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여년 전인 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어린이 문학계에선
글쓰기가 아닌 '글짓기'라는 표현이 더 일반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글이란
아름답고 근사한 말로 지어내는 것,
또 그런 글이어야 각종 글짓기대회에서 상을 받을 수 있다는게
통념이던 시대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아이들이 글이란 어려운 것, 억지로 꾸며내야 하는 것이란
고정관념을 갖게 되었고 어린이문학도 관념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 많았다.
이런 시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이
이오덕 선생님을 시작으로 한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 사실적인 글쓰기,
현실을 반영한 어린이문학 운동이었다.
관념적인 글짓기 문화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살아있는 글쓰기' '지어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쓰기' 운동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30년동안 많은 분들의 노력과 어린이책 시장의 성장,
글쓰기 문화의 대중화가 서서히 정착된 지금은
'글짓기'라는 말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췄다.
저 푸른 들판에 양떼들이 뛰어놀고 ...
하는 식의 근본없는 관념주의의 동화나 어린이의 글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훨씬 나아진 글쓰기 문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다.
왜 그런걸까.
어린이 독서교육과 글쓰기 교육을 처음 시작할 때,
교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해 아이들이 가진 선입견을 서서히 없애거나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인데,
그만큼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독서와 글쓰기에 대해
여러 방식으로 강요 혹은 부담을 안고 자라기 때문이다.
0 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 에서 시작해야 하니,
0 까지 겨우 끌어올리기까지도 시간이 걸리고, 거기에 도달한 뒤에야
본격적인 시작을 하는데.
아이들이 또 제대로 쓸 때가 되면 입시 공부가 시작되니 어영부영 끝날 때가 많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이 부분을 교정하기가 참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든다.
저학년의 경우는, 좀 더 유연해서 쉽게 교정되기도 하고 변화가능성이 많긴 한데
자기만의 느낌과 생각을 자유롭게 술술 쓰는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그리 많지 않다.
어린이가 글을 즐겁고 잘 쓰기 위한 가장 좋은 조건은,
'글쓰기에 대해 아무런 선입견이 없는 상태'가 아닐까.
잘 써야 한다,
이렇게 쓰면 뭐라고 할까,
맞춤법, 띄어쓰기 틀리면 안돼,
귀찮다,
꼭 길게 써야 하나,
이런 식의 부담감이 없어야, 글을 편하게 시작할 수 있다.
잘 쓰든 못 쓰든, 일단 시작을 쉽고 편하게 해야 글이 자연스럽게 태어난다.
글쓰기에는 정말 다양한 방법이 많을텐데,
어린이 글쓰기에는 두 가지 정도만 잘 적용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생생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형용사 없이 써 보기
2. 오감을 최대한 살려서 쓰기
형용사 없이 쓰기는, 어른 글쓰기에도 흔히 드러나는데
좋은, 예쁜, 아름다운 등 흔히 쓰는 형용사를 써 버리면 자신의 감정이
그 한 낱말에 갇히게 되어 다른 표현을 덧붙이기가 어려워진다.
아이들이 일기에도
(오늘은) 재밌다, 즐겁다, 좋았다 라고 쓴 뒤에는
다른 말을 더 이상 쓰질 못하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실제 아이들의 글을 예로 들어보면,
공부가 늘 어려웠던 아이가 어느날, 100점을 받았을 때
"오늘 학교에서 기분이 좋았다."
라는 심심한 표현 대신,
"100점이라 적힌 시험지를 받고 돌아서는데
교실 벽이 다 하늘색으로 보였다."
라고 썼다.
이건, 글쓰기 기술이라기보다
아이가 그 순간의 감정을 놓치지 않고 잘 붙잡는 것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일상화되다 보면,
자기 주변의 움직임, 변화 등에 민감해지고
TV 화면의 자막이 뜨는 것처럼
눈 앞의 장면들에 어울리는 언어를
애써 찾지 않아도 자연히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쓰지 않으면 금새 잊혀질 느낌, 생각들을
글로 써서 남기는 재미, 아이들이 이런 즐거움을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 글쓰기는 점점 쉬워지고 실력도 쑥쑥 늘어난다.
흔히 쓰는 형용사에 의존하지 않는 글쓰기와 함께,
오감을 살린 글쓰기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자극을
구체적으로 쓰는 훈련이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감각이 예민해서 이런 글쓰기는 조금만 연습하면
금방 잘하게 된다.
아이유 노래의 작사로 유명한 '김이나' 작사가에게
어떤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모락모락 누나'라고 쓴 걸 보고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오감을 동원해 이름을 해석한 언어적인 센스가 너무 귀엽다.
이해가 안되시는 분은 작사가의 이름을 소리내어 여러번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