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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규와 윤정, 2008년 5월)



며칠전에 인터넷을 통해 아이 키우는 일이 귀찮다는 이유로 한살, 세살 남매를 굶겨 죽인 일본의

젊은 엄마에 대한 기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간간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혹은 가정 불화로, 아이들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하는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온 적은 있지만 키우는 일이 귀찮아서 아이들을 죽게 하다니, 정말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다.

인터넷에 떠 있는 사진 속에서 죽은 아이들은 그네를 타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이쁜 아이들이었다. 술집 종업원이었다는 아이 엄마는 생활하기가 만만치는 않았겠지만 어떻게

이렇게 이쁜 아이들에게 아무런 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엄마와 자식 사이가 어떻게 이렇게

뿌리까지 흔들리게 되었을까. 모두가 젊은 그 엄마를 향해 비정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그녀에게 육아가 이렇게 귀찮고 힘든 일이 되기까지 우리가 저질러온 잘못들은 없는 것일까.

같이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너무 가슴아팠고, 비참하게 가버린 어린 영혼들이 가엾고

애처로왔고, 아이를 키우는 행복과 감동을 느껴보지 못하며 엄마가 되버린 그녀도

한없이 안타깝고 서글펐다.



우리가 자랄때는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것이 '모성'이라고 했었다.

역사를 통해, 책을 통해, 우리는 수없이 많은 강하고 위대한 모성을 보아왔었다.

지진이나 해일, 화산 폭발같은 자연 재해가 났을때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며 아이를 구하고

죽어간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역사를 봐도, 6.25동란때 남편과 전 재산을 잃고 아이와 남겨진 엄마들이 얼마나 기막힌

고생을 하며 아이를 돌보고 길러냈던가. 오래된 사진속에서 우리의 엄마들은 등에 아이를 업고

머리에는 무거운 다라를 이고, 장사를 다녔고, 힘든 농삿일을 하다가 논두렁에 뉘여놓은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고, 몸이 부서져라 일해가며 아이들을 입히고, 먹이고, 가르쳐

오늘의 이 사회를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엄마라면 어떤 순간에라도 자신의 아이들을 먼저 포기할 수 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알아왔고, 우리 역시 그런 강하고 뜨거운 모성에 의해 길러졌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모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아이와 함께 바다로 뛰어든 엄마가 있는가하면, 남편과 부부싸움을

한 후 아이를 먼저 고층에서 던져버리고 자신도 뛰어 내린 엄마도 있었다. 옛날같으면 상상 할

수 도 없는 일들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다.

과연 이런 현상들은 일부 몰지각하고 비정한 여자들의 잘못일까. 이 사회는, 이 시대는 아무런

책임과 잘못이 없는 것일까.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지만 엄마와 자식간의 관계는 아빠와의 관계보다

더 특별하다. 아이를 낳는 주체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열달동안 엄마 뱃속에서 지내다가 세상에 나온다. 아이를 가진 여자들은 매 순간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생명을 의식하며 지낼 수 밖에 없다. 마침내 열달이 지나 아이를 낳게 되면

엄마와 아이는 출산의 산고를 함께 겪으며 그 절정에서 만나게 된다.

아이를 낳기 위한 고통을 어떤 이는 간암 3기 환자가 겪는 고통과 같다고 표현했다. 어떻게

그런 비교가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산통이 주는 아픔이 격렬하고 고통스럽다는 의미일것이다.

죽을것처럼 아픈 고통을 생생하게 겪어내는 일이란 온 몸과 온 정신을 다 바쳐야만 극복해 낼 수

있다. 산모는 온 몸의 뼈가 모두 뒤틀리는 극심한 통증을 견뎌야 하고, 태아는 엄마의 골반 크기에

맞추어 자신의 두개골을 겹쳐가며 산도를 빠져나오기 위해 애써야 한다.

출산은 이처럼 산모와 태아가 함께 이루어내는 역사다. 이 역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혹독한

진통을 견뎌내야 한다.



