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낳고 나니 남의 아이도 귀해져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자랐으면














아기가 자는 시간은 엄마가 원더우먼이 되는 시간이다. 밀린 빨래, 개수대에 넘쳐나는 설겆이를 빛의 속도로 처리한다. 그러고도 조금 시간이 남아 인터넷이라도 할 수 있는 날은 적금 타는 날이지만 대개는 빨래나 설겆이 하나만 완성해도 성공이다.






더러는 오늘 같은 날도 있다.   남편은 깨끗한 런닝이 하나도 없어 셔츠만 걸친 채로 회사에 출근할 지경으로 빨래가 쌓여 있는데 애는 눈을 부릅뜨고 안 잔다. 재우려다가 포기한 나는 애가 울건 말건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울음소리를 5분 정도 모른 척하다가 아이를 돌아보면 눈물에 침에 머리카락은 온통 땀 범벅이 된 아이가 애원이 담긴 눈길로 나를 본다. 순간 안스러움과 미안함으로 울컥해진다.






내 손이 닿는 순간 얼굴이 환해지는 아이를 번쩍 안으면서 난데없이 최근 떠들썩한 일본의 영유아 남매 방치 사망사건이 떠오른다. 5분만 혼자 내버려둬도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엄마 없이 그 긴 시간을 버티던 그 아이들은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힘들었을까. 순간 다시 울컥해진다.






아이를 낳고 부쩍 감상적이 됐다. 사춘기적 감상이 아니라 아이들만 보면 마음이 짠하고 아픈 아이들, 어렵고 힘든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 옛날에는 학대받거나 고통받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그 아이를 방치한 부모나 시스템에 분노했는데 이제는 그냥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불편할까,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 밖에 안든다.  어린 시절 독하고 냉정하다는 이유로 나중에 검사가 되라는 큰 언니의 진지한 진로 권유를 받았던 내가 이렇게 떨리는 영혼의 소유자로 변신하다니, 호르몬이 문제인게야. 모유수유가 호르몬 이상을 야기한 건가?






주변 엄마들에게 내 상태에 대해서 상담을 하니 그네들도 다 그렇단다. 친한 필자 하나는 엄마 없는 아이들만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다른 친구는 미성년자 성폭행 뉴스를 보면 잠을 못잔다. 내 아이 걱정보다 사고를 당한 아이가 너무 불쌍해 잠을 설친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되고, 인생을 알고 어쩌구 하는 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류의 훈계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딱하나 절실히 깨달은 건 내 자식 낳아봐야 남의 자식 귀한 줄 알게 된다는 거다. 아이는 나라의 보배이거나 미래의 희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절대적 ‘약자’라는 걸 절감하기 때문이다.













cc7570a7eb848140a4ba02c45be0773a.뭐 심도 있는 철학이나 비판적인 논리의 결론이 아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겠지만 아이는 엄마없이 또는 엄마에 준하는 누군가의 절대적이고 무한한 보호 없이는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 이전에는 이게 그냥 아는 이야기였다면 지금은 젖을 줄 때, 목욕시킬 때, 안아 줄 때, 얼굴에 묻은 밥풀을 떼어줄 때조차도 쉼없이 온몸으로 느낀다. 정말이지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필요한 존재가 될 줄 상상이라도 한적 있는가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새삼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가슴 한구석이 따끔따끔해진다.  내 배나 다리 위에 짧은 다리를 척 올려놓고 자는 아기를 물끄러미 볼 때 자면서도 단절되지 않는 부모 자식 관계라는 게 뭉클하면서 동시에 이렇게 제멋대로 다리를 올려놓을 체온이 결핍돼 있는 아이들이 떠올라 편치가 않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하나의 딜레마를 만들기도 한다. 아이가 매 순간 나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뼛속깊이 느끼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독한 사람들이 자식 버린 엄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러면서 뭔가 부대끼는 느낌도 든다. 70년대에 태어난 나는 당연히 페미니즘을 배웠고 영향받았다. 여성의 낙태의 권리도 옹호한다. 제 아이를 손에서 놓았다고 천하의 나쁜 년이라고 말하는 건 안티페미니스트에게 더 어울리는 코멘트가 아닌가.  단지 아이들을 위해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자식 버린 엄마가 가장 비정하다니 이건 뭔가 모순되지 않는가 말이다.




아직 명쾌하게 정리는 못하겠다.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불행할 자처해서는 안되겠지만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도 분명 사실이다. 얼마전 보호시설에 들어온 아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버려졌다가 다시 엄마를 찾은 아이의 예가 나왔다. 예의 무능한 남편과 지나친 경제적 궁핍으로 아이를 버렸던 엄마는 여전히 한 몸 누일 공간이 없을 정도로 어렵지만 결국은 아이를 찾아왔다. 외출 나와서 갈 곳이 없어 여관촌의 한 방으로 들어가는 엄마와 아이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예전 같으면 저렇게 아이를 키우느니 좋은 곳에 입양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을텐데 가난하지만 다시 엄마를 찾은 아이가 참 다행이다 싶었다.




위대한 모성이라는 건 신화일 수 있어도 아이가 모성을 필요로 한다는 건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변함없는 진실일 것 같다.  그래서 엄마가 된다는 건 기쁘고 흐뭇한 사건이기도 하지만 어깨가 빠질만큼 무거워지는 선택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선택에는 비용이 따른다. 게으른 엄마로 남 걱정할 때가 아니긴 하지만 이 비용에 대해서 생각하고 책임지는 것. 우리 아이 영재로 키우고 일등으로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엄마의 숙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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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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