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룸 열살 생일.jpg

 

초등학교 시절 어느 생일날 부모님이 친구들을 불러 생일상을 차려 주셨다.

쌍둥이 자매와 똑같은 옷을 입고 마루에 차려져 있던 생일상에 앉아서 웃고 있는

모습을 귀한 컬러 사진으로 남겨주셨는데 그 사진을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창으로 비쳐든 햇살속에서 나와 쌍둥이 언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곁에는 아래 여동생과 친구 몇명이 같이 웃고 있었다.

색 입힌 밀가루로 만들어 올린 장미꽃이 있던 데코레이션 케익 맛까지 선하다.

딸이 다섯이나 있어 늘 여유가 없던 살림이었는데 한 번쯤은 그런 생일에 대한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으셨던 것일까.

그 뿌듯하고 기뻤던 기분은 쉰이 된 지금에도 떠올리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1월 마지막 날에 지나간 막내의 생일 상을 2월에 또 한 번 차렸다.

오빠 학교 사람들이 집에 와서 놀던 날과 생일이 겹쳐 막내 친구들을 못 부른 것을,

다시 날을 잡아 모두 불렀다. 언니 친구네 명에 막내 친구 다섯..

어린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장을 보고 집안을 치우고 오랜 시간 불 앞에서 종종 거렸다.

봄동과 시금치를 무치고, 딸기를 씻고, 돼지목살을 양념해 굽고, 연어와 토마토를 넣은

샐러드를 만들고, 잡채를 했다.

이룸이는 종일 집안을 떠 다니며 음식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즐거워 하고, 기대하며 기다렸다.

친구들이 도착하고, 준비해 온 선물을 받고, 풀러보고 좋아하고, 이 방 저 방으로 다니며

왁자하게 노는 동안 거실에 상을 차렸다.

이룸 열살 생일2.jpg

 

좋아하는 언니들, 좋아하는 친구들을 축하를 받으며 이룸이는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열살, 열 세살아이들은 봄동 겉절이 맛도 알고, 시금치 나물도 잘 먹고, 고기는 너무 좋아하고,

밥도 거뜬 거뜬 비운다. 제가 먹을 밥 그릇 들고와 잘 먹었습니다 인사도 할 줄 알고

식탁의 빈 그릇들을 가지런히 걷을 줄도 안다. 모두 오래 만나오며 커 가는 모습을 다 지켜본 아이들이다.

 모두 다 대견하게 잘 컸다. 참 이쁘다.

밥을 그득히 먹고 아이들은 모두 2층으로 올라가 놀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동생들은 유치해서 같이 놀 수 없다고 편을 나누던 아이들이 올 해는 같이 어울려

퀴즈도 풀고 몸 놀이도 하는데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다들 1년 동안 훌쩍 자란 것이다.

어릴 때는 중간에 엄마 찾는 아이도 있고, 투닥거리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었는데

이젠 중간 중간 내려와 물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는 외에 나를 찾을 일도 없이 저희들끼리

너무나 재미나게 잘 논다. 덕분에 설거지도 싹 하고, 거실도 말끔히 치울 수 있었다.

어린 손님들은 너무나 재밌어서 밤이 깊어도 일어나기 싫어하다가 10시에 한 팀, 11시에 마지막 팀이

돌아갔다. 어찌나 재미나게 노는지 다음에는 하루 재워가며 놀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을 정도다.

이날 음식을 한참 준비할 때 이룸이가 작은 쪽지 편지 한장을 부엌에 살짝 놓고 가며 말했다.

"엄마, 이건 이따가 생일파티 다 끝나고 난 다음에 읽어야 해요. 그 때를 기준으로 쓴 거니까요"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편지인지 짐작이 갔다.

아침에 윤정이가 이룸이에게 생일 편지 준 것이 궁금해서 살짝 읽어보았더니

이런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룸 열살 생일5.jpg

 

- 이룸아 안뇽? 나 윤정언니야... 너무 늦은 것 같네..

ㅎㅎ 그래도 너의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며

적어본다. 와 ~ 니가 벌써 10살 이나 되다니....

드디어 한 자릿수에서 넘어갔구나. ㅋㅋ....

