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닭.jpg

 

어려서 시골에서 살때 분명 닭도 길렀을텐데 그 때는 그런것들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는 일이어서
그랬는지 닭들이 대수롭게 여겨진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도시로 이사와서 자라는 동안 내게 '닭'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음식점에서 만나는
삼계탕이나 치킨이나, 마트에서 사는 '닭고기'를 의미했다. 닭은 어디까지나 식재료여서 닭고기를
손질하고 요리하는 과정 어디에도 내 감정을 이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하고 나서 남편이 병아리들을 들여 오고 뒷 마당에 커다란 닭장도
지어 놓고 본격적으로 닭들을 기르기 시작한 후 부터 '닭'은 더 이상 내가 알고있던 그 식재료
들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이후로 마치 닭을 처음 만나는 것 처럼 새로왔다. 하긴 자라면서 살아있는 닭을
이렇게 가까이서 이렇게 매일 볼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닭이란 늘 마트에서 잘 손질된 식재료로
만나는게 고작이었는데 눈 앞에서 살아있는 닭을 보는 일은 하늘과 땅 만큼 달랐다.
난 요즘 뒷 마당의 닭들을 보면서 '닭'이란 얼마나 근사한 생명체인지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나 암탉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한 수탉들의 위용은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올만큼 멋지다.
사진에 나온 이 닭이 바로 수탉중의 우두머리인데 유독 이 닭만 털 색이 검고 벼슬도 유난히
크다. 우두머리답게 힘도 좋고 몸집도 커서 고개를 빳빳이 들면 내 허벅지까지 닿을 듯 하다.

 

우리집은 다섯 마리의 수탉과 네 마리의 암탉이 있다. 닭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구성 비율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사실 암탉 네 마리면 수탉 한 마리만 있으면 된다.
보통 수탉 한 마리가 암탉 열 다섯 마리까지 감당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우리집은 완전히
반대인데다 수탉이 더 많으니 네 마리의 암탉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남편은 지금 기르는 닭들을 토종닭만 전문적으로 분양하는 지방의 한 양계장에서 45일된 병아리
상태로 사 왔었는데, 병아리 상태에서는 몇 마리가 암탉인지 파는 사람도 정확히 알 수 없다며
더 길러봐야 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키워보니 암탉과 수탉이 정확히 반 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닭장수가 거짓말을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다섯 마리나 되는 수탉이
처음부터 골칫거리였다. 게다가 작년 여름에 암탉 한 마리가 동네에 돌아다니는 개에게 물려
죽는 바람에 수탉이 더 많아져서 문제는 더 커졌다.

다섯 마리의 수탉들이 네 마리의 암탉들에게 번갈아 덤벼드니 알을 낳아도 진득하게 품고 있을
틈이 없는 것이다. 몸집이 훨씬 작은 암탉들은 수탉들이 날갯죽지를 발로 움켜쥐고 교미를 해 대는
통에 날개주변의 털마저 죄다 빠져 버린 참혹한 몰골이 되었다. 게다가 봄이 되면서부터
늘 2인자 였던 수탉 한 마리가 우두머리 자리를 넘보느라 허구헌날 뒷 마당에서는 닭싸움이
벌어진다. 퍼드득 거리며 날아올라 앞 발로 상대를 찍느라 깃털이 날릴 정도다.
새벽 4시만 되면 울려퍼지는 수탉들의 목청 좋은 '꼬끼오- '소리도 엄청나다.
한 마리만 울어도 온 동네에 퍼지는데 네 마리의 합창은 정말 온 동네 사람들 잠을 깨우고도 남을
만큼 우렁차기 때문이다.

