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센터.jpg » 이제 31개월 된 아이는 어린이집 대신 일주일에 한번 동네 문화센터에 다니고 있다.


얼마전 예비 워킹맘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에서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아이가 두돌이 넘었는 데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어린이집을 보내는 문제는 단순한 것 같아도 뜻밖에 예민한 사안이다. 특히나 지난해부터 만 2살 이하 유아 보육비 지원이 실행되면서 워킹맘 대 전업맘의 갈등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뜨거운 감자’가 돼버렸다.


사실 얼마 전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서 ‘자리가 났다’는 전화를 받고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다. 어린이집 옆 노인정에 종종 아이를 데리고 다니던 할머니가 어린이집을 기웃대는 아이를 보고 대기자 등록을 해놓았던 거다. 하루에 두시간만이라도 어린이집에 가면 할머니와 이모의 숨통이 좀 트일텐데 생각도 했지만 그냥 미루기로 했다. 당분간은 일주일에 한번씩 다니고 있는 동네 문화센터로만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세돌까지는 일정한 양육자가 1대1 로 아이를 돌보는 게 좋다는 전문가들의 조언 때문이다. 특히 정서적인 이유보다는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다.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는 친구들에게 들어보면 아이가 감기나 수족구같은 유행병에 자주 걸려서 온다는데 아이가 면역력을 조금이라도 더 키우고 나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는 않다. 아이를 돌봐줄 가족이 주변에 없거나 전일제로 아이를 봐주는 베이비시터를 구할 여력이 없어 갓 백일 지났거나 이제 겨우 기기 시작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엄마들도 많기 때문이다. 형편이 안돼서 핏덩이같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하러 가는 엄마 마음은 오죽하겠나. 나 역시 법륜스님의 <엄마수업>을 보다가 두돌때까지는 꼭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대목에서 ‘누가 좋은 거 몰라서 못하나’ 하고 발칵하지 않았나 말이다.

내가 강연에서 했던 대답은 두 번째 이유 정도가 될 테다. 가급적 아이에게 늦게 소속을 주고 싶다. 어린이집에 들어간 다음에는 유치원으로, 그 다음에는 학교로, 직장으로, 아이도 나처럼 평생 어딘가에 소속돼 살아갈 거다. (물론 시간만 넘쳐나는 가난한 예술가나 백수가 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지금부터 그것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건 아니잖나)


어딘가에 소속된 삶이란 때때로 일어나기 싫을 때 억지로 일어나야 하고, 말하기 싫을 때 억지로 말해야 하고, 놀고 싶지 않을 때 즐거운 척도 해야 하는 삶이다. 내키는 대로 빈둥빈둥하는 삶이 결코 아닌 것이다. 어린 아이가 집에서 하는 일이란 대체로 빈둥대는 것 뿐이긴 하겠지만 애 인생에서 다시 오기 힘들,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내는 시기를 좀 더 주고 싶다. 어린이집에 늦지 않기 위해 엄마의 보채는 소리를 들으며 억지로 밥숟가락을 입에 넣거나 오늘은 집에서 번개맨을 실컷 보고 싶은데 가방을 메고 나가야 하는 그런 규칙 있는 삶의 스타트라인을 가급적 늦춰주고 싶다는 말이다. 물론 조직의 쓴맛(?)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야 이 느긋한 시간의 고마움을 당연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고요하고 한가로웠던 시간의 달콤함이 이 아이의 디엔에이에 새겨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다.


요즘에는 아예 네돌 때까지 그냥 집에 두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 무더위에 아이 손을 잡고 여름성경학교에 다녔던 할머니가 기함할 것같아서 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들아 자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고작 6개월 남아있을 너의 ‘불유’(불타는 유아기)를 마음껏 즐겨보려무나.


※ 이글은  월간 <베스트 베이비 9월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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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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