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이들.jpg

 

이번주 일요일은 꼭 마흔 다섯 번째 내 생일이다.

세 아이 키우며 생일을 맞을때마다 별별 일이 다 있었다.

신혼때는 내 생일은 기억못하고 동서 생일은 기억하는 남편때문에

부부싸움도 하고, 아이들이 어릴때는 내 손으로 미역국 끓여 먹는 것도

벅차서 외식으로 해결한 적도 있다.

애들이 늘어나니 엄마 생일이 자기들 좋아하는 맛난 음식 먹는 날처럼

여겨서 널을 뛰듯 불고기며 갈비며 애들 먹일 음식 장만 하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 시절도 다 지나고 이젠 막내도 어지간히 자라서 엄마가 바쁠때는

매달리지 않게 되었고, 가끔은 제법 부엌일을 돕기도 한다.

예전 생일엔 잡채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음식을 장만해 생일상을

차리느라 동동거렸지만 몇해전부터 남편과 내 생일엔 온 가족이

좋아하는 샤브샤브를 준비해 함께 먹으며 축하를 한다.

육수를 끓여놓고 준비한 재료만 넣으면 되니 간단하고 가족 모두가

좋아하니 이만한 메뉴가 없다.

 

그러나 이번 생일엔 좀 다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에 온 가족이 다 있을때 선언을 했다.

"얘들아, 이번주 일요일이 엄마 생일인거 다 알지?

이번엔 엄마가 미션을 줄께. 마침 엄마 생일이 일요일이니까

너희들이 밥 한끼 차려서 엄마를 대접해주는거.. 어때?

메뉴를 정하고 필요한 식재료를 말하면 그건 엄마가 미리

준비해줄께"

"좋아요" 큰 아이가 선뜻 나선다.

"저도요, 저는 후식 준비할께요."

두 딸들도 반긴다.

"메뉴는.. 음.. 스테이크, 스테이크로 하자요."

"뭐? 엄마가 육류 별로 안 좋아하는데 설마 니가 좋아하는 걸로

정하는거야?"

내 핀잔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큰 아이는 바로 아빠와  상의를 한다.

"아빠, 고기, 고기로 해요. 굽기만 하면 되잖아요. 모두 좋아하구요."

"알았어.. 아빠가 불 피워서 고기 굽자.."

 

이런, 이런... 갑자기 일요일 한 낮에 마당에서 고기 굽게 생겼네.

솔직히 고기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모처럼 기꺼이 나서서

차려준다는 마음이 흐믓했다.

 

"미역국은 누가 끓여주나?"

"여보, 걱정마. 내가 미역국 끓여줄께"

"당신이? 한번도 안 해봤으면서? 설마 아주버님처럼 미역국에 파를 썰어

넣는 건 아니겠지?"

남편은 자신있다는 듯 싱글벙글이다.

 

딸들은  갑자기 생일 카드를 만들어야겠다고 부산을 떨고, 아들과 남편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의논하느라 화기애애하다.

뭐지? 이 기분 좋은 분위기는???

 

오랫동안 생일때마다 속상하고 불만스러웠다.

어떤 남편은 마누라 생일엔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전에 미역국을 끓여

놓는다는데 울 신랑은 도대체 그런 생각을 안 하네..

나이가 열 살이 넘으면 제 용돈 모아서 엄마한테 간단한 선물 하나

사 줄 수 있지 않나? 저 녀석은 늘 제 생일 선물에만 안달을 하니..

하며 식구들을 원망하거나, 말없이 기대했다가 실망하거나

결국 내 손으로 차려야 하는 것이 화가 나서 우울해 하면서

생일날을 힘들게 보내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왜 식구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부탁해 볼 생각을 안 했을까.

늘 말없이 기대하고 실망하고 원항하는 것을 반복만했지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부탁하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남편이나 애들이나 다 나를 사랑하고 내게 잘 해주려는 마음은

있을텐데 내가 뭘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지는 잘 모를 수 있다.

그것마저 다 헤아려서 해준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걸 바라면서

끙끙 앓느니 시원하게 말로 하고 당당하게 요청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은가.

 

막상 부탁하고 보니 다들 이렇게 기분 좋게 받아주니 조금 얼떨떨하다.

내가 부탁하는 것이 과한것이 아닌탓도 있겠지만 자기들이 해 줄 수

있는 것들로 내가 행복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서로 좋은거다.

 

그렇구나...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때로, 아니 자주, 행복은 세상에 대고 표현하고 요청하는 것일 수 있겠다.

허황되고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면 내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두딸과 나.jpg

 

아아.. 이번 생일은 기분 좋게 기다리게 생겼다.

마침 일요일이니 온 가족이 다 있을테고 고기를 사와서 불을 피우고 굽는 일은

남편과 아들이 나서서 척척 해 낼테도 잔심부름은 두 딸들이 알아서 할테니

나는 우아하게 앉아서 남편이 끓인 미역국에 (사실 이건 좀 미심쩍다. 그래도

모른척 기다려야지..ㅋㅋ) 잘 구운 고기 한 점 먹으면 되는구나.

 

앞으로는 더 자주, 더 가볍게,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기대하는 것을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들을 알려주고 요청해야지.

남편과 아이들에게 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그래, 이거 정말 중요하다.

 

결혼 13년만에 드디어 이런 생일.. 맞이하는구나..

기분 좋은 후기를 올릴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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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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