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하러 갈 때마다, 늘 미안하다. 머리 숱이 너무 많아서, 많아도 너무 많아서 자르던 볶던 시간과 힘이 배로 들기 때문이다. 한 때 머리가 길었을 때는 비용을 두 배로 치르면서 파마를 하곤 했다. 머리 숱에 관한 한 남편도 남부럽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무슨 조화 속인지, 내 뱃속에서 나온 딸의 머리 숱은 정말로 빈약하다. 태어날 때도 머리털 한 올 걸치지 않고, 진짜 맨몸으로 세상에 나왔다. 돌이 될 때까지 거의 빡빡이 수준이었다. 머리털이 없으니, 머리 감을 일 없어서 편하긴 했다. 반면, 대외적으로는 성별인식에 많은 혼란을 야기하곤 했다.

돌이 지나자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잔디처럼 위로 솟아나는 것처럼 수직상승을 했고, 최근에서야 중력방향으로 내려오고 있다. 숱에 관한 한 여전히 빈약하고, 앞쪽은 비어있는 처지지만, 길이는 묶을 수 있을 만큼 제법 길어졌다. 문제는 골고루 긴 게 아니라 들쑥날쑥 하다는 거다. 이 둘쑥날쑥함의 묘미는 기상 직후에만 관찰된다. 아주 가관이다. 보는 사람마다 빵 터진다. 그 머리를 하고 뛰어다니면 추노 또는 좀비가 따로 없다. 머리핀이나 머리끈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문화인으로 거듭난다. 이렇게 귀하게 자란 머리카락인지라 아까워서 잘라주지도 못한다. 현재로서는 우리 딸의 미모(?)는 머리 핀과 고무줄에 신세를 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 딸이 묶는 걸 싫어한다는 거다. 여기서 우리의 비극은 시작된다. 묶으려는 자와 묶지 않겠다는 자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라고나 할까? 좋다. 백번양보하여 집에서는 노터치하기로 한다. 나만 심란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외출할 때는 양보가 어렵다. 안 그래도 우리 애 꼬락서니를 보면 사람들은 내가 아이를 너무 막 키우는 게 아니냐며 진담 가득 섞인 농담을 날리는데, 이 꼴로 나갔다가는 게으른 엄마를 넘어서 못된 엄마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없지 않아 그런 면이 있지만,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다. 그래서 좀 묶겠다는데, 보기 좋게 딱지를 놓는다. “싫어라는 말은 어찌나 그렇게 분명하게 잘 하는지좋은 말로 회유도 해보고, 먹는 걸로 꼬셔도 보다가 결국 급해지면 으름장을 놓고 폭력(?)을 행사한다. 가끔은 애 울리기 싫어서 그냥 포기도 하지만, 보통은 애를 울리면서까지 머리를 묶고 만다. 애를 울리면서까지 꼭 머리를 묶어야 하나?

지난 일요일에도 애를 울렸다. 교회에 늦게 생겼는데, 우리 애 머리를 보니 산발도 이런 산발이 없다. 처음엔 좋은 말로 시작했다. “싫어! 아니야! 그만!” 부정어 3종세트로 방어한다. 내가 다급해지자 좀 가만히 있어봐!’ 결국 등때기를 한 때 때리고 아이를 다리 사이에 가두고 머리를 묶기 시작했다. 가기 싫은 시집이라도 가듯 급단정해진 아이의 얼굴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날따라 하필 설교 말씀 중에 자식에 대한 태도 이야기가 나왔다. 자식이 아무리 어리더라도 미성숙한 아이로 생각하지 말고, 인격과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참 지당한 말씀에 뜨끔했다. 아침에 머리를 묶겠다고 아이를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한 일부터 반성했지만, 반성은 비단 머리 묶는 문제에만 그칠 일이 아니다. 요즘 들어 애가 싫다는 걸 강요하고, 내 마음에 안 들거나 협조를 안 하면, 협박과 폭력(!)도 불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내 고집과 딸의 고집이 아슬아슬한 긴장과 대치를 만들어내고 있고, 가끔 둘 중에 하나는 폭발을 하기도 한다. 앞으로 이렇게 충돌하고 폭발할 일이 얼마나 많을까? 아이에 대한 나의 철학과 태도를 점검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머리를 묶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아이도 싫고, 나도 힘들고, 도대체 왜 묶으려고 하는 걸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건가? 창피하지만, 다른 사람들 이목 때문 아닌가?

이제 올 봄이면 우리 가족에 크나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우리 아이의 주요 무대가 집에서 어린이집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제 또래들과 어울려 놀면서 우리 아이는 또래의식이 생기게 될 것이고, 나도 다른 부모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시선, 반응 등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될 것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신경 쓰이고, 흔들리고, 상처받고 그럴 일이 오죽 많겠나? 우리 아이도 머리가 커가고 보는 게 많아지니, 아이랑 기싸움, 머리싸움 할 일도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본격적인 대전을 앞둔 가운데, 이제 지엽말단에 불과한 머리 싸움은 끝낼 작정이다. 대신 생각해낸 것이 그냥 부시시한 산발, 야생녀 컨셉이다. 그걸 컨셉삼아 한 동안 버티다 보면, 머지않아 자기가 꾸미고 싶어서 안달 날 때가 오지 않을까? 그럴 거다. , 양보할 수 없는 예외는 있다. 결혼식처럼 우리의 자유로움이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될 수 있을 때,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는 명절과 같이 약간의 팬 서비스가 필요할 때 미안하지만, 울어도 묶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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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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