아기를 낳는 일이 왜 이렇게 아픈거냐고 여자들은 억울해 한다. 아이는 좋은데 진통은 싫다고

입을 모은다. 아프지않게 아이를 낳고 싶은 여자들의 소망을 현대 의학은 무통분만과 제왕절개를

통해 실현해 주고 있다. 통증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무통분만이 개발된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수많은 산모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지금도 산모들끼리 어울리는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보면 무통분만을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프지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을 일이 있을까 하는 모양이다. 주위에서도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미리 무통분만을 결정해 놓는 산모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정말 무통분만이 하늘이 내려준 선물일까.



첫 아이를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아이를 집에서 낳은 나는 출산할때 어떠한 인위적인 약물도

투여받지 않았다. 집안을 오가며 진통을 견디고 생생한 의식으로 극심한 통증을 겪어가며

아이를 낳았다. 몸과 마음을 오래 준비했던 나 였기에 진통을 수월하게 겪으리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시작된 진통은 내 결심과 각오를 쉽게 허물어버리는 극심한 통증이었다. 생으로 뼈마디를

벌리는 고통이란 말 그대로 죽을 것 처럼 아팠다. 한 번만 겪는게 아니라, 아이가 산도를 다

빠져 나오기까지 점점 수위를 높여가는 통증은 정말이지 내 의지와 정신의 남은 한방울까지

다 쥐어짜야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런 고통의 정점에서 마침내 내 몸을 쑤욱 빠져 나온 아이를

품에 안았을때의 감격이란 말 그대로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다. 죽음 직전에서 새 생을 얻은 느낌

이었다. 아이 역시 나만큼 힘겨운 과정을 이겨냈다는 것을 알기에 내 몸에서 나온 아이를

안았을때는 죽음을 같이 넘나든 동지를 만난 기분이라고 할까. 너무 소중하고, 너무 고맙고

너무 벅차서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이를 낳는 일이 왜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엄마와 아이가 힘겨운 산통을 함께 겪어내는 일이란 누구도 절대로 우리 사이를 떼어놓을 수 없이,

죽을때까지 이어지는 강한 애정으로 맺어지는 과정이었다. 같이 겪어본 사람들이라야 알 수 있는

머리로 알아지는게 아니라, 온 몸으로 알아지고, 온 정신으로 깨우쳐지는 그런 강렬한

애정이었다. 진통을 통해서 어미는 새끼를 평생 품을 수 있는 강한 모성으로 완성되는 것이었다.

출산의 고통뿐만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평생 겪어야 하는 더 많은 시련들과, 어려움들을

극복해 낼 수 있는 강한 정신력과 애정을 온 몸과 온 정신에 올올히 새기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옛 어머니들이 그렇게 눈물겨운 강인한 모성으로 우리들을 키워낼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의 생짜 의지와 힘을 모조리 다 바쳐 견디어낸 산통을 통해 얻은 선물이 아니었을까.

아이를 낳을때는 그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같지만 조금만 지나도 알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몇 배 더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육아는 내 모든 인격과, 체력과, 정신력과, 감정과 의지를

요구하는 일이다. 충분한 준비없이, 충분한 각오와 노력없이는 절대로 해 낼 수 없는 것이

육아다. 자연은 그런 육아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진통'이라는 기제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출산의 순간이 지나자마자 엄청난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대개 바로 자신의 아이를 안아보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출산 소식을 전하기

시작한다. 나 역시 그랬다. 내 힘으로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인 스스로에게 너무나 자랑스럽고

대견해서 세상을 향해서라도 내가 해 낸 일을 외치고 싶었다.

진통을 온전히 겪어 내고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이처럼 출산 초기부터 강력한 자신감과

뿌듯함, 자신에 대한 대견함을 안고 육아를 시작한다. 아이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런 엄마들은 출산 후 바로 맞닥뜨리게 되는 많은 육아의 어려움들에도 훨씬 더 유연하고

강인하게 대처해 나간다.