 

친정이나 시댁 어르신들 모두 전화 할때마다 수탉들좀 없애라고 야단이시다. 알도 못 낳는 것들을
비싼 사료만 축내게 한다는 것이다. 더 늙어서 고기가 질겨지기 전에 잡아 먹으라고도 하신다.
몇 번 수탉을 잡을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남편이나 나나 경험도 없는데다 심기도 허약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골에서 어른들이 왔을때 잡아 볼까 했지만 막상 사람을 꼿꼿하게 쳐다보는
수탉 앞에만 가면 모두 '.... 에이... 안 되겠다' 하며 돌아서곤 했다.
도대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데다가 보통 닭보다 훨씬 더 큰 몸집은 처음 보는 사람을 단번에
압도하기 때문이다. 위급할때는 사람 키를 훌쩍 뛰어 넘는 날개짓도 하니 쉽게 접근하기도 어렵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물을 던져 꼼짝 못하게 해서 자루에 넣은 다음 재래시장
닭집에 가면 2천원만 주면 죽여서 털까지 뽑아 준다고도 한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우리 큰 아들이다.

살아있는 닭을 보지 못하고 자라다가 눈 앞에서 매일 닭들을 대하는 아들은 우리집 닭을
잡아 먹거나 판다는 것은 마치 '식구'를 먹거나 파는 일과 똑같이 여기고 있다. 절대로 할 수
없는, 해서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고 닭고기를 먹는 일을 줄이거나 새롭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집 닭들에 대해서는 식재료가 아닌 가족같은 감정으로 대한다. 수탉이 너무 많아서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있다고 수없이 설명해도
'수탉 한 마리라도 건드리면 난 가출할꺼예요' 라고 선언해 버린다.
어린 아이 마음에 커다란 생채기를 내면서까지 수탉을 처분할 수 야 없다.
그리햐아 오늘도 목숨에 지장이 없음을 강력히 확신하고 있는 우리 수탉들은 그야말로 기세등등하게
뒷 마당을 누비고 있다.
내가 다가가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내 눈을 바라보는 이 무시무시하게 당당한 녀석들..
가끔은 얄미워서 한 대 때려주고 싶기도 하다.

고기용 닭들은 몇 달 못 살고 죽임을 당하지만 자연상태에서 닭들은 25년도 산다는 기사를
한겨레에서 읽은 적이 있다. 어쩌면 이 닭들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오래 오래 같이 살아 갈지도
모르겠다.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은 직접 길러봐야만 알 수 있다. 돈 주고 사올 때는 물건이지만
일단 집에 들어오고 나면 가족이 되 버린다. 감정이 연결되어 버리는 것이다. 순수함을 오래전에
잃어버린 어른들에게야 언제든지 잡아 먹거나 팔아 버릴 수 있는 존재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한 번 들어온 이상 늘 함께 살아가는 식구다. 가족이다. 매일 서로 만나고 챙겨주고 돌봐주는
생명인 것이다.

그냥 두자니 암탉들이 너무 시달리고, 없애자니 큰 아들 마음의 상처가 두려워 우리 부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수탉 네 마리만 따로 격리시킬까... 하다가도 그 네마리의
운명이 너무 가혹해서 또 망설인다.
가축들에 대해서 너무 감정이집하는 것도 우습지만 아이들이 있으면 어쩔 수 없다.

 

할 수 없이 오늘도 툴툴거리며 닭장에 물 주러 간다.
가끔 오시는 우리 친정 엄마는 지금도 수탉들이 덤벼드는데 나는 그나마 안 주인이라고 좀 봐주는지
슬며시 비켜 주시는게 고마울 따름이다. (최근까지도 나는 이 수탉들이 무서워 닭장에 들어갈때는
꼭 베드민턴 채를 챙겨 갔다. 호신용으로 ㅋㅋ)

닭들아,닭들아.. 너희들을 어쩌면 좋니..
우리 그냥 이렇게 오래 오래 같이 살아야 하는거니?
생명이란 이다지도 무겁고, 막중한 것이로구나...
애 셋도 벅찬데 개 두마리에 닭 아홉마리라... 어흑...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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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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