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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윗밭에 심어 두었던 김장거리들을 거두었다.

본래 이번주 주말에 김장을 하려고 했으나, 그주 수요일부터 눈 예보가 있었고

기온이 크게 떨어진다는 얘기에 서둘러 일정을 당긴 것이었다.

윗밭에 배추 70포기와 무 한고랑, 대파, 쪽파 반고랑씩 심었는데

몹시도 가물었던 올 여름 동안 배추도 무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게다가 퇴근이 늦고 출장이 잦은 남편과 늘 세 아이 학교일 봐주느라

집을 비우기 일쑤였던 나는 물도 제대로 주지 못했다.

비료도, 거름도, 약도 치지 않은 배추밭은 벌레만 성했고, 무는 새파란 잎들만

껑충 자라났다.

대파도 쪽파도 그닥 크지 않았다.

처음엔 이런 상태로 김치 꼴이 나올까... 걱정했지만 그래도 귀하게 키운 것으로

김장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 싶어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거두기로 했다.

 

이런 일은 온 가족이 도와야 하는 법이니, 주말이라고 늘어져 있던 세 아이들을

재촉해서 윗밭으로 갔다.

남편이 배추와 무를 뽑으면 딸들이 한데 모아 나르고 아들은 작은 수레로

마당까지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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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도 작았지만 무는 그야말로 우리 딸들 종아리만큼, 딱 그만큼씩만 자랐다.

그래도 가문 날들동안 이렇게나마 영근게 어딘가 싶어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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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아들이 배추를 날랐는데 너무 더뎌서 방법을 바꾼것이

윗밭에서 남편이 배추를 던지면 내가 아래쪽 화단 밑에 서서 받는 것이었다.

배추통이 크지 않으니 할만 하려니.. 생각했는데 막상 남편이 던지는 배추를

몸으로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때 운동 좀 하던 가락을 간신히 끌어올려 60여통의 배추를 받아내고 보니

온 몸이 다 후들거렸다.

 

배추와 무는 현관 입구쪽에 옮겨 놓고 무는 무청을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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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낸 무청은 옹벽으로 이어진 안방 담벼략에 내다 건 줄에 가지런히 널었다.

이곳은 남편이 지붕을 이어덮어 비가 안 들면서 바람이 잘 통해서

시래기를 말리는데는 그만이었다. 작년에 말린 시래기도 겨울 내내 맛나게 먹었다.

봄에 거둔 마늘이랑, 매실이며 앵두 효소를 저장하는 곳도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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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나랑 둘이서 배추 겉입을 떼고 다듬는 일을 했고, 흙 묻은 무를

마당 수돗가에서 깨끗이 씻어 주었다.

다 큰 딸 김장을 도와주시러 달려온 친정엄마가 나머지 뒷정리를 도와주셨다.

 

2015김장 7.jpg

 

배추를 다듬는 것도 큰 일이었지만 역시 가장 힘들고 중요한 일은

배추를 절여서 씻는 일이다.

이 일이 너무 힘들어서 어느 해는 절인배추를 주문해서 김장을 한 적도 있지만

윗밭에 배추를 심게 된 후부터는 꼼짝없이 안방 목욕탕에서 배추를 절이고 씻는다.

이 일만큼은 친정 엄마가 손수 다 하신다. 늘 너무나 죄송한 대목이다.

농사지은 배추는 크기도 작고 속이 헐렁해서 잎 사이 사이 흙이며 벌레들, 잡티며

배추밭 근처에 있는 단풍나무에서 날아든 단풍나무 씨앗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엄마는 그런 배추를 깨끗이 씻느라고 밤새 몇 번이나 일어나 찬 물에 손을 담그셨다.

 

2015김장 8.jpg

 

한 때는 시집간 딸들이며 사위들, 손주들까지 모두 모여 왁자하게 떠들어가며

잔치처럼 김장을 하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각자의 사정이 달라지고

올 김장은 엄마와 나, 둘이서만 했다.

우리집 김장만 하는 것이니 둘이서 해도 충분했다.

총 지휘는 엄마가 하시고 나는 부지런히 드나들며 잔심부름을 하고, 점심을

차리니 손발이 딱 맞았다.

한가지 일만 계속 할 수 있다면 김장도 어렵지 않다. 정말 어려운 것은

김장 하다가도 밥을 차려야 하고, 김장 하다가도 애들 돌보러 뛰어 가야 하는 일이다.

평일에 남편과 세 아이들 모두 일터와 학교로 가 있는 사이에 엄마랑 둘이 김장을 하니

점심 차려 먹는 일도 간단하고 따로 챙겨야 할 사람들이 없어 오히려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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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는 크기가 너무 작아서 오히려 손이 많이 갔다.

그래도 엄마는 얼마나 귀한 배추냐며, 이런 배추가 더 맛있는 법이라고 흐믓해 하셨다.

우리가 키운 배추, 무, 파, 마늘에 큰 언니 시부모님이 농사지어 보내주신 고춧가루에

3년 묵은 소금, 산지에서 구한 젓갈들, 그리고 밭에서 딴 늙은 호박도 푹 삶아

갈아 넣었으니 김치가 어찌 맛 없을 수 있겠는가.

 

70포기를 심었지만 워낙 배추들이 작아서 김치통으로 꼭 네 통 나왔다.

그래도 두고 두고 맛있게 먹을 것이다.

 

찾아오는 이들이 많은 우리집에서 제일 자신있게 대접하는 음식이 바로 김치다.

얼마전까지는 남편이 심고 내가 담근 총각김치가 아주 인기였다.

머지않아 김장 김치가 사랑받을 것이다.

이날 저녁, 아이들과 남편은 김장속을 얹은 보쌈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남편도 아이들도 김치가 아주 맛있을 것 같다며 좋아했다.

 

그득하게  찬 김치냉장고를 바라보고 있자니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끄떡없을 것 같은

든든한 마음이 차오른다.

벽난로에 땔 참나무 장작도 주문해서 마당 한 켠에 잘 쌓아 두었고, 농사 지은 고구마도

윗층 큰 자루에 담겨 있고 김장김치도 그득하니 이만하면 겨울을 잘 날 수 있으리라.

 

큰 애 학교 김장 100포기 담그는 것을 도운 다음날 우리밭 배추를 뽑고, 그 다음날

우리집 김장을 하느라 근 3일을 쉴새없이 움직여야 했지만 모든 일은 잘 끝났고

그리고 첫눈이 내리면서 갑자기 추운 겨울이 왔다.

큰 일을 다 해 놓은 다음 날이 추워져서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지...

 

밭은 다시 긴 휴식에 들어갔다.

 

나도 긴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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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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