나는 이 지점에서 오늘날 산업화된 병원 출산 시스템에서 아이를 낳은 엄마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정서적으로 배려받지 못하고, 제대로된 의미조차 배울 수 없는 진통은 그저 피하고 싶은

고통일 뿐이고, 출산은 되도록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끔찍한 과정이 되어 버렸다. 산모와 태아의

자연스럽고 의미있는 만남은 수많은 약물과 의료적 개입으로 오염되고, 절반 이상의 산모들은

제왕절개를 통해 태아가 제 힘으로 산도를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자연이 준비해 둔 인내와

끈기의 메커니즘을 통째로 제거해 버린다.

죽을것같이 고통스런 진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려면 얼마나 강력한 약물이 투입되어야 할까.

무통분만은 그렇게 강한 약물의 힘으로 진통을 없애 버린다. 엄마들은 아프지 않아서 너무

행복하다고 좋아하지만 아이와 엄마 사이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그 과정이 생략된채

수동적으로 누워서 받는 의료진들의 의학적 처치 후에 아이를 품에 안게 되면, 아이와 엄마 사이를

이어주는 강렬한 애착과 감정은 절대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아이를 내가 낳았다는 것'을 몸과 정신이 아는 것과, 인위적인 도움과 개입을 통해 '아이를

얻었다'는 사실 사이에는 절대로 메워지지 않는 커다란 간격이 있다. 이 간격이 오늘날 엄마들의

모성을 약하게 하고 있다. 존재의 모든 것을 걸고 겪어내는 고통과, 통증이 모두 제거된 채

아이만 안게 되는 것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겪어야만 하는 고통을 피하게 된 댓가로 오늘날의 엄마들은 자신이 낳은 아이에게 강렬한 애착을

못 느끼고,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피하고만 싶고, 아이가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보다 힘들고

귀찮은 존재로 느끼기 쉬운 상태에 쉽게 직면하게 된다.



삶의 모든 과정에는 의미가 있다.

삶의 모든 과정들은 낱낱이 떨어진 조각들이 아니라, 한 코가 다른 코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그물과 같다. 한 곳을 들어 올리면 연결되어 있는 같은 그물 모두가 들려지게 된다.

진통을 제거해 버리면 출산이 수월해지는게 아니라, 진통이 품고 있는 수많은 의미와 과정들이

채워지지 않은채로 남겨진다. 그 간격은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를 제대로 충분히

'사랑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엄마로서의 자신에 대해 스스로 충분히 믿지 못하고

육아가 안겨주는 숙제들이 자꾸만 부담스러워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태어나는 일에서부터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시도해볼 기회도 얻지 못하고 인위적 개입과

약물의 영향을 받아야 하는 오늘날의 아이들이 예전의 우리들에 비해, 자신을 함부로 여기고

인생의 작은 시련에도 쉽게 목숨을 끊으며, 다른 생명들에게 점점 더 잔인해 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게

겪어내야 하는 것들을 쉽게 제거해버린 결과일지도 모른다.



안 아픈게 다 좋은건 아니다. 아픔은 우리에게 성숙과 지혜를 안겨 준다. 다만 그 아픔의

의미를 충분히 아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뿐이다.



무통분만을 예찬하기 전에, 자연은 왜 수억년의 세월을 통해 진화해오면서 어미에게 진통을

겪에 했는지를 생각해보자. 엄마와 아이사이를 이어주는 생의 단 한 번 뿐인 그 소중한

기회와 과정들을 우리가 조금더 알아보고, 생각해보고, 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머리좋은 아이를 낳는 법, 아이 낳고 몸매 회복 하는 법에 현혹되기 전에, 생명이 어떻게

오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엄마와 만나는지, 보다 근본적인 것들을 더 공부하고

찾아보고, 고민하는 엄마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우리들이 우리의 '모성'을 올올히 지켜내고 살려내야만 우리 사회의 희망이 있다.

내가 낳은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지켜낼 수 있다.



비정한 엄마를 손가락질 하기전에, 기계적이고 산업화된 이 시대의 출산 시스템을 먼저

반성하고, 개선시켜야 한다.

엄마가 아이를 뜨겁고 강하게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사회, 나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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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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