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새학기가 시작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같은 건물이긴 해도 교실과 선생님, 그리고 같은 반 친구의 절반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아이는 한동안 새학기 생활을 낯설어했어요. 실습 겸 자원활동을 자주 하는 엄마 덕분에 엄마가 교실에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도 말이에요.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또 실제로도 새 선생님, 새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았기 때문에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유독 엄마가 교실에 함께 있으면 계속해서 눈으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교실에서 실습/자원활동을 하면 보조 교사의 보조정도의 역할을 맡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소소한 일을 해야 했어요. 책장에서 찢어지고 뜯어진 책을 찾아 테이프로 붙이고, 제자리를 못 찾고 나뒹구는 놀이감들을 제자리에 정리하는 일은 기본이지요. 아침 간식, 점심 시간, 그리고 오후 간식 시간 전후로 아이들 테이블을 닦고, 아이들에게 식기와 컵, 음식을 나눠주고, 아이들이 뒷정리하는 걸 도와주는 일도 합니다. 자유놀이 시간엔 아이들의 놀이 동무도 되어주고요. 바깥놀이 시간엔 아이들 신발끈을 묶어주거나, 넘어져 우는 아이들을 안아 달래거나, 다친 아이들에게 반창고를 붙여주지요. 그러다보면, 잠시 급히 주방에 들어가 얼음팩을 가져와야 하는 일도 생깁니다. 바로 그때, 경황이 없어 아이에게 미리 말을 하지 못하고 주방에 다녀오면, 그 짧은 3, 4분 사이에 반드시 아이는 온 놀이터가 떠나가라 울고는 했지요. 엄마가 없어진 줄 알았다면서요. 가끔은 주방에 일손이 모자라 그곳에 가서 일을 도와야 할 때도 있는데, 주방에만 갔다 하면 아이가 울어대는 통에 난감했어요. 주방이 어디인지, 엄마가 왜 주방에서 일을 하기도 하는지 다 알면서도 왜 그러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지요. 아이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늘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엄마가 없어진 줄 알았어.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그럴 땐 아빠도 엄청 보고 싶어.”

 

어떻게 해야 아이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어느 날, 수를 하나 냈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 있는 사진을 잘라 거기에 실을 묶어 아이 목에 걸어주기 시작한 거죠. 선생님들께 미리 양해를 구하고, 며칠간 아이가 이 사진 목걸이를 하고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매일 아침 이야기했죠. 엄마 아빠가 보고싶어질 땐, 이 목걸이를 기억하라고요. 엄마가 같이 있다가도 주방에 가야 하거나 다른 교실에 들어가야 하면 갑자기 휙, 없어질 수 있는데, 그럴 때라도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사진을 기억하라고요. 그러면 엄마가 어느새 다시 돌아와 있을거라고요.


아이책 11_사진목걸이.jpg

<급히 만든 사진 목걸이>


그렇게 한 일, 이주일을 보냈습니다. 바깥놀이를 할 때는 사진 목걸이를 한 채로 뛰어 다니면 가슴팍에서 달랑거리는 사진이 거추장스러워 잠시 목걸이를 빼기도 했지만, 실내 놀이 시간에, 그리고 낮잠 시간엔 꼭 엄마 아빠 사진을 보며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리고는 조금씩, 조금씩 불안감을 덜어냈습니다. 그래도 울먹일 때가 없진 않았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이 도와주었죠. 할머니 선생님이 무릎에 앉혀 달래주기도 하고, 같은 반에 있는 쌍둥이 친구 유라이아와 댈러스는 아이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해줬어요. “걱정마, 어른들은, 언제나 다시 돌아오니까!”


그림책 <라마 라마 유치원 가는 날>에서도 유치원에 처음 간 라마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상을 짓자 얼룩말 선생님이 다가와 말합니다. “엄마를 보고싶어하는 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잊지마. 하루가 끝나면, 엄마는 꼭 네게 다시 돌아오실거야!” 그리고 친구들이 얘기하죠. “라마 라마, 슬퍼하지 마, 우리랑 같이 재미나게 놀자!” 모두들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마음을 겪어봤기에 해줄 수 있는 얘기들일 거예요. 새로운 친구가 학기 중간에 들어와 또 같은 일이 벌어지면, 아이들은 새 친구에게 다가가 또 이야기할 겁니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어른들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고요. 우리도 처음엔 다 그렇게 슬프고,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면서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요.  

 

수술과 그 이후의 여파로 두달간 어린이집을 쉬다가 다시 가기 시작한 날, 혹시 이 모든 일들이 되풀이되진 않을까 조금 걱정했던 게 사실입니다. 당분간 실습과 자원활동을 중단하고 잠시 쉬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지요. 하지만 그건 기우였습니다. 어느새 훌쩍 큰, 만 다섯 살의 아이는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며 엄마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고 활짝 웃으며 친구들 틈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친구들이 먼저 저를 알아보고 아이를 불러대지요. “니네 엄마 왔어! 여기 좀 봐!” 하고요. 그림을 그리다 말고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엄마를 보는 아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집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림으로 눈을 옮겨 그림을 끝까지 완성한 다음에야 엄마에게 다가옵니다. 이제 집에 갈 준비가 되었다면서요. 그렇게 우리는 또 하루를 무사히 보냈습니다.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품고서도 각자의 하루를 재미나게, 열심히 살아내는 것. 그게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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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책:

<라마 라마 유치원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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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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