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6509486532.jpg “엄마~ 업어줘~ 업어줘~”
아들이 등 뒤에 딱 붙어 업어달라고 보챈다. “그래~ 업혀~”하고 쭈그리고 앉아 등을 아들에게 내민다. 아이는 목을 감싸고 내 등에 딱 붙더니 “엄마~ 포개기~포대기~”한다. 나는 장롱 속에서 포대기를 꺼내 아이를 감싼다. 그냥 손으로 안을 때보다 포대기로 업으면 훨씬 업기 편하다. 새해 아이들이 7살, 5살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포대기를 갖고 있는 이유는 가끔씩 아이들이 이렇게 내게 ‘어부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포대기에 안길 때의 그 포근한 느낌과 엄마 등의 따뜻한 감촉이 아이들에게는 마냥 좋나보다. 일주일에 한 두번씩 대체로 주말에 엄마와 함께 있을 때 아이들은 업어달라고 한다. 그때마다 나는 포대기로 아이를 업어준다.
 
“우리 아들 좋아?”
(고개 끄덕끄떡)
“아이고~ 우리 아가. 다 큰 녀석이 애기 됐네~우리 아가 좋아요? 쭈쭈 다시 먹을까?”
“애~앵,  애~앵. 쭈쭈. 쭈쭈.”
 
아들은 아예 능청스럽게 아기 흉내를 낸다. 한참 업혀서 거실을 왔다갔다 하면 혀 짧은 소리를 내며 포대기 속으로 푹 들어간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 온 몸을 웅크리고 있던 태아처럼 아들은 자꾸 포대기 속으로 들어가 엄마 품에 안긴다. 그러다 포대기에서 풀어놓으면 엄마에게 쭈쭈를 달라고 한다. 아들 입에 가슴을 갖다대면 아들은 쭈쭈 먹는 흉내를 낸다. 천연덕스럽게 아가 역할을 소화해내는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벌써 우리 아들이 이렇게 컸나’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의 한 차례 ‘아가 연극’이 끝나면 딸이 아들처럼 다시 업어달라고 한다. 18㎏이 넘는 딸을 업자면 이젠 나도 힘이 부친다. 그래도 포대기로 딸을 업어준다. 딸 역시 ‘우쭈쭈’하는 아가 시절로 돌아간다. 아가 역할에 몰입해 ‘응애~ 응애~’를 계속 하고, 나는 우는 아가 달래는 것처럼 노래를 흥얼거리며 거실을 왔다갔다 한다.
 
첫째를 낳았을 때는 포대기의 장점을 잘 알지 못했다. 나도 다른 신세대 엄마들처럼 주로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다녔고, 아기띠나 슬링을 이용해 아이를 안았다. 비싼 돈 들여서 슬링, 아기띠 모두 샀다. 회사 선배가 “아이 업을 때 가장 잘 활용했다”는 포대기는 집안 구속에 처박아 놓았다. 포대기는 촌스럽다는 생각이 강했다.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고, 나도 폼나게 예쁜 아기띠에 아이를 안고 폼나게 걷고 싶었다. 
 
그런데 첫째를 쩔쩔 매며 키운 뒤 나는 나중에야 포대기의 진면목을 알게됐다. 서양인들이 ‘애착 육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엄마의 품 같은 포대기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조선족 이모들과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포대기 업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포대기가 훨씬 아이 업기에 편하고 어깨와 허리가 덜 아프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아이도 훨씬 안정감 있게 엄마 등에 기댔다. 그래서 둘째는 육아 휴직을 했을 때 주로 포대기로 업어 키웠다. 훨씬 업어 키우기 편했다.
 
최근 아마존 예콰나족의 육아 방식을 다룬 진 리들로프가 지은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라는 책을 읽었다. 평소 즐겨 듣는 팟캐스트 ‘이승욱의 공공상담소’에서 이 책을 소개했는데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며 ‘품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진 리들로프가 말하는 ‘품’의 개념이 ‘포대기’와 연결되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지은이인 진 리들로프는 베네수엘라 카우라 강 상류에 사는 원시부족 예콰나족과 함께 수년 간 생활하면서 예콰나족의 육아 방식을 관찰해 책으로 펴냈다. 당시 석기 시대와 다름 없는 생활을 하던 예콰나족의 육아 방식은 문명 사회에서 살다 온 그녀에게 매우 새롭게 다가왔다. 그들의 육아 방식은 인간의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육아 방식이자 과거 선조들의 육아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예콰나족 엄마들은 아이가 태어나서 기기 시작할 때까지의 기간인 ‘품의 단계’에 늘 아기를 업거나 안고 다니면서 일을 했다. 우리처럼 아이들을 요람이나 유모차에 떼어놓고 키우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일하고 일상생활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예콰나족 아이들은 충분히 엄마의 품 안에서 편안한 안정감을 느끼고 욕망을 충족해서 느긋하고 조용하고 얌전했다. 아이들은 서로 싸우지 않았고, 떼를 쓰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진 리들로프는 그들의 육아 방식에서 품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렇게 설명한다.
“품의 단계에 있는 동안 아기의 의식 상태는 엄청나게 변화한다. …(중략)…품의 단계에서 아기는 경험을 수용하고 타고난 기대를 충족하면서 새로운 기대나 바람을 품고, 또다른 그 기대를 충족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엄마의 품 안에서 안전하게 지내며 경험을 실컷 하고 나면 아기는 다음 발달 단계로 발달할 욕구가 생긴다는 얘기다. 진 리들로프는 문명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는 유모차나 요람 때문에 품 안의 경험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것을 ‘연속성에서 멀어진 삶’이라고 정의한다. 연속성을 박탈당한 사람은 항상 품 안의 경험을 갈구하는 욕망이 남아있다. 그녀는 “품의 박탈은 가장 흔하게는 불안이라는 잠재적인 감정의 형태로 나타나기 쉽다”고 말한다. 현대인들의 대표적인 질병 불안, 또 새 옷이나 새 자동차, 승진이나 월급 인상, 다른 직업, 장기 휴가, 아직 배우자나 아이가 없다면 출산이나 결혼 등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집착은 모두 품의 박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그녀는 해석한다. 매우 흥미로운 해석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품의 경험’을 박탈하지 않으려면 ‘포대기’를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생후 1년 이내 아이가 목을 가눈 뒤에는 아이를 더 많이 안아주고 포대기로 더 많이 업어 항상 아이를 품 속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7살, 5살인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포대기를 사랑한다. 아이처럼 포대기에 푹 싸여 업혀 있으면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생후 1년 이후에도 아이들이 원하면 이렇게 포대기로 업어 ‘품’을 경험하도록 하면 아이들이 ‘연속성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나는 오늘도 아이들이 원하면 포대기로 업어준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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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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