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돌 생일선물로 받은 팽이를 이불 삼아 덮고 자겠다고 들떴다. » 세돌 생일선물로 받은 팽이를 이불 삼아 덮고 자겠다고 들떴다.


아이는 떠먹는 요구르트를 좋아한다. 하루에 한두개씩 꼭 먹고나서도 냉장고를 뒤져 또 먹겠다고 떼를 쓴다.


아직 스스로 비닐 뚜껑은 뜯지 못해 내가 뜯어주면 밥먹을 때와는 달리 혼자서 숟가락으로 잘도 퍼먹는다. 엊그제도 식탁 위에서 뚜껑을 뜯어주고서 내 볼일을 보러 거실로 왔는데 아이가 말했다.


"이거는 엄마꺼가 없네"


먼소리인가 해서 돌아봤더니 뜯은 비닐을 나에게 보여주는데 비닐에 요구르트가 묻어있지 않았다. 내가 맨날 뜯어준 다음 비닐 뚜껑에 묻어있던 요구르트를 핧아먹었더니 아이는 통에 담긴 요구르트는 자기 것, 껍데기에 묻은 요구르트는 엄마 것으로 알고 있었던 거다. 이런,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더니, 이것은 90년대 노랫말의 2013년 버전이란 말인가. "어머니는 통 속의 요구르트는 싫다고 하셨어~~"


내가 이런 눈물겨운 모성의 소유자였단 말인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아이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한다(그렇기 때문에 내 자식이 최고로 잘되어야돼)는 식의 모성제일주의였는데 짜장면 싫다고 하는 희생 계보의 장본인이 될 줄이야...


나중에 본전 생각 안하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올인하고 내한몸 부서져라 희생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왔다. 내 옷이나 아이 아빠 옷은 좋은 걸 사더라도 한창 자라는 아이는 싼 옷을 사주자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요구르트 사건으로 충격을 먹고 보니 나도 모르게 아이 먼저, 아이 우선이 습관화돼어있었다.


이건 올해도 아니고 지난해 일이다. 하필이면 아이가 한겨울에 처음 나온 딸기를 보고 환장했다. 한팩에 만원도 넘는 걸 사기가 아까웠지만 아이가 딸기! 딸기!를 외치니 한 팩 사서 아이에게만 몇알씩 씻어줬다. 그런데 이걸 몇번 하고나니 어느 정도 가격이 떨어진 다음에도 딸기는 아이 입속에만 들어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아주 비싸지만 않으면 가끔씩 때 이른 딸기를 사먹곤 했는데 이상하게 아이를 먹이기 시작하면서 어른 입속에 들어가는 건 생각도 안하게 된 거였다. 딸기 뿐이 아니다. 유기농 야채같은 것도 어느새 아이 반찬에만 들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미친 채소나 과일값도 한몫하긴 했지만 아이를 챙길수록 어른들의 먹거리는 갈수록 곤궁해져만 갔다.


이번 떠먹는 요구르트의 사건도 그렇다. 아이꺼라도 1+1 같은 할인 제품을 주로 사기 때문에 과일값처럼 비싼 것도 아닌데 아이 것으로 사두니 손이 잘 안간다. 엄마가 요구르트를 제대로 먹는 것을 본적이 없고 맨날 비닐 껍데기만 쪽쪽 빠니 아이는 당연하게도 그게 엄마 몫인 줄만 알게 된 거다. 이러다가는 나중에 아이가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니는 스테이크가 싫다고 하셨어, 어머니는 스타벅* 카페라테가 싫다고 하셨어, 할 판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에게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양보한다. 퇴근 이후의 드라마 본방사수, 주말의 달콤한 휴식 등 뿐 아니라 외식 메뉴를 고를 때도, 나들이 장소를 고를때도 아이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다.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아이 데리고 불닭집에 간다거나 주말 밤에 홍대 앞 클럽가를 전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처럼 아이를 위한 선택이 점점 늘어나다 보면 필요한 양보와 불필요한 희생 사이의 경계선도 흐려지기 쉽다. 물론 양보도 희생도 '셀프'이므로 아이를 위해 어느 정도 양보하거나 희생해야 한다는 메뉴얼은 없다. 나는 다만 나의 인격의 사이즈를 봤을 때 아이를 위해 많은 걸 희생할수록 나중에 본전 생각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하므로 가급적 '동반성장'을 하고 싶다.


우선 맛있는 건 아이만 따로 주는 대신 식구들과 딸기 한알이라도 꼭 나눠 먹어야겠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응당 선물을 받을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아이에게 기브 앤 테이크(엄마 생일엔 뭐 해줄건데?)의 교훈을 가르쳐야겠다. 이번주로 만 세살,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36개월의 덫(?)에서 벗어나니 이제는 무엇보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굴러가는 것이라는 아이의 믿음(?)을 조금씩 깨는 연습을 해야겠다. 이제 서서히 '내꺼야'를 외치며 얌체짓을 시작하는 아이가 '내꺼'를 외칠때 궁디 팡팡하면서 말하련다. 이눔아 엄마도 짜장면 좋아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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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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