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정말 정말 하고 싶어요. 시내 나가서 인형 뽑기 한번만 하고 오면 안되요?"
"시내는 안 나가"
"그럼 나는 어떻해요. 인형뽑기가 정말 하고 싶은데..."
"그래도 안돼"
"아아, 엉엉"
이룸이는 요란한 소리로 울면서 소파에 드러눕는다. 아주 대단한 시위 중이다.
주말을 맞아 모처럼 언니랑 둘이 시내에 있는 스포츠센터로 자유수영을
하러 다녀오겠다고 해서 차로 데려다 주었다
돌아올땐 시내에 들러서 간식도 사 먹고 전철을 타고 오라고 일렀다.
용돈을 조금씩 가져가라 했더니 두 딸은 아주 신이 나서 집을 나섰던 것이다.
저녁이 다 되어서 집에 돌아온 두 딸은 간식 대신 인형뽑기를 했노라며
아주 재미있었다고 했다.
인형뽑기가 대유행이 된 후로 너무 너무 하고 싶어해서 온 가족이 시내로
외출을 나갔을때 한번 해보게 했다.
순식간에 돈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하고 싶다는 소리 안 하겠지..
생각했지만 아이들은 잃어버린 돈 보다는 한 번 더 하면 뽑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몸이 달았다.
하긴 이해할만 하다. 어른도 그런 생각에 한 자리에서 몇 만원도 쓴다고 하지 않는가.
그 후로 아이들은 시내에 나갈때마다 몹시 아쉬운 표정으로 인형뽑기 가게를
쳐다보곤 했는데 저희들끼리 외출할 기회가 생겼으니 간식보다는
인형뽑기 가게로 달려간 것은 당연했다.
큰 딸은 오백원짜리 뽑기를 두 번 하는 것으로 미련을 버렸다는데 당돌한 막내는
천오백원이나 잃고서도 더 하고 싶어 안달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인형을 뽑는데는 실패했다.
재미있게 즐긴것으로 만족하자고 얘기하며 그래도 용돈을 쓸 땐 조금 더
신중하자는 말로 잘 끝냈는데 이룸이가 말썽이었다.
집에 와서도 뽑지 못한 인형을 아쉬워하며 계속 시내에 다시 나가자고,
한 번만 인형뽑기를 더 하게 해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적당히 달래면 그치려니 했는데 나한테 안되니까 아빠한테도, 오빠한테도
가서 거듭 거듭 졸라댔다. 당연히 돌아오는 것은 타박과 야단 뿐이었는데도
막내는 도무지 포기할 줄 몰랐다.
나에게서 단호하고 매몰찬 거절을 듣고나서는 대놓고 엉엉 울면서
비탄에 잠겼다.
울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책만 보고 있던 나는 잠시 생각한 후에 이룸이를 불렀다.
"이룸아, 그러지 말고 지금 니가 느끼는 그 기분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해봐"
"엉엉. 왜요?"
"지금처럼 징징거리면서 온 집안을 돌아다니면 사람들 짜증만 나게 하지만
니 마음과 심정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면 그건 예술이 되거든.
너랑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작품을 보면서 위로도 받고, 나랑
같은 기분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느끼면서 마음이 풀어지기도 하고..
그런게 예술이야"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그냥 아무 종이나 깨끗한 거 가져다가 니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 되는거지"
"... 알았어요"
이룸이는 흰 종이 한 장을 들고 내 앞에 앉았다.
몹시 슬픈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종이위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한숨 쉬어가며, 골똘히 생각도 해가며 꽤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여워죽을뻔 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엄마... 다 했어요. 이게 제 마음이예요"
이룸이가 내 민 종이를 본 순간 푹 웃음이 터져나왔으나 꾹 참았다.
종이 위에는 분명 뽑기 기계 속에 들어 있는 인형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 너무 갖고 싶었지.
저금통이었던 너는 내 맘에 쏙 들었지.
판다로 된 게 제일 좋았어.
귀여웠으니까.
단 한번이라도 기회가 있었으면
인형뽑기를 하고 싶었는데 돈이 아까왔었지.
난 후회했지, 아주 마음 깊속으로다 -
맞춤법은 군데 군데 틀렸지만 인형뽑기 기계에서 너무나 가지고 싶었던
인형을 뽑지 못했던 아쉬움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글 이었다.
더 하고 싶었지만 돈이 아까와서 그냥 왔는데 사실은 마음 깊이 후회하고
있는 심정이 절절했다. 게다가 어미를 '지'로 통일해서 전체가 하나의 시처럼
운율미까지 있다. 아주 훌륭한 한 편의 작품이다.
떼 쓰는게 듣기 싫어서 그냥 한 번 해 본 소리였는데
엄마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자기의 지금 마음을 표현해낸 막내의 노력이 기특했고
재능에도 감탄했다.
"이룸아, 이건 정말 훌륭한 예술작품이다."
"그래요?"
"그럼.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니가 원하는 인형을 뽑지 못한 것이 얼마나
아쉽고 슬픈 일인지 느낄 수 있을걸?
그게 바로 예술의 힘이거든.
예술가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과 느낌들을 자신의 작품으로 표현해서
위로하고 격려하고 힘도 주고, 감동도 주는 사람들인데 이 작품을 보니까
이룸이도 예술가야. 아주 멋진.."
"정말요?"
이룸이는 베시시 웃었다.
마음이 풀린 것이다.
시작하기 전에는 슬프고 속상했는데 곰곰이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동안 감정도 가라앉았고
제 작품을 엄마가 인정해주고 알아주니 기분도 좋아졌다.
어린 예술가는 비감했던 마음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제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이해되었다는 것에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쨈 바른 비스킷을 먹는 것으로
다시 행복해졌다.
이룸이를 보며 생각했다.
그렇구나.. 짜증과 예술의 차이는 간단하구나.
속상하고 슬프고 외롭고 벅차고 아쉽고 행복한 모든 감정들을 그냥 나 혼자
질러버리면 사라지고 말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볼 수 있게 표현하고 나면
그 안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담긴다.
다른 사람을 위로할만큼 대단하지 않아도 적어도 나 자신을 위로하는 무엇이
되는 것이다.
내가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마음에 담고만 있으면 너무 힘든 것들, 너무 벅찬 것들, 내 안에서 이야기가 되어
밖으로 나오고 싶어 솟구치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고 글로 적는 동안
내 것이지만 나를 다시 일으키는 무엇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감정을 표현할 수단을 가진 사람은 절대 그 감정에 노예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한 줄의 글과 한 컷의 그림과 한 동안의 손놀림이 큰 힘과 위로가 되는 이유다.
이룸이는 제가 한 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어린 딸의 작품을 보며 안심이 된다.
제 안에 있는 것들을 조금씩 꺼내어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보인다.
그 힘을 제 때에 잘 쓸 수 있는 어른이 된다면 더 좋겠지만
그저 너무 힘들때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기억해 내기만 해도 좋겠다.
짜증으로 시작한 일이 멋진 작품이 되었다.
이 어린 예술가의 열렬한 후원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물론이다.
이룸이는 벌써 잊었지만 이룸이의 작품은 내가 잘 보관해둔다.
두고 두고 나를 웃게 하고 행복하게 할 보물이 되겠다.