책을 쓰던 나 역시 매일 어리석은 실수를 하고, 내 감정을 현명하게 다스리지 못해서
아이들 앞에서 버벅이고 버럭이는 평범한 엄마일 뿐이다. 아이가 잠 든 머리맡에서 반성문을 쓴느
똑같은 엄마가 아닌가. 내 자신과 내 아이들에게 너무 엄격하고 틀에 박힌 잣대를 들이밀고
있어 왔나보다.
나 역시 아이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을 현명하게 해결하는데는 턱없이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일 뿐이다. 그게 나다. 지혜롭고 인격적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단호하고 부드럽게
잘못을 일러주는 그런 세련되고 멋진 엄마이면 좋겠지만 널을 뛰듯 방방거리고, 사소한
잘못으로도 오만가지 소설을 써가며 아이들과 나 자신을 책망하는, 상상력은 도무지 나이들지
않는 여자일 뿐이다.

 

엄마와 드잡이를 하고 한바탕 난리를 쳤어도 아이들은 또 밝게 깔깔 거리며 잠들었다.
아들녀석은 '엄마, 오늘 사건을 '레고 대 참사'로 불러야겠어요. 그리고 다시는 엄마랑
이렇게 힘 써가며 싸우지 않을거예요' 장난스런 표정으로 다짐을 했다.
어쩌면 아들은 나보다 더 마음이 건강한 모양이다. 폭풍처럼 휘감았던 감정도 일단 지나고 나면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사랑스럽고 따스한 제 모습으로 금방 돌아가는 유연성도 나보다
훨씬 낫다. 나는 아이들이 다 놓아버린 일을 아직도 끌어 안고 끙끙거리는데 말이다.

그래, 그래..
아들과 맞장뜬 건 멋진 일은 아니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서도 여전히 서로를 끌어안고
살 부벼가며 함께 잘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우리 아들, 많이 컸구나. 이번엔 어찌해서 내가 녀석을 쓰러뜨렸지만 다음엔 이기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니까 힘 세져가는 아들과 힘으로 겨루는 일은 이번으로 끝내자. 막장으로 치닫으려는 드라마를
훈훈한 홈드라마로 바꾸는 능력이 내가 키워야 할 진정한 내공이리라.

 

아아... 나는 여전히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게 너무나 많은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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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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