이제는 학교 생활도 달라질꺼야. 영어도 생기구

미술, 도덕.. 체육 등 다양한 과목이 생기겠지.

너 생일파티 끝나고 꼭!!!! 엄마한테 가서

꼬옥 안아드리며 " 엄마 올해도 최고의 생일 이었어요

엄마, 나 낳아서 고생하셨죠?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예요" 하고 하면서 너도 엄마께 편지를

한 통 드리는 건 어떠니? 한 번 해 봐 ^.^

아마 very 감동 받으실걸?

from 윤정언니 -

이 편지 읽고 울컥했다. 세상에나... 언제 이렇게 컸을까.

이제 겨우 열세살인데 어쩌면 이런 생각을 다 할만큼 의젓해졌을까.

가슴이 찌르르 해왔다.

이룸 열살 새일5.jpg

 

그리고 열어 본 이룸이의 편지..

- TO 엄마

엄마! 나 이룸이예요. 오늘 최고의 생일

파티였어요. 정말 정말 고맙고 사랑해요.

날 낳아줘서 고마워요!

맨날 맨날 하루도 빠짐없이 언니랑

싸우고 말썽 피워서 죄송해요.

앞으로는 말썽 안 피우고 안 싸울려고

더 노력할께요. 알겠죠?

나와 언니가 잘 크게 쭉 ~

지켜봐 주세요! 다른 곳에

있어도 서로의 마음속에 있으면 좋겠지요?

오늘은 정말 행복했어요. 수고하셨어요!

사랑해요! -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눈물을 훔쳤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아이들 생일은 내가 그 아이를 낳은 날인것을 알았다.

그리고나니 엄마가 생각났고, 하나도 아닌 쌍둥이를 낳느라 얼마나 애쓰셨을지 알아졌다.

내가 태어난 날은 엄마가 죽음의 문턱까지 닿는 고통을 견뎌가며 우리를 낳은 날인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어른이 되었다. 생일이 되면 엄마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드린다.

많이 힘드셨지요.. 낳아주셔서 고마와요.. 인사를 드린다.

이렇게 철 들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언젠가 내 생일날, 엄마에게 전화를 드리고 나서 아이들에게 생일날의 의미에 대해서

이런 얘기를 들려준 일이 있었다. 윤정이는 내 얘기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편지로 동생에게 전해준 열 세살 언니와, 언니의 편지를 읽고 바로 감사 편지를

준비해 내게 건네 중 열살 막내딸 모두 너무 고맙고 대견했다.

이룸 열살 생일3.jpg

 

이룸 열살 생일4.jpg

 

방학 중에 너무 너무 싸워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큰 소리가 나고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같은 방 쓰기 싫다고 울고 불고 하는 것이 힘들어서 마음이 고단했던 날 많았는데

그렇게 싸우면서도 둘은 서로를 깊이 아끼고, 많이 의지하고, 돕고 있다.

딸들의 편지에 그 모든 마음이 다 담겨 있었다.

늦은 밤, 집안을 정리하고 자러 들어가면서 두 딸들은 몇 번이나 너무 즐거웠다고,

고마왔다고,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입을 맞추어주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딸들이 잠 든 다음 나는 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생일잔치 이야기를 들려주며 두 딸의

편지를 보여 주었다. 남편은 말없이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애써서 아이들에게 생일 선물로 생일상을 차려 주었지만 정말 좋은 선물은

남편과 내가 받았다는 것을 안다.

건강하게 잘 커 주는 것이, 매일 투닥거리고 싸우면서도 생각과 궁리와 헤아림이

깊어지는 것이, 이젠 부모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우리의 힘을 북 돋아 주기도 할 만큼

자랐다는 것이 더 할 수 없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날의 선물을 욕심껏 마음 깊숙히 새겨 넣는다.

혹 자라는 날 어디쯤에 서로 몹시 맘 아프게 할 때도 있겠지만 너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그런 날엔 아이들이 내게 준 선물을 하나씩 다시 들여다보며

그 모습이 다가 아닌 것을 믿고 또 힘을 낼 수 있게 말이다.

고맙다 딸들..

하루를 산 만큼 커 가는 모습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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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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