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병치레가 거의 없었던 우리 애가 설을 쇤 후 구토와 설사 때문에 크게 혼이 났다.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건 고기였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거의 풀 뜯어먹는 수준인 우리 밥상의 특징상 평소 고기를 많이 먹지 않았던 우리 애가 명절이라고 고기 맛을 너무 많이 보았던 게 잘못된 것이다. 특히 지난 밤엔 유난히 고기 만두를 많이 먹었던 게 걸렸다.

태어나고 처음으로 토했다. 젖을 먹을 때도 토한 적이 없던 아이였다. 자다가 토하는 걸 보니, 웬만한 일에 끄떡 안 하는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 그런데, 한 번 토하고 나더니 금새 편하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상황을 보고, 병원에 데리고 가기로 했다. 여느 아침처럼 컨디션이 괜찮아 보였다. 설사를 계속 하면서도 평소처럼 잘 놀았다. 병원에 가기 전에 임상사례를 들어보기 위해 애 둘셋씩 키운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공통적으로 장염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병원으로 직행하라는 처방도 나왔다. 한 친구는 요즘 장염이 유행이라면서 얼른 병원에 가서 장염 백신을 맞히라고 했다.

"그런 것도 있어? 하긴, 그런 게 안 나왔을 리 없지!"

예방접종까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에는 가려고 했다. 그런데 애가 멀쩡히 잘 놀았다. 구토와 설사는 계속 됐지만, 열이 나거나 보채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탈이 난 상태여서  때문에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탈이 났을 땐 오히려 속을 비우는 것이 좋다는 민간요법에 따라 탈진하지 않게 생수와 죽염만 조금씩 먹였다. 영양적인 보충보다는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심리적 보충을 충분히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루 만에 구토는 멈췄고, 설사의 양도 점점 줄어들었다. 밤에 잠도 잘 잤다.

둘째 날에도 설사는 계속 되었다. 변을 보니 만두 속이 계속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뱃속에서 이물질로 판단된 만두가 다 배출되어야 끝이 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배출만 하니 하루 만에 동급최강 통통이였던 애가 핼쓱해졌다. 잘 놀다가도 햇빛이 드는 창가에 엎드려 스스르 잠이 들기도 했다. 힘이 없어서 그런지 운동량을 줄이고, 잠을 많이 자는 것 같았다. 병든 병아리처럼 웅크린 아이를 보니, 안쓰러운 마음에 병원에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를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아이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루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드라마틱하게 나아지기 시작한 건 셋째날 점심 때부터였다. 겨울이라 잠시 쉬었던 일광욕과 풍욕을 시작했다. 풍욕은 옷을 완전히 벗고 온몸으로 바람을 맞이하여 면역성을 길러주는 자연요법이다. 옷을 벗고 담요를 덮었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담요 속에 쏙 들어갔다 나오는 걸 놀이처럼 좋아했다. 풍욕을 하고 나니 몸이 가뿐해졌는지, 갑자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가? 얼굴에도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자연단식 상태로 모든 노폐물을 비워내고, 햇빛과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니 완전히 깨끗해진 몸에 자연 에너지로만 가득한 상태가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노래와 춤을 절로 나올 수 밖에. 운동을 하고나니 갑자기 입맛이 도는지 밥을 달라고 했다. 무른 밥과 연한 된장국을 조금씩 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툴툴 털고 완전히 돌아온 그녀가 되었다.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 번째는 과유불급, 역시 애나 어른이나 과식은 좋지 않다. 잘 먹는다고 계속 먹였던 것이 잘못이었다. 반성한다. 두 번째는 자연치유력의 힘이다. 아플 땐 아플 만한 이유가 있으니, 아플 땐 충분히 앓게 놔 둘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열, 구토, 설사, 기침은 아플 만한 이유를 없애기 위해 몸이 싸우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구토와 설사는 몸에 불필요한 이물질을 내보내려는 행위이고, 열은 침입한 세균을 없애려고 세균과 싸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치유력의 대표적인 형태이고, 기침은 가래를 몸 밖으로 내보내려는 자연치유력이다. 이렇게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약이니 주사 같은 것들은 자연치유력을 오히려 방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증상이 너무 심하거나 아이가 힘들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무조건 병원에 갈 게 아니라 자연치유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좋다. 내가 눈 여겨 보는 것은 열, 콧물, 기침, 설사 같은 증상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잘 노느냐, 그러니까 아기가 얼마나 이겨낼 힘과 의지가 있느냐이다. 지금까지 열이 좀 있어도, 콧물을 흘려도, 설사를 해도 보채지 않고 잘 놀고 잘 먹으면 그냥 앓게 두는 쪽을 택했다. 잘 논다는 것은 스스로 싸우고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컨디션이 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병원에 갔던 적이 있었다. 감기 기운인 거 같은데, 한 닷새 동안 보채는 것 같아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귀 한 번 들여다보더니 중이염 증상이 있다며, 당장 항생제 처방을 해주었다. 항상제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 약을 지으러 한의원에 데려가보았다. 선생님이 우리 애 얼굴만 보고는 약을 안 먹어도 되겠다고 했다. 진료 중에 우리 아이가 생글거리며 잘 놀고, 처음 보는 선생님한테도 다가가서 애교를 부리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잘 노는데, 무슨 약이냐이렇게 잘 웃는 아이들은 병도 잘 이겨낸다며 그냥 가라는 거다. 그렇게 우리의 첫 병원 방문은 싱겁게(!) 끊났다.

물론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전업주부인 경우에는 아이의 상태를 계속 체크하고 민간요법을 해볼 수 있지만, 일 하는 엄마들은 하루 종일 아이의 상태를 관찰할 수 없고, 직접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기 때문에 자연치유력에만 의존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신종플루니 하는 병들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조금만 열이 나고 감기 증상이 있으면 겁부터 난다. 그래서 병원에 갈수록 병을 달고 사는 안타까운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한다.

나 역시, 처음부터 용감했던 건 아니다. 충분한 관찰과 경험을 통해서 조금씩 용기가 생긴 거 같다. 웬만해서 약을 먹지 않는 무식한 우리집 가풍의 영향도 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축복이라고 생각되며, 앞으로도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용기가 내게 허락되길 바란다.

감기 이기는 중.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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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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