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무조건 외식이 좋았다. 워낙 외식을 하지 않는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가? 외식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좀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좀 달라졌다. '가능한 외식주의자'에서 '가능한 집밥주의자'로 변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 밖에 나가서 아이랑 밥을 먹으려면, 꼭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갑자기 빽빽 울어대기도 하고, 밥상머리에서 똥을 싸기도 하고, 밥 먹다 잠이 들기도 한다. 그릇을 뒤엎는 건 예삿일이고, 심지어 우리 애는 얼마 전에 짬뽕그릇에 빠진 적도 있었다. 자는 애를 누일 때가 마땅치 않아 어깨에 매고 밥을 먹는, ‘세상에 이런 일이달인 쇼에나 나올 법한 일도 여러 번이고, 애 뒤치다꺼리하면서 밥을 먹으면 도대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을 못 차릴 때가 많아지면서, 점점 외식이 줄어들었다.

그런데다 입맛이 변했다. 나는 경상도 출신인 친정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 맵고 짜게 먹는 편이었다. 요리를 했다 하면,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듬뿍 사용했고, 매운 음식을 일부러 찾아 다니며 먹을 정도로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다. 나에게 맛있는 음식이란 곧 매운 음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밖에서 음식을 먹고 나면 늘 불평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 누구에게 얻어먹는 공짜 밥은 무조건 열외다.^^). 원산지 불문에 맵거나 짜거나 달짝지근하거나, 재료 본연의 맛은 어디로 간 거야? 물가 상승폭만큼 밥값이 상승되지 못하면서, 음식의 질이 점점 하향평준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떨 때는 산해진미, 진수성찬이 앞에 펼쳐져 있어도, 집밥 생각, 본전 생각이 나곤 했다.

이렇게 집밥주의자가 되는데 큰 공을 세운 건 우리 아기 똥꼬 센서다. 젖먹이 엄마는 짜고 매운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매운 음식을 포기할 만큼 모성애가 발달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렇게 김치를 계속 먹던 어느 날, 똥꼬 센서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우리 아기 똥꼬가 빨개진 거다. 다행히 큰 고생은 없었지만. 아기의 빨간 똥꼬를 보자 매운 음식들을 정리해야 했다. 참고로 우리나라 최초의 소아과 전문서라고 하는 조선후기 <급유방>에는 젖먹이 엄마가 짜고 신 음식을 주의하고, 임신 중에는 태열이 생기지 않도록 매운 음식을 먹지 말라고 했고, <동의보감>에는 기름지고 맛이 진한 음식들이 유선염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라고 나와 있다.

젖 끊을 때까지 매운 음식을 좀 참자! 처음엔 한시적이고 부분적인 금욕생활(?)이었다. 그런데 우리 아기의 때 이른 밥상 입문(침입)으로 무기한 전면적 금욕으로 들어갔다. 생후 8개월쯤이었나? 아기가 서기 시작하자 우리 밥상에 다가와서, 밥그릇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얼마 안 가 아예 밥상 한 귀퉁이에 한 자리 꿰어 차고 겁도 없이 우리 밥그릇에 난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맨밥을 먹기 시작했고, 된장국도 맛보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밥은 점점 무른 흰밥이 되어 갔고, 된장국은 점점 맑아졌고, 밥상에서 고기는 점점 보기 힘들어졌다. 반찬에서 고춧가루, 소금, 설탕이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우리집 밥상은 거의 절밥이 되었다. (물론 파계한 일도 많았지만…^^)

이유식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원재료에 충실하게, 간은 담백하게 요리하고, 똥을 보면서 소화에는 무리가 없는지, 알레르기가 없는지 등을 살피면서 조절하는 정도가 다다. 또래 아기 엄마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면, 이유식 만들어 먹이는 일이 상당히 고된 일 혹은 돈이 좀 드는 일이라고 한다. 이유식 재료도 따로 사야 하고, 이유식을 만들 때 재료를 다지는 일이 많아서 손목이 나가는 경우도 있다는 거다.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 이유식 조리기를 사거나 반조리, 혹은 이유식으로 나온 완제품을 사서 먹이는 일도 많다고 한다. 또 이유식 따로 만들고, 어른 밥상도 따로 차리지 않으니 노동, 비용, 시간 모두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딸, 참 효녀다.

절약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뜻밖에 얻는 것도 많다. 변질된 입맛이 순수해진다. 그러면서 밖에 음식들을 가리게 된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한 상에 앉아서 같은 음식을 먹다 보면 아이들이 확실히 음식에 관심을 보이고, 골고루 먹게 되고, 먹는 즐거움을 배우는 것 같다. 가끔 우리 아이가 생채소나 나물 같은 걸 먹는 걸 보고 깜짝 놀라는 분들이 많다. 이유식을 생략하면서 딱 한가지 단점은 유동식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무른 음식, 특히 죽은 잘 먹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나 대세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런 과정을 거쳐오면서, ‘이유식이라는 단계가 꼭 필요한 건가? 육아책에서 단계적으로 제시하는 이유식이 꼭 필요한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안마다 음식문화가 다르고, 아이들의 발달상태나 소화상태에 따라 다르니 거기에 따라 이유식도 자연스럽게 하면 되는 게 아닐까? 어찌 보면 이유식이라는 또 하나의 시장 창출을 위해서 많은 부분들이 조장되고 만들어진 게 아닐까? 어쨌든,아이를 키우는 일에 must는 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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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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