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엘이 3주째 주말마다 아빠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다.
처음엔 동네 한 바퀴, 그 다음엔 월드컵 공원에서 한강변으로,
이번엔 행주산성.
“아빠와 함께 있으면 턱없이 행복해.”
다엘의 말이다.

 

다엘과아빠.jpg » 아빠와 함께 타는 자전거.

독신자 입양으로 다엘이 내게 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빠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유치원 시절 ‘아빠와의 트레킹’ 행사가 계기가 되어
전남편은 다엘의 아빠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짧았고 다엘에게는 큰 상처로 남았다.

 

힘든 시기에 서로를 포기하고 이혼을 했던 기억은
다시 가족이 되려 했던 길에 장애가 됐고
당시 어렸던 다엘에게는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었다.

 

가끔 안부를 전하던 전남편이 최근에 말하길
‘다엘이 엄마의 눈을 통해서만 아빠를 보았다’는 얘기에 대해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다.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나이가 된 다엘에게 기회를 줘야 할 것 같았다.


다엘이 아빠에게 전화를 할 수 있도록 했고,
단 한 번의 통화로 그간의 아픔의 시간은
다엘의 가슴에서 눈 녹듯이 사라졌다.

 

가장 목 말랐던 일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이뤄졌으니
다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은
나와 상관없이 다엘이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부로서 함께 하지 못한다면
부모로서 함께 하는 삶도 없다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다엘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관계가
나를 다른 세상으로 이끈다.
예전에는 부부라면 늘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대부분의 생각을 함께 나눠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상이 클수록 현실은 거꾸로였다.
일심동체라는 말이 주는 허상에 사로잡혀
나와 그가 서로 다른 존재라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다.

 

이런 생각들을 내려놓은 지금,
남편이 아닌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가끔씩 다엘은 내 기색을 살피면서
엄마 아빠의 사이가 안 좋아지면
다시 아빠를 만나지 못할까 봐 걱정하곤 한다.

 

전남편과 다짐을 나눴다.
우리의 관계와 상관없이 다엘의 상처를 최소화 하기 위해
함께 최선을 다하자고.

 

사람들이 처음 만나 재혼을 하는 경우보다 더 힘든 것이
이혼한 이들의 재결합이라고 한다.
그만큼 같은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서구에선 새로운 형태의 가족으로 LAT(Living Apart Together)가 부각되었다.
주로 중장년층에서 나타나는 관계로
주거는 따로 하면서 연인이나 부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나이 들어가며 그런 관계가 이어진다면 좋지 않을까?

 

다엘은 아빠와 자전거를 타면서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자전거를 잘 타는 건 남보다 빠르게 달리는 게 아니야.
타고 가다가 내려서 끌고 갈 때도 있다는 걸 잘 아는 게 중요해.”
아빠가 들려준 이 말을 곱씹는 것 같았다.

 

다엘은 내 도움 없이 홀로 설 수 있는 문턱에 와있다.
아빠와 어디든 갈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고
언젠가 아빠의 손길도 떠나 자신만의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음에는 아빠와 함께 자전거로 두물머리에 가기로 약속했단다.
아름다운 풍경 속을 자전거로 여행하는 아빠와 아들,
두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 가고 있다.

 

다엘을 위한 언약식을 생각한다.
경건한 장소에서 다엘에게 뜻 깊은 시간이 되도록
정성껏 준비할 것이다.

언약식의 순서와 내용의 틀을 잡아봤다.


<다엘을 위한 언약식>


순서:
1. 아빠가 다엘에게 주는 축복과 약속의 말
2. 엄마가 다엘에게 주는 축복과 약속의 말
3. 약속의 상징품 수여
4. 아빠, 엄마의 약속의 글 낭독
5. 다엘의 약속의 말 또는 글
6. 박수와 포옹

 

아빠, 엄마가 다엘에게 주는 약속의 글


아빠 _________________과  엄마 __________________는  아들 __________________ 군에게 약속합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아들의 행복을 위해 함께 최선을 다하는 부모가 되겠습니다.

항상 다엘의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하며,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아들에게 꼭 알리겠습니다.

아빠, 엄마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온 다엘이 잘 클 수 있도록 언제나 사랑하고 응원하겠습니다.

2017년  월   일
아빠 서명:
엄마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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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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