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5.jpg

 

아파트를 떠나서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온지 2년 째..

나도, 아이들도 변했지만 역시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아파트에 살때는 주말이 되면 여기서 뒹굴, 저기서 뒹굴거리며 종일 낮잠만 자고 싶어하던
사람이 땅에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180도 바뀌었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들으면 주말이라도 일찍 일어나 집 안팎을 살펴보고, 수시로 닭장 챙기고
텃밭 챙기며 돌아 다닌다. 겨울엔 틈나는 대로 사방에서 얻어 온 나무를 도끼로 패서 장작을 만들던
나무꾼이 되서 나를 놀래키더니만, 도끼질이 능숙해질만할 때 겨울 지나고 봄이 오니 이젠
목수로 변신을 하고 있다.

 

남편이 본래 무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만 했었다.
아파트에 살때에도 손재주가 있어서 간단한 집수리는 알아서 하는 사람이었다. 가전제품 고치고
배수관 고치고 애가 가져오는 복잡한 장난감도 뚝딱 뚝딱 조립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파트
에서는 남편의 능력이 발휘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잘 몰랐다. 남편이 무슨 재주가 있는지 말이다.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와서 2년 째에 접어들자 집안은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루었다. 남편은 슬슬
그동안 불편하게 쓰던 집안 이곳 저곳을 살펴보며 본인이 직접 가구를 만들어 바꾸어 가고 있다.
나로서는 도무지 용도를 알 수 없는 공구들을 열심히 사들이는가 하면 갖가지 사이즈의 목재들이
택배로 도착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남편의 작업은 시작되었다.
주말이 되면 남편은 마당에 각종 공구들을 부려놓고 전기톱으로 목재를 자르거나 모서리를 다듬어
드릴로 구멍을 뚫고 또 못을 박아가며 땀을 흘린다.
톱밥가루가 날리고, 페인트 냄새가 진동을 하고, 드릴소리가 요란한가 싶더니 어느날은 근사한
CD장이 완성되고, 또 어느날은 창가에 아이들과 앉기 좋은 긴 나무 벤취가 완성되는 식이다.
글을 쓰고 음식을 만들고 바느질도 제법 야무지게 하는 나도 손 재주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나와 전혀 다른 분야에 상당한 재주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생활에서 쓰임이 있는 물건을 직접 만드는 남자란 정말 매력적이다.
집안의 공간을 분석하고 거기에 맞는 모양을 상상해서 순수한 목재를 가지고 자기만의 가구를
완성해 가는 남편의 모습은 몸을 움직여 일하는 땀냄새 물씬 나는 수컷에다, 가족이 사는 집을
관리해 가는 어른의 이미지까지 더해져서 한층 더 근사하다.

원형 전기톱이니 이런 저런 공구들을 구입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처음엔 마뜩찮았지만
하룻밤 술값으로 몇 십만원씩 쓰고 온다고 푸념하는 동네 엄마들의 얘기들을 들어보면
술도 안 마시면서 이런 취미를 가지고 있는 남편을 응원하는 쪽이 훨씬 낫겠구나 싶어진다.
순전히 자기 좋아하는 일에 큰 돈을 쓰는 남자들도 많은데, 우리 남편은 집안에 쓰임이 있는
것들을 만드는데 쓰는 돈이니 그리 아까울 것도 없다. 오히려 주말마다 열심히 땀흘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아빠의 모습은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윤정이와 필규는
아빠와 함께 페인트도 칠하고 옆에서 잔심부름도 하면서 아빠를 돕는다.
필규는 아빠의 공구들에도 관심이 많아서 슬쩍 슬쩍 사용방법도 물어보면서 아빠와 함께 작동을
해 보기도 한다.
한가지를 완성할때마다 아빠에 대한 경탄도 늘어난다. 잠 좀 그만자고 놀아 달라고 조르던
예전 아빠에게서 느껴지던 감정과는 전혀 다른 존경과 감탄이 생겨나는 것이다.

 

 남편 작품 1.jpg

 

그리하여 우리집 거실엔 남편이 만든 장식장이 놓였다.

 

  남편 작품 2.jpg

 

옷장이 없어 어수선하던 필규 방에도 남편이 멋진 6칸짜리 수납장을 만들어 주었다.

 

주말에 친정 식구들이 다 모이는 가족 행사가 있어 스물 한명의 식구들이 모두 모였는데
처형과 처제들이 남편이 만든 장식장과 수납장을 보며 멋지고 근사하다고 탄성을 질렀다.
한껏 고무된 남편은 우리집 CD장을 몹시 탐내던 큰 언니에게 똑같은 것을 만들어 선물하겠다고
선언했다. 언니는 기뻐하며 최근에 14만원주고 새로 산 강화유리 장식장을 줄테니 대신 나무로
우리집 같은 장식장을 만들어 달라고 사정하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남편의 주가가 마구 마구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어지간한 장비들도 다 구비를 했고 작업에 자신감도 생긴 남편은 여세를 몰아 딸들 방에도 멋진
책상을 만들어 준다고 하고 처제들의 열화같은 성원에도 조금씩 부응을 할 모양이다.
농삿군에 나무꾼, 이젠 목수로 변신하고 있는 중년의 남편..
나도 듬뚝 아껴주고 격려해줘야지.

 

중년 남자들은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한 풀 꺾이면서 청소년으로 접어든 자식들에게서도
소외되고, 아내와의 관계도 시들해진다는데 그래서 바람이니 술집이니 하는 유흥으로 많이
빠지기도 한다는데 이런 모든 것들을 이기는데는 건강한 취미만한게 없다.
등산도 좋고 낚시도 좋지만 가족 모두의 환영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생활에 보템이 되는
취미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그래서 나는 목수로 변신한 남편을 열렬하게 응원할 생각이다.
결혼 10년, 슬슬 권태기가 올 수 도 있는 시기지만 이렇게 때 맞추어 매력적으로 변신을 해 주시니
나야 정말 고마울 수 밖에..
(게다가 자식과 마누라에게 존경받고 격려받는 남편들은 밤에도 매력적이더라고.... 크하하..)

 

이 남자랑 딱 10년 살았다.
나이 들수록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남자..

 

앞으로가 무지 기대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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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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