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룸 6.jpg 

결혼 11년째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힘들다는 소리를 달고 살았다.

세 끼 밥 해 먹이는 일도 힘들고매일 매일 난장판처럼 어질러지는 집안 치우는 일도 힘들고,

각각 다른 책을 들고 오며 먼저 읽어달라고 졸라대는 것도 힘들고,

뭐만 아쉬우면 엄마부터 찾는 것도 힘들고정말이지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러나 이렇게 힘들면서도 여전히 버틸 수 있는 것은

내가 아이들에게 받는 특별한 선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들려주는 한 마디 말머리로 생각한 말이 아니라어린 마음에서 나오는 한 마디 말들이

 나를 번쩍 일깨우고 단번에 위로해 주는 경험이란 애 키우는 엄마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을 때 깜짝 놀랄만한 직관과 공감으로 엄마를 일으켜주던

 아이의 그 이쁘고 빛나는 표현들은 엄마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보석이 된다.

 

요즘 남편과 내내 티격태격 중이었다.

그날도 퇴근한 남편과 언짢은 말이 몇 마디 오간 후 마음이 몹시 상해 혼자 앉아 있었다.

막내가 방글방글 웃으며 다가오기에 별 생각 없이 그냥 물었다.

이룸아.. 마음이 슬플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이파리를 보세요.’

이파리?’

나무에 달려있는 이파리요

이파리.. 이파리를 보면 안 슬퍼져?’

마음이 조아져요

아하.. 나직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속상하던 마음이 순간 푸르게 물이 들어 내가 한 그루 서늘한 나무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작고 보드라운 막내를 꼭 끌어안고 어두운 창밖으로 빗물에 파들거리는 나뭇잎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정말 마음이 좋아졌다이렇게 쉽게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나는 여태 모르고 있었구나.

 이룸 7.jpg

이제는 열 한 살이라며 스스로 사춘기 초입이네 하며 예민하게 구는 큰 아이도

막내만할 때 나를 감동시키는 무수한 말들을 들려주던 사랑스런 아이였음을 새삼 생각했다.

큰 아이보다 말이 빨랐던 둘째는 서너살 무렵 엄마힘들먼 내 손을 잡아도 좋아요’ 해서 나를 또 얼마나 눈물 나게 했던가.

돌이켜보면 아이를 키워 오는 내내 이런 선물을 받고 있었다.

늘 내가 더 주는 것처럼나만 더 힘든 것처럼 착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받아왔던 것이다.

내가 지치고외롭고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마다 아이들이 내 곁에 있었다.

엄마의 감정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냥 제 존재를 내게 온통 다 기대어 오는 것으로 내 마음을 채워 주던 아이들이었다.

살아가면서 한 존재에게 이토록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와 사랑을 받는 순간이란

오로지 어린 아이들 내 품에서 키울 때 뿐 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날 내 슬픔은 새들새들한 5월의 나뭇잎들을 오래 바라보는 동안 스르르 녹아 버렸다.

이젠 언제나 어디서건 나뭇잎들만 봐도 그날 내게 들려준 막내의 사랑스런 목소리를 떠올릴 것 이고,

그 기억만으로도 이기지 못할 슬픔은 없을 것 같다.

힘들다고 불평하기 전에 아이가 내게 준 선물들을 좀 더 자주 꺼내 보고 좀 더 많이 웃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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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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