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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9일.. 아들이 드디어 개학을 했다.

태극기라도 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반중학교는 8월 17일쯤에 개학을 했고, 초등학교 다니는 두 딸도 25일에 개학을 했는데

아들은 자그만치 29일에서야 개학을 한 것이다.

나는 참고, 참고 또 참으며 기다렸다. 마침내 세 아이가 모두 학교에 간 29일 오전..

나는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자유를 만끽했다. 아.. 정말 좋았다.

 

올 여름은 정말 힘들었다.

무엇보다 징글징글하게 더웠다. 평소에 나는 더위에 강하다고 여겼었는데 올 여름

더위는 내 자부심 따윈 가볍게 넘겨버렸다. 속수무책으로 더위에 시달리며 세 아이와

집에서 지내는 시간은 그야말로 도를 닦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두 딸들은 그래도 어지간한 시간에 일어나 움직이며 놀고, 집안일도 돕고, 마당에 나가

물놀이도 하면서 보냈건만 열네살 아들은 아들은.............................. 잤다.

자고 또 잤다.

 

청소년기에 이르면 생체리듬이 변해서 자는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일어나는 시간도 점점

늦어진다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즉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라는거다.

2차 성징이며 급속한 성장기가 나타나는 몸은 필연적으로 충분한 잠을 원한다는 건데

아들은 과연 이 논리에 표본인양 충실하게 자고 또 잤다.

 

본래 방학이면 늦잠을 자곤 한다. 그래도 열시쯤엔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 주었다.

이번 여름방학엔 오전 10시는 어림도 없었다. 11시에 깨워도 반응이 없었다.

열두시는 넘어야 조금 움직였다. 어떤 날은 한시가 다 되어 일어나기도 했다.

처음엔 어떻게라도 아침을 먹이려고 깨우는 시늉을 해 보았으나, 금방 포기했다.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 챙기고, 나도 먹고, 두 딸들 깨워서 아침 먹이는 일 만으로도

고단한데 아들까지 깨워 멀 먹이려다보면 내가 쓰러질 판 이었다.

아침 먹이기를 포기하니 편해졌다.

아들은 열두시 반쯤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종일 빈둥거렸다.

주로 만화책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신문을 뒤적거리고, 씨네21을 보고

일주일에 세시간인 게임에 목을 매고, 매일 내게 온갖 아양을 떨어서

허락을 받고는 내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는 것이 주 일과였다.

일어난지 두 시간쯤 지나서 또 밥을 찾곤 했다. 그 시간에 일어나도

세 끼는 꼭 챙겨 먹었다.

어떤 날은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또 다시 눕곤 했다.

평균 12시간 이상을 잠으로 보낸 것 같다.

 

아빠보다 큰 아들이 하루의 반 나절을 잠으로 보내는 집안에서 날은 더워도

할 일은 넘치는데 자고 있는 큰 놈을 보자면 열불이 터지곤 했다.

저 녀석만 좀 도와줘도 일이 수월할텐데, 같이 좀 해주면 빨리 끝날텐데

생각하다보면 자고 있는 녀석의 등짝을 때려주고 싶을 만큼 밉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또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저도 크느라고 힘들겠지.

키도, 마음도 생각도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으니 제 가파른 성장을

몸으로 감당하는 일이 벅차기도 하겠지..

학기중에는 오전 8시 4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빡빡한 학습 일정을

소화해야 했으니, 그런 시간을 몇 달이고 보냈으니 방학만이라도

학습에서 놓여나 마음껏 쉬고 싶겠지..

그래.. 그렇겠지..

 

아들이 다니는 대안중학교는 학습량이 많다. 토론과 발표가 많은

수업은 매 시간 충실하게 집중해야만 한다. 아들은 한 학기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 선생님들에게 모범생이라는 말을 들을만큼

최선을 다했다. 늘 학교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던 아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제대로 된 '공부'라는 것에 눈을 뜬 아들은

열심히 몸과 마음을 내어 주었다.

한달간의 여름방학을 맞으면서 학교에 써 낸 방학계획에서

아들은 '방학은 방학 본연의 뜻에 충실하게 보내겠다.

즉, 놀고,자고, 먹으면서 말이다'라고 썼다고 했다.

아들은 자신의 방학계획을 아주 충실하게 실천했다.

할 말이 없을만큼..

 

아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게 맞는게 아닐까..

학기중에 열심히 공부하고, 방학은 마음껏 놀고 쉬고..

학습에 대한 긴장, 부담을 모두 내려놓고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쉬고 다시 충전하는 기간.. 그런 방학..

나도 누려보지 못한 그런 방학 말이다.

 

아들이 일반학교에 다니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면 방학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아마 나는 또 모자란 과목을 보충하라고 학원이며 공부고 등을 떠 밀었을 지도

모른다. 공부도 충분히 못하고,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아쉬움과 걱정만 커진

그런 방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들은 제 뜻대로 방학을 보냈다.

나도 (힘은 들었지만)아들의 방학을 비교적 무던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경쟁을 하고 친구를 눌러야 하는 공부가 아니니 아들은 쉬고 노는 방학을 보낼 수 있다.

개학을 하면 다시 배움을 시작하고, 아들은 1학기 동안의 자신의 실력을 뛰어 넘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오로지 내가 나에게 경쟁 대상인 공부다. 나와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하는 공부다.

그렇게 해서 대학을 가겠냐고, 사회생활에서 낙오하지 않겠냐고, 일반 아이들을

따라 잡을 수 있겠느냐고 걱정들을 하지만 정말 공부가 좋아서 빠져 본 경험 없이

정말 방학 한달을 제 맘대로 보내 본 경험 없이 청소년 시절을 보내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이 아닐까.

 

아들은 자고, 놀고, 먹고, 빈둥거리며 방학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타이트한 2학기 수업에 들어갔다.

충분히 놀았으니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충실히 공부하면서 긴 겨울 방학을 고대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열네살 인생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면서 말이다.

 

방학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는 아들을 지켜보느라 엄마로서의

내 근육도 많이 커졌다. 애썼다고 나를 두드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일상은 평범한 리듬을 되 찾았다.

날씨도 서늘해졌으니 나도 더 열심히 움직이고, 읽고, 쓰고

나누고, 함께 하며 살아야지.

어쩌면 지금 이렇게 보내는 시간들이 내 인생의 방학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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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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