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룸이는 그림 그리기에 빠져 있다. 자기 말로는 '크로키'를 하는 거란다.
나도 그림 그리는 일에는 늘 관심이 있어 수채화니 스케치하는 법에 대한 책을
몇 권 샀었는데 이룸이는 그 책 중에 한 두 권을 본 다음부터 그림 도구들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남편이 데리고 나가 물감이며 붓이며 스케치 노트등을 사 주었는데 그 후부터
마음 내키면 한 번에 몇장이고 그림을 그려댄다.
덕분에 나는 이룸이의 단골 모델이 되었다. 함께 있는 시간이 제일 많은 까닭이다.
주말에 늦잠에서 일어나 온통 뻗친 머리칼이 부스스한 모양으로 주방 렌지 앞에서
음식을 만드는 내 모습을 이룸이가 그려준 그림이다.
기침을 하게 된 후로 절대 목에서 풀지 않고 있는 머플러며, 부엌에서 늘 두르고 있는
체크무늬 앞치마며, 큰 언니가 선물해준 북실북실 따스한 털 레깅스며 자세히보면
아주 세심하게 묘사해 놓았다. 마음에 쏙 들었다.
무엇보다 꾸미지 않은 아이다움이 담뿍 담겨 있는 그림이라서 좋다.
책상에 앉아 책 읽는 내 모습이다.
윤정이는 이게 무슨 엄마냐고 깔깔거리지만 나는 이룸이가 그려주는 내 모습이
미치도록 좋다.
그 순간 눈에 비치는 엄마 모습 그대로 그려내는 그림들이다.
벽난로 앞에서 낮잠자는 아빠 모습이다.
안경속에 감고 있는 눈, 넓적한 코, 손등에 불거진 핏줄들,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는 모습까지 순식간에 그려냈다.
텔레비젼을 보며 새우과자를 먹고 있는 내 모습에선 과자를 쥔 손이 제일 크게
그려져 있다. 이룸이 눈에 제일 가까이 보이는 것이 제일 크게 묘사되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아이답다.
머리로 원근법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제게 느껴지고 보여지는 대로 그린다.
겨울잠바를 입은 아빠 모습도 딱 남편이다. 그림마다 다른거 같지만 모아놓고 보면
남편다움이 어느 그림에나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이가 아이답게 그림을 그리는 시기는 의외로 빨리 지나간다.
어른이 이런 저런 훈수를 두기 시작하면 더 빨리 사라진다. 제 맘껏 신나고 행복하게
그려온 그림을 놓고 머리가 너무 크다느니, 손이 이렇게 길면 안된다느니 참견하면서
어른이 한 번 그려보이는건 최악이다. 그 다음부터 아이는 제 느낌보다
어른이 일러준 것들을 기준 삼아 그리기 시작한다.
제 마음에 드는가가 기준이 아니라 어른 마음에 드는 그림인가를 신경쓰기 시작한다.
제가 그리는 것에 자신감과 자부심이 사라지고나면 그림 그리는 일은 더이상 즐겁지 않다.
수많은 어린 예술가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반짝거리는 예술성을 잃어간다.
이룸이가 그린 그림은 절대 판단하지 않는다. 비평하지도 않는다. 다만 느낌만 솔직하게
얘기해주면서 진심으로 열광해준다.
처음엔 이룸이도 그림을 어떻게 그리면 되요 라고 물었다.
네 눈에 보이는대로, 네 마음에 가장 크게 와 닿는 것들을 중심으로 그리면 된다고만 했다.
아이의 그림을 보면 어떤 점들이 마음에 가장 크게 닿았는지가 느껴진다.
그래서 매번 이룸이의 그림을 볼때마다 놀라고 행복하다.
어떤 그림에나 이룸이가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림이 살아있다.
재밌어서 빠져들고, 제 작품을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기며 자랑스럽게 내미는 이룸이의 표정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꽉 차 있다.
그 눈부신 빛은 내 녹슬어가는 감성까지도 다시 빛나게 하는 힘이 있다.
살아있는 그림이 가진 힘이다.
이런 빛이 언제까지 반짝일까.. 어쩜 한 순간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룸이는 지금 그런 나이에 있다.
언니처럼 가슴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홉살 딸은 어느 순간 훌쩍 소녀로 자라버렸다.
보자기를 오려서 망또를 만들어 입고 집안을 뛰다가도 거울 앞에서 머리 모양을 만지느라
떠날줄을 모른다.
그래서 이룸이의 이 생생한 그림이 더 소중하다.
아직은 이런 일이 시시하지 않고, 아직은 이 일이 두근거리게 재밌다는 게 고맙기도 하고,
한 순간 마법처럼 다른 세상으로 가버릴 수도 있음을 알기에 조마조마하기도 한 복잡한 기분으로
이룸이가 내미는 작품들을 나는 욕심껏 